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션이 인기 얻으려면 방송에 꼭 나가야 하나"

2018. 4. 24. 15:5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가수 닐로 기획사 이시우 리메즈 엔터테인먼트 대표 '스텔스 마케팅'에 대해 "언론사 광고와 다를 것 없다"

[한겨레]

리메즈 엔터테인먼트 이시우 대표 / 사진 허프포스트코리아 제공

페이스북은 음원을 직접 소비하는 곳은 아니지만, 사용자들의 음원 소비 패턴과 취향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이 취향은 매우 쉽게 조작되고 왜곡된다. ‘닐로의 역주행’이 던진 메시지다. 이번 사태를 통해 페이스북 사용자들의 취향이 어떤 공정 과정을 거쳐 재생산되는지 자세하게 드러났다. 취재를 통해 살펴본 결과, 이런 일을 수행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은 터무니없이 낮고, 생각보다 쉬웠다. 넘어서야 하는 제약도, 규제도 없었다.

■ 스텔스 계정을 활용하는 비용

가수 닐로의 노래 ‘지나오다’가 음원 차트를 ‘역주행’(통상 음원 차트에서 시간이 지날수록 인기가 떨어지는데 거꾸로 서서히 인기가 올라가는 흐름을 일컫는 말)하면서 지난 보름 간 논란의 중심에 섰던 리메즈 엔터테인먼트의 대표 이시우 씨는 그간 이를 다룬 〈한겨레〉의 보도가 대부분 사실임을 인정하며 “(스텔스 계정들은) 우리만의 특별한 제휴 채널이 아니다. 누구나 연락해서 어떤 콘텐츠든 올릴 수 있는 채널”이라고 밝혔다. 〈한겨레〉는 닐로가 멜론 차트에서 1위를 기록해 ‘음원 사재기’ 논란으로 시끄러웠던 지난 13일, 이를 이른바 ‘스텔스 마케팅’이라고 보도한 바 있다. 이 대표는 이 계정을 통해 콘텐츠를 내보내는 가격이 “생각보다 무척 낮다”며 “(스텔스 계정을) 운영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개인 사업자들이고, (콘텐츠 하나 올리는 데 드는 비용이) 20~30만원 정도”라고 밝혔다. 〈한겨레〉가 입수해 보도한 리메즈 엔터테인먼트의 문건을 보면, 리메즈 엔터테인먼트가 페이스북에서 보유나 제휴 형태로 마케팅에 사용한 계정은 모두 18개였다. 콘텐츠를 제작하는 비용을 제외하면, 600만원 안팎의 마케팅 비용으로 멜론 차트 1위를 만들어냈다는 얘기다.

이 대표가 사용한 방법은 지금까지 대중이 인식하지 못했던 방법이며, 윤리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지적이 있었다. 이들이 사용한 페이지의 상당수는 인플루언서(영향력 있는 개인)의 영역에 포함될 만큼 파급력이 있는 계정이다. 페이스북에는 이러한 파워 계정들이 널렸다. 이번 닐로의 경우엔 ‘너만 들려주는 음악’(89만명), ‘널 위한 뮤직차트’(12만명), ‘역대급 노래 동영상’(54만명), ‘요즘 힙하다는 노래 동영상’(73만명) 등의 페이지들이 22~23일 이틀 간 집중적으로 닐로의 ‘지나오다’를 소개했다. 이들은 ‘나만 아는 노래’, ‘너만 들려주고 싶은 노래’라며 마치 숨겨진 명곡인 것처럼 희소성으로 포장하는 한편, ‘내가 들려주는 노래가 지금 역주행하는 노래’라며 대중성을 지렛대로 삼아 유인한다. 영리를 목적으로 하지 않고 선의만으로 운영하는 ‘개인 페이지인 것처럼’ 정체성을 숨겼기에 그동안 이 이율배반적인 홍보가 먹혔다.

