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여성들, 내 삶을 타인이 결정하게 놔두지 마세요"

스톡홀름(스웨덴) | 글·사진 송현숙 기자 2018. 4. 24. 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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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3남매 엄마이자 28년차 외교관, 회그룬드 주한 스웨덴 대사
ㆍ스웨덴 해외 대사 44%가 여성, 맞벌이 당연…성 고정역할 없어
ㆍ문화 변화가 사회 분위기 견인 “젊은 세대, 성평등 열망 키우길”

안 회그룬드 주한 스웨덴 대사는 “잦은 해외 출장 때는 남편이 집안일을 전담했다”고 말했다. 그는 “스웨덴에서는 부모 모두가 일하는 것이 당연하고, 남녀의 고정 역할도 없이 필요에 따라 부담을 조정하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했다.

“한국 사회가 좀 더 성평등 문제에 관심을 가졌으면 합니다. 잘 교육받고 강인한 젊은 여성들이 한국 사회에 아주 큰 자산이라는 것, 어느 곳이나 남녀가 밸런스를 유지한 조직이 번영한다는 점을 꼭 강조하고 싶어요.”

성평등 포럼 기간 업무상 스톡홀름을 잠시 찾은 안 회그룬드 주한 스웨덴 대사(58)를 지난 17일 오후 스톡홀름 시내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오는 8월 한국에서의 3년 임기를 마치는 회그룬드 대사는 한국 여성들에게 “다른 사람이 자신의 삶을 결정하게 하지 말고, 자신의 꿈을 가지고 그 꿈을 실현하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28년간 해외근무가 많은 외교관 생활을 하며 어떻게 24살 딸과 22살, 19살인 아들 등 3남매 양육과 일·가정생활을 양립할 수 있었을까. 대답은 간단했다. “스웨덴에선 부모, 엄마가 된다는 게 한국과 다르다”는 것이다. 의료기기 회사를 운영하는 남편이 시간상 더 유연하고, 자신은 특히 외교부 근무가 어떤 상황이 생길지 예측 불가능해 아이들 픽업 등 아이들 관련 일과 가사 대부분을 남편이 맡았다고 했다.

잦은 해외출장 때도 남편이 모든 ‘집안일’을 전담했지만, 전혀 불평이 없었다고 했다. 스웨덴에선 부부 모두 일하는 것이 너무 당연하고, 남녀의 고정역할도 없어 상황과 필요에 따라 부모가 그에 맞춰 시간, 부담을 조정하는 것이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해외근무 기간엔 기러기 가족 생활을 했다. 캄보디아 대사 3년간은 첫째와 막내만 데리고 가고, 스웨덴을 떠나기 싫어하는 둘째는 남편이 돌봤다. 한국엔 막내만 함께 와 서울외국인학교를 2년 다니고 졸업했다.

스웨덴의 외교부 대사 40% 정도가 여성이라고 들었다고 하자, 회그룬드 대사는 44%라고 바로잡았다. 그가 처음 외교부에서 일할 때만 해도 여성 대사 비율이 아주 낮았지만, 여성들의 자리를 의식적으로 늘리려 노력한 결과 현재와 같이 늘어났다고 했다. 현실을 바꾸려면 얘기만 해선 안되고 구체적인 계획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회그룬드 대사는 “같이 일을 시작한 동기들 중엔 아이가 4명 있는 집도 있고, 3명인 동기는 꽤 된다”며 스웨덴에선 여성 대사도, 여성 외교관이 자녀 3명을 둔 상황도 그리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라고 전했다. 한국에 와 있는 스웨덴 외교관 3명 중 2명의 여성 외교관은 남편이 일을 잠시 놓고 한국에 와 있지만 이 또한 특이한 시선을 받을 일이 아니다.

스웨덴 대사관의 직원들은 일반적인 스웨덴 직장인들처럼 주 40시간 노동을 하고 5주간의 긴 휴가를 갖는다. 스웨덴 노동자들의 근무여건이 좋은 것은 노조 가입률과 상관이 있지 않을까. 그는 “아마도 그럴 것”이라며 “스웨덴 노동자들은 고용주에게 많은 압력을 가한다”고 했다. 스웨덴에선 노동자들 대부분이 노조원이라면서 자신 또한 정부 공무원들이 가입하는 노조원이라고 당연한 듯 얘기했다.

최근 경향신문이 연재한 ‘라테파파의 나라에서 띄운 편지’ 기사에서 저출산 해결 방안으로 노동시간 단축, 공보육 시스템 강화, 성평등 문화 확산을 들었는데 동의하느냐고 묻자, “물론”이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중에서도 결국 문화의 변화가 사회의 변화를 이끈다는 점에서 성평등이 가장 중요한 것 같다고 했다.

회그룬드 대사는 한국의 젊은 여성뿐 아니라 “이런 사회에선 아이 키우기 싫다”며 한국을 떠나고 싶어 하는 젊은 남성들도 많이 만났다고 했다. 그들에게 “왜 한국에 남아서 한국을 바꾸려 하지 않느냐”고 물으니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려서”라고 하더라며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성평등으로 정평이 난 스웨덴만 해도 성평등 경향은 계속 강화되고 있고, 젊은 세대들은 이를 더욱 당연하게 여긴다며 조카 얘기를 꺼냈다. 한 살 반 딸을 둔 조카는 변호사인 부인에 이어 현재 당연히 육아휴직 중이라고 했다.

회그룬드 대사는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남녀 할 것 없이 성평등 사회에 대한 열망이 강하다”며 “사회의 미래를 위해 한국은 보다 평등한 문화로 바뀌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스톡홀름(스웨덴) | 글·사진 송현숙 기자 so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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