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종의 평양 오디세이] 판문점 원조 협상가의 조언 .. "대화하되 압박 늦추지 마라"

이영종 입력 2018. 4. 25. 00:29 수정 2018. 4. 25. 0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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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전협상 초대 대표 조이 제독
"공산 측 알아듣는 건 힘 뿐"
"지키지 않을 약속 가급적 작게"
김정일 서울답방 합의 때 현실로
협상 주도하려 돌출사건 모의도
"말이나 약속 아닌 행동 믿어야"

고전(古典)에는 울림이 있다. 오랜 시간이 흘러도, 상황과 조건이 어느 정도 바뀌어도 변치 않는 클래식의 매력이다. 그 속에는 감동이 있고 교훈이 있다. ‘전철을 밟지 말라’는 후세에 대한 애정 어린 권고도 담긴다. 65년 전 판문점에서 체결된 한국전쟁 정전협정의 첫 협상대표 터너 조이(Turner Joy) 미 제독은 생생한 경험을 책으로 남겼다. 그 속에는 공산주의자들과의 협상을 통해 체득한 노하우와 경구가 빼곡하다. 반세기 넘은 시대 변화에도 공감할 대목이 적지 않다. 판문점 정상회담을 목전에 둔 대통령과 참모·협상가들이 일별해 볼 만한 교범이다.

“그들은 나중에 지키지 않으려고 작정한 약속을 가급적 적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

조이 제독(1895~1956)은 저서 『공산주의자는 어떻게 협상하는가』(How communists negotiate)에서 공산 측 협상 패턴의 핵심을 이렇게 짚어냈다. 협상이란 게 못마땅한 합의사항 몇 가지는 담길 수밖에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는 공산 측은 어쩔 수 없이 합의는 하되, 뒷일을 치밀하게 고려한다는 얘기다. 조이 제독은 “그들은 합의사항을 위반할 경우 수반될 조사범위를 축소시키려 광분한다”고 지적했다. 국제사회의 군축 협상 등에서 효율적인 점검이나 감시체계를 공산 측이 받아들이지 않는 건 이런 음흉한 생각이 깔렸기 때문이란 것이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비판 여론이나 제재 압박 때문에 마지못해 협상에 나섰던 북한의 행태를 반추해보면 기시감이 든다. 북·미 제네바 핵 합의(1994년)와 9·19 공동성명(2005년)의 합의 문구를 들춰보면 곳곳에 그 흔적이 남아있다. 북한의 핵 개발 의혹이 제기될 때마다 국제기구는 사찰과 검증 문제로 북한과 지루한 줄다리기를 벌여야 했다. 핵 동결과 보상이란 주고받기 틀은 번번이 식량과 중유 지원 등의 당근만 따 먹는 북한에 농락당했다.

남북관계도 마찬가지다. 2000년 6월 첫 남북 정상회담 때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서울 답방을 약속하고도 지키지 않은 대목은 대표적이다. 통일 문제와 이산상봉, 경협·교류 등 6·15 공동선언 5개 합의 항목을 만들었지만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앞으로 적절한 시기에 서울을 방문하기로 하였다”는 대목은 맨 끝부분에 별도 항목 없이 덧붙여졌다. 마지못해 합의문에 담긴 듯한 답방 약속은 결국 지켜지지 않았다. 후계 권력을 넘겨받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7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남측 지역에서 회담을 치러 ‘서울 답방’에 갈음하려는 듯하다.

공산주의자와의 협상에 임하는 기본 자세에 대해 조이 제독은 “적이 원한다는 이유만으로 협상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한다. 협상이 자유를 위해 공헌할 수 있을 때에만 나서라는 얘기다. 그는 또 “공산 측과 협상할 때 군사력의 위협카드를 버려야 한다고 생각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오히려 반대라는 주장이다. 조이 제독은 “그들은 엄포에 넘어가지 않는다. 막강한 군사력을 실제 사용하려는 자세를 취할 때 공산 측과의 협상은 성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이 제독은 정전협상에서 유엔군 측 초대 수석대표를 맡았다. 북한군 남일 대장과 이상조 소장, 중국 측 덩화(鄧華) 상장과 세팡(解方) 소장 같은 정치군인을 상대했다. 협상과 언술에 능한데다 기상천외의 꼼수까지 동원하는 공산 측과의 만남은 어려움의 연속이었다. 조이 제독은 무용담이나 자기 자랑이 아닌 실패의 경험까지 고스란히 담아냈다. 실제 조이 제독은 ‘전쟁에서 승리를 대체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맥아더 장군의 말을 인용해 “우리가 수용한 것과 같은 정전은 없어야 한다”며 비판적 입장을 드러내기도 했다.