가수 닐로의 음원을 알린 리메즈 엔터테인먼트의 이시우 대표가 한겨레에 이를 설명하고 있다. 사진 허프포스트코리아/윤인경.

이 대표는 “우리는 바이럴 마케팅 회사가 아니다. 우리는 공감할 만한 콘텐츠를 제작하고 이 콘텐츠를 확산시키는 데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그중에서도 페이스북을 주 채널로 활용하는 소셜마케팅 회사다”라며 “포털 사이트의 댓글이나 블로그 등 다양한 영역을 통해 입소문을 타게 하는 바이럴 마케팅과는 그 범위가 다르다”고 밝혔다. 마케팅 업체로서 리메즈 엔터테인먼트의 수법은 이들 계정을 여러 개를 묶음 판매했다는 것이 그 본질이다. 〈한겨레〉는 리메즈 엔터테인먼트가 다른 기획사의 가수를 홍보하기 위해 넣은 소셜 마케팅 제안서를 확보했다. 해당 가수의 영상을 제작하고 600만 명의 팔로워를 가진 18개 계정을 통해 이를 퍼뜨리겠다는 것. 실제로 이들과 계약을 맺은 가수들의 콘텐츠가 페이스북 등에 활발하게 퍼진 현상 역시 확인 가능했다.

■ “언론사의 광고와 다를 것 없다”는 주장

다만, 닐로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리메즈 엔터테인먼트는 소셜 마케팅을 하는 업체이기도 하지만, 닐로, 장덕철, 반하나 등 소속 가수를 둔 기획사이기도 하다. 닐로의 사례는 특정 마케팅 기법을 가진 리메즈 엔터테인먼트가 최선을 다해 자사의 가수를 직접 마케팅한 사례다. 리메즈 쪽은 닐로의 음악을 알리기 위해 10여 개의 영상을 제작하고, 이를 3월22일부터 여러 스텔스 채널을 통해 집중적으로 확산시켰다. 이들이 사용한 스텔스 마케팅의 방식은 규제에 어긋나는지 조차 논의가 이뤄지지 않는 영역으로, 페이스북 규약이나 표시광고법 등의 제약을 받지 않고 있다. 페이지 구독자의 입장에서는 “광고가 없는 페이지인 줄 알았는데 돈을 받는 광고가 있었다니 속은 느낌”이라는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이 대표는 이런 지적에 대해 “언론사에선 모든 광고에 광고라고 표시를 하느냐”며 “소셜미디어를 통해서 뉴스를 유통하는 특정 언론사의 경우 아예 기사광고 단가표가 있는 거로 알고 있는데, 뭐가 다르냐”고 반문했다.

언론사는 광고 표시를 한다는 점에서 리메즈가 활용한 스텔스 계정과 다르다. 대부분의 언론사는 자체적으로 광고 표시 의무의 기준을 정하고 지면이나 인터넷판에서 네이티브 광고(기사 형식으로 제작된 광고)나 애드버토리얼(기사체로 쓴 광고)의 표시를 의무화하고 있다. 광고가 기사처럼 보여선 안 된다는 내부 규정을 갖고 있다. 이를 표시하지 않는 언론은 당연히 비난의 대상이 된다. 다수 언론과 비슷한 생태계를 가진 건 스텔스 계정이나 리메즈 엔터테인먼트가 아니라, 기업형 음악 미디어 기업들이다. 317만 명의 팔로워를 거느린 ‘일반인들의 소름 돋는 라이브’(이후 ‘일소라’)를 운영하는 ‘메이크어스’ 쪽은 “우리는 제보받은 영상만 소스로 사용하고, 광고를 다루는 인력과 콘텐츠를 다루는 인력이 구분돼 있다”라며 “여행이나 패션 등 다른 영역의 광고성 콘텐츠를 내보내는 경우가 있지만, 광고라는 점을 반드시 표시한다”고 밝혔다.

