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FTA 재협상으로 미국 신뢰도 손상

앤 크루거 전 세계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 입력 2018. 4. 24.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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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코 포항 제철소의 야경. / 블룸버그

한·미 동맹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지정학적으로 가장 극적인 성공 스토리 중 하나였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오랫동안 이어져 온 한·미 관계의 경제·전략적 이익을 버리기로 단단히 결심한 것 같다.

전쟁으로 파괴된 한국은 1950년대에 아시아에서 1인당 소득이 세번째로 낮았다. 물가상승률은 가장 높았으며 경제 성장 속도는 가장 더뎠다. 하지만 1960년대 초에 광범위한 개혁을 시행했고, 이후 30년 만에 산업 강국으로 성장했다. 한국은 부유한 국가들의 클럽인 OECD 회원 자격을 얻을 만큼 높은 생활 수준을 갖추게 됐다. 경제 구조를 해외 원조 의존형에서 수출 주도형 성장으로 전환했기에 가능한 변화였다.

2000년대 중반 한국과 미국은 더 가까운 무역 관계를 모색하기 시작했고 2012년 3월 한·미 FTA가 발효됐다. 한·미 FTA는 거의 모든 측면에서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후 한·미 FTA를 “끔찍한 거래”라고 비난하면서 재협상을 요구했다.

그는 최근 들어 철강과 알루미늄에 대해 각각 25%와 10%의 관세를 부과했다. 이와 함께 미국의 주요 동맹국들에게 해당 관세를 한시적으로 면제해 주겠다고 밝혔다. 중국을 겨냥한 트럼프 대통령의 다른 무역 활동에 대한 추가적인 발표는 차치하더라도, 철강과 알루미늄에 대한 관세는 분명 미국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미국의 철강·알루미늄 산업 내 일부 일자리가 구제될 수 있을지는 모른다. 그러나 철강·알루미늄을 원료로 사용하는 다른 산업들은 그보다 10배 이상의 고용 창출력을 갖고 있다. 이들 산업에서 수많은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의 무역 적자를 줄이기 위해 보호무역 정책을 추진한다고 했다. 하지만 경상수지(상품+서비스 수지) 적자는 저축이 투자보다 적기 때문에 발생한다. 따라서 적자를 줄이려면 소비를 줄이고 저축을 늘리기 위한 경제 정책을 펼쳐야 한다. 보호무역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관세 부과를 공개하고 몆 주 뒤 트럼프 행정부는 한·미 FTA 재협상 결과를 발표했다. 관세 면제에 대한 대가로, 한국은 대미 철강 수출을 2015~2017년 수준의 70%로 줄이기로 했다. 한국산 픽업트럭에 대한 미국 수출 관세 철폐 시점은 2021년에서 2041년으로 연기됐다. 미국 자동차 안전기준을 통과한 경우 그대로 수입을 허용하는 미국산 자동차 대수가 연간 2만5000대에서 5만대로 늘어났다.

두 번째와 세 번째 항목은 당장 한국에 큰 영향이 없기는 하다. 현재 한국은 미국에 픽업트럭을 수출하고 있지 않다. 또 한국 내 수입 자동차 판매 대수는 한국 내 전체 자동차 판매 대수의 15% 수준이다. 특히 미국 자동차 수입 대수는 전체 판매의 1%에 불과하다. 한국인이 미국차를 선호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한국이 이런 변화를 강요받은 것은 분명하다. 한국이 선의로 한·미 FTA 재협상을 받아들였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한·미 FTA 개정은 미국의 철강 관련 제조 업체들보다 미국 이외 지역의 철강 관련 제조 업체들이 더 높은 수출 경쟁력을 갖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의 철강 관련 제조 업체들이 원재료(철강)를 더 높은 가격에 수입해야 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일부 미국 업체들은 생산시설을 해외로 이전할 것이고, 이전하지 않은 다른 업체들은 제품 가격을 올려야 하기 때문에 시장점유율 하락을 경험할 것이다. 일부 업체들은 폐업을 선택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미국 전체로는 손실이다.