공산측은 가장 먼저 회담 장소 선정부터 전략적 판단을 한다. 정전 협상의 경우도 그랬다. 1951년 6월 20일 리지웨이 장군이 덴마크 병원선을 원산항에 정박시켜 협상장으로 사용하자고 제안했지만, 돌아온 답은 “정전을 원한다면 개성으로 오라. 그러면 대화하겠다”는 것이었다. 조이 제독은 “유엔사가 휴전이 필요한 입장이라 굽신거리며 공산 측 거점에 찾아온 것처럼 보이려는 의도”라고 분석했다. 결국 개성에서 열린 회담장에 앉아보니 북한 측 남일 장군의 의자가 조이 제독의 것보다 4인치(10.16cm)나 높게 배치됐다. 유치한 듯한 이런 계략도 수없이 쌓이면 실질적 선전효과를 나타내게 된다는 게 조이 제독의 판단이다.

일단 협상이 시작되면 공산주의자들은 기필코 돌출 사건을 만들어낸다는 점을 조이 제독은 간파했다. 그는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고 가기 위해서 혹은 선전 목적에서 사건을 만든다”며 “결코 단순하게 발생하지 않으며 공산 측 협상팀에 의해 모의되고 촉발된다”고 설명했다. 협상을 지연시키는 게 상대를 궁지에 몰고 결국 자신들에게 유리하다는 게 공산주의자들의 생각이라고 조이 제독은 말한다. 의견이 충돌하면 양보해서 풀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서구 합리주의 사고를 파고든다는 것이다. 조이 제독은 “공산 측은 ‘2+2=6’이라고 제안하고는 합의를 끝없이 지연시킴으로써 우리가 ‘2+2=5’라는 절충안에 동의하도록 만든다”고 털어놨다.

요구사항을 끊임없이 반복해 상대의 진을 빼는 수법도 단골메뉴다. “물방울을 떨어트려 돌에 구멍을 내려는 그들의 시도가 목전에서 성공하지 못한다 해도 서방세계의 피곤함은 계속 남아있게 될 것”이란 게 조이 제독의 분석이다. 공산 측은 상대를 피로하게 만드는 전술이 완전한 협상실패보다는 낫다고 평가한다는 얘기다

북한이 이미 합의하거나 문서화된 경우까지 부인하는 태도를 보이는 건 어떻게 판단해야 할까. 조이 제독은 공산주의자들은 문건 자체를 부정하기 어려울 경우 “당신의 해석이 잘못됐다”는 주장을 펼친다고 지적했다. 또 협정이 불리하다 판단되면 무효화 하는 전술도 구사한다. 조이 제독은 “공산주의자와의 협정을 신뢰하는 사람은 낡은 동아줄에 위험천만하게 매달려 있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그들의 말이나 약속이 아니라 행동만을 믿으라는 조언이다.

조이 제독은 정전협상의 교훈을 던졌다. 무엇보다 적이 정전(대화)을 청할 때 압력을 낮추지 말고 증가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공산 측 부대가 심각한 타격을 입고 패퇴하던 1951년 6월 유엔 측이 휴전을 타진한 건 실책이었다는 진단이다. 협상이 시작되자 유엔 측은 지상군 공세를 완화했다. 조이 제독은 “공격작전 압력을 최대한 증가시켰어야 한다. 공산 측이 진실로 알아듣는 논리는 오직 힘뿐”이라고 결론지었다.

조이 제독은 공산주의자들과 협상을 벌여야 할 후세들에게 다음과 같은 당부의 말을 남겼다.

“이렇게 고통스럽게 얻은 경험을 마음속에 잘 기억해 둔다면, 자유세계와 독재세계의 차후 협상 시 미숙한 협상기술 때문에 소리도 없이 초래될 재앙으로부터 우리 모두가 구원받을 것이다.”

이영종 통일북한전문기자 겸 통일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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