또 다른 근본적인 차이도 있다. 미디어의 경우 정체성을 드러내고 지나친 광고로 인한 반사 위험을 감내한다. 드라마에 간접광고(PPL)가 자주 등장하면 시청률이 떨어지고, 신문 지면에 광고가 넘치면 열독률이 떨어진다. 그러나 익명의 스텔스 계정들은 아예 광고라는 표시를 하지 않아 어떤 음악이 돈을 받고 광고를 하는지 알 방법이 없다. 공정위 관계자는 “가장 중요한 것은 소비자의 ‘오인 가능성’이다. 방송의 간접광고나 언론 매체의 유사광고 등은 이미 소비자들이 광고인지 아닌지 충분히 판단할 수 있을 만큼 그 광고의 행태에 익숙하다. 그러나 이번에 문제가 된 페이스북 계정에는 대중이 그 만큼 익숙하지 않아 돈을 받고 노출한 콘텐츠라고 판단하기 힘들었을 것”이라면서도 “다만 규제의 영역으로 포섭할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페이스북을 통한 이번 마케팅 사례는 익명의 계정을 통해 ‘이 노래가 좋다’고 선호를 밝힌 것이여서 제품의 품질, 효능, 효과를 잘못 알게 만드는 오인 광고와는 다르다”고 밝혔다.

■ 음악 만으로 역주행 할 수 없는 환경

이번 닐로의 역주행은 이 외에도 여러 질문을 던진다. 이 대표는 자신들의 선택이 ‘방송 중심’의 음악 환경에서 기인했다고 말한다. 이 대표는 “묻고 싶다. 뮤지션이 대중에게 인기를 얻으려면 방송에 나가야 하나?”라며 “좋은 음악을 만들고 가만히 있어야 하는지, 아니면 제작자 입장에서 최선을 다해야 하는지 묻고 싶다”고 밝혔다. 그의 말대로 한국의 좁은 음악 시장에서 방송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지난 2016년 한동근의 ‘이 소설의 끝을 다시 써보려고 해’의 역주행에는 MBC 예능 ‘복면가왕’에 패널로 출연한 것이 주효했다. 최근 역주행 하고 있는 멜로망스 역시 ‘유희열의 스케치북’ 인디돌 특집편과 멜론의 음악 큐레이션 예능인 ‘차트밖 1위’에 출연한 뒤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지난해 뉴이스트의 ‘여보세요’가 차트에 재진입한 건 데뷔 6년만에 엠넷의 ‘프로듀스 101’에 멤버들이 출연했기 때문이었다. 이 대표가 “대형 소속사의 매니저가 방송사 피디들을 상대로 열심히 영업을 해서 가수를 방송에 내보내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라며 “우리는 소속 가수들의 음악을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최선을 다한 것뿐”이라고 반문하는 이유다.

가수의 노래가 알려지는 건 “채널의 영향력 때문이 아니라 콘텐츠의 힘”이라는 주장도 생각해볼 만 하다. 이 대표는 “소셜 미디어의 기본적인 기능은 ‘공감’이다. 아무리 많은 팔로워를 가진 채널을 통해 마케팅을 펼쳐도 공감을 얻지 못하는 콘텐츠는 사장된다”며 “도달률(페이스북 포스팅이 확산되는 범위)은 팔로워 수에 절대 비례하지 않는다. 콘텐츠의 공감 가능성에 비례할 뿐이다”라고 밝혔다. 최근에는 대형 기획사는 물론 중소 기획사들 역시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을 통한 소셜 마케팅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닐로의 ‘지나오다’만이 역주행에 성공한 요인은 앞으로 더 밝혀야 할 숙제로 보인다.

박세회 기자 sehoi.park@hani.co.kr

▶ 한겨레 절친이 되어 주세요! [신문구독]
[사람과 동물을 잇다 : 애니멀피플][카카오톡]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한겨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