게다가 양국 모두 철강 무역 관리를 위한 행정적 부담을 추가로 지게 될 것이다. 한국 정부는 철강 생산 업체들에 한도를 할당해야 한다. 미국 세관원들은 한국으로부터 오는 모든 철강 수입이 70%의 한도 내에 있는지, 또 환적되지는 않았는지 일일이 확인해야 할 것이다. 또 미국 세관원들은 어떤 것이 면세되고 어떤 것이 25% 관세의 대상인지 알아내기 위해 해외로부터 온 모든 수화물을 검사해야 하는 문제가 생긴다.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트럼프 행정부는 4500건의 면세 요청을 처리하기 위해 2만4000시간의 노동력을 투입해야 한다. 여기에는 앞으로 미국에 들어올 물품의 원산지와 면세 여부를 알아내는 데 필요한 서류 작업에 들어가는 노동력이 포함되지 않았다.

이것은 미국이 지난 50년간 없애려고 노력해온 차별적인 무역 협정이라 할 수 있다. 트럼프는 단지 다자간의 무역 관계만 훼손한 것이 아니다.

한국·일본에 대한 고율관세는 동맹국 모욕

더 큰 문제는 그가 국가 간 협상에서 미국의 신뢰도를 깎아내렸다는 것이다. 만약 미국의 대통령이 이미 완결된 협정에 대해 그렇게 쉽게 일방적으로 수정을 강요할 수 있다면, 어떤 나라가 미국과 협상하는 데 최선을 다하려고 하겠는가.

한국의 지도자들은 한·미 FTA 재협상을 진행하면서 국내적으로 상당한 규모의 정치적 비용을 지출했다. 그들은 미국도 선의에 따라 행동할 것이라고 믿었기에 기꺼이 그렇게 한 것이다. 이제 한국은 그들이 전혀 협상한 바가 없는 조건을 강요받는 계약에 동의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트럼프 행정부가 동맹국인 한국·일본에 ‘국가 안보’라는 명목으로 고율의 관세를 정당화하는 것은 한국·일본에 상처를 안기는 것일 뿐 아니라 이들을 모욕하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트럼프 행정부는 5월 북한의 최고 지도자 김정은과 정상회담을 갖는 것을 목표로 한국 정부와 협력하고 있다. 트럼프는 최근 북한을 미국의 가장 큰 전략적인 위협이라고 선언했다. 미국의 국가 안보나 경쟁력을 생각할 때 트럼프의 행동은 정말로 이해하기 힘들다. 트럼프의 행동은 미국 경제는 물론  원칙에 기초한 다자간 무역 시스템에 큰 비용을 안길 것이며, 트럼프 퇴임 이후까지 미국의 신용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 앤 크루거(Anne Osborn Krueger)
존스홉킨스대 국제관계대학원 교수, 전 국제통화기금(IMF) 수석부총재

Plus Point

트럼프 “TPP보다는 양자협정 선호”


도널드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과 아베 신조(安倍晉三) 일본 총리가 지난해 11월 도쿄에서 가진 정상회담 후 악수하고 있다. / 블룸버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7일(현지 시각) 세계 최대 경제블록을 지향했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보다는 양자 협정을 선호한다고 밝혔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에 TPP 복귀를 검토하라고 지시한 지 불과 나흘 만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밤 트위터에 “일본과 한국은 미국이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으로 다시 돌아가길 바라지만, 나는 그 협정을 좋아하지 않는다. 양자 협정이 훨씬 더 효과적이고 이득이 되며 우리 노동자들에게도 더 낫다”고 썼다.

이런 반응은 지난 17일 미국 플로리다 마라라고 리조트에서 열린 미‧일 정상회담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미국의 TPP 복귀를 설득하려 시도 중인 가운데 나온 것이여서 미‧일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원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1월 ‘미국 우선주의’를 외치며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재협상과 동시에 TPP 탈퇴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이에 따라 미국을 빼고 일본과 캐나다 등 TPP 11개국은 지난달 8일 ‘포괄적‧점진적 TPP(CPTPP)’라는 이름의 자유무역협정에 서명했다.

11개 TPP 회원국 중 6개국 이상 비준 완료 시 협정이 발효된다. 협정이 발효되면 참여국의 모든 교역 품목 중 99%(일본 95%)에 대한 관세가 철폐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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