일본도 놀라게 한 일본 전통회화 90여점 빼곡

2018. 4. 25.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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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림박물관 '일본 회화의 거장들'전
창립자 윤장섭의 일본미술컬렉션 첫 공개
중세~근대기 일 회화사 흐름 담은 수묵·채색화들

[한겨레]

18세기 사생화풍으로 유명했던 교토의 작가 마쓰무라 고이 그린 <고마쓰비키도>. 장수를 빌며 땅에서 뽑아낸 어린 소나무를 들고 있는 노인의 모습을 무상함과 해학이 느껴지게 묘사했다. 호림박물관 제공

한국과 일본의 그림 전문가들을 놀라게 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일본의 14세기 무로마치 시대부터 17~19세기 에도 시대를 거쳐 20세기 초 근대 메이지 시대까지 700년에 걸친 방대한 옛 일본 그림 컬렉션이 24일부터 서울 강남구 신사동 호림박물관 신사분관 2~4층 전관에서 선보이기 시작했다. 국내 3대 사립박물관으로 꼽히는 이 박물관 창립자이자 기업가인 윤장섭(1922~2016)이 외부에 알리지 않고 타계할 때까지 묵묵히 수집해온 일본 회화사의 수묵화, 채색화 명품 90여점이 처음 세상에 나온 것이다. 일본 미술을 대표하는 채색된 미인화와 산수도는 물론, 선불교의 기운이 느껴지는 수묵기법의 인물·정물화와 일본 특유의 풍습을 간직한 고사화 등의 낯선 이웃나라 명화들이 줄줄이 내걸렸다.

다음달 윤장섭의 2주기를 앞두고 마련된 이 전시는 ‘일본 회화의 거장들’이란 제목으로 차린 기획특별전이다. 출품작으로 나온 컬렉션의 옛 일본 그림들은 일본에서도 좀처럼 보기 힘든 무로마치~메이지 시대의 다채로운 수묵화들을 다수 포함하고 있다는 점이 우선 흥미롭다.

사실 국내에서는 일본 그림 하면 대개는 다색 목판화인 ‘우키요에’나 화려한 원색으로 치장한 장식화를 연상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13~14세기 이래 남송, 원, 명 등 중국과 활발한 해상교역을 했던 일본은 일찍부터 먹의 사용을 최대한 절제하면서도 강렬한 선으로 형상을 부각하는 개성적인 수묵화 장르를 발달시켜왔다. 1부 ‘마음에 스민 먹’ 전시장에서 이런 특징을 담은 일본풍 수묵화 ‘스미에’(墨繪)와 중국과의 교역을 통해 들어온 문인화의 요소들을 적극 흡수해 일본 특유의 장르로 뿌리를 내린 ‘난가’(南畵)의 수작들을 볼 수 있다. 작가를 모르는 16세기 학 그림 <연로도>와 16~17세기 화가 운고쿠 도간의 ‘재송도자도’ ‘파묵산수도’ 등에선 최대한 붓질을 아끼면서도 빠른 붓놀림과 강렬한 기세로 형상을 표현하는 일본적인 특징을 엿보게 된다. 새해를 맞는 내용을 담은 짧은 전통시 하이쿠를 적고 이를 읊는 인물을 형상화한 난가의 대가 요사 부손의 그림, 사생화풍으로 일가를 이룬 마쓰무라 고의 고사인물화 등 18~19세기 에도 시대 후대 작가들의 작품들을 통해 일본 수묵화의 다기한 전개 과정을 읽을 수 있다. 학자, 승려 외에도 무사나 상인들도 문인화를 그린 까닭에 중국, 조선과 달리 장식적 요소가 묻어나며, 대규모 전람회에 내보내기 위해 전시장 즉석에서 그렸다는 표시(세키에)를 한 작품들도 보인다는 게 이채롭다.

이토 신스이의 근대 미인화 <은하축제도>(부분·1946년께). 호림박물관 제공

일본 회화의 대명사이자 9세기 헤이안 시대 이래 ‘야마토에’라고 불리는 채색화는 2부 ‘자연에 스민 색’에서 만날 수 있다. 무엇보다 19세기 고대 야마토에의 부활을 위한 복고적 기법의 작품들이 다수 나왔다는 점이 주목된다. 백성들의 아궁이에서 연기가 나는지를 살펴보는 고대 일왕 닌토쿠의 모습을 그린 다나카 도쓰겐의 작품이나 중세 일본의 충신 구스노키가 벚꽃 아래 앉은 모습을 그린 20세기 초 그림이 이런 유형인데, 당대 고조된 민족주의 정서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12세기 활동한 시인 36명과 이들이 지은 시인 ‘와카’(일본의 전통적인 정형시)를 모은 시화집 ‘삼십육인가집’은 일본인들이 매우 애호하는 그림 장르로 4종이나 나왔는데, 일본에서도 한 컬렉션 안에 이렇게 다양한 가집이 나온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한다.

하나부사 잇초의 <남가몽도>(17~18세기). 호림박물관 제공
이마무라 운레이의 그림에 안중식의 글씨가 붙은 합작도 <노순영발>(1915년작).

마지막 3부 ‘교류 속에 피운 회화’는 일본과 한국, 중국 소장 그림들을 견줘가며 교류상을 살피는 것으로 전시를 마무리한다. 조선통신사의 서화 교류를 보여주는 그림과 더불어 서화가 안종원이 1915년께 모친 회갑을 맞아 시미즈 도운, 이마무레 운레이 등 당대 일본 회화의 대가 6명과 합작한 그림, 안중식이 이마무라 운레이와 합작해 그린 <노순영발> 등이 나와 두 나라 화가들의 뿌리 깊은 교류사를 증언하고 있다. 기획자인 이장훈 학예사는 “전체 일본 회화사 흐름을 보여주는 전시를 개인 컬렉션만으로 구성하는 사례는 일본에서도 드물다. 엔에이치케이(NHK), 아사히, 요미우리 등 일본 언론들의 취재 요청이 들어오고 있다”고 전했다. 9월29일까지. (02)541-3523~5.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도판 호림박물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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