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이 뭐기에..' 재판마다 "증거위법·비공개" 공방
[경향신문] 국가정보원 관련 재판에서 잇따라 ‘공개·비공개’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국정원 문건은 공무상 비밀에 해당되기 때문에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는 주장부터, 일반 시민들이 재판 방청을 아예 못하게 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피고인들이 제기하고 있다.
24일 오전 서울중앙지법 형사24부(재판장 김상동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박승춘 전 국가보훈처장과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공판준비기일에서 박 전 처장 측 변호인은 검찰이 제출한 국정원 문건들이 ‘위법하게 수집한 증거’라며 증거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박 전 처장은 원 전 원장 등과 공모해 국가발전미래협의회(국발협)에 국정원 예산 55억원을 지급해 정치에 관여한 혐의(국정원법 위반)로 재판에 넘겨졌다. 국발협은 이명박 전 대통령과 당시 여권을 지지하는 책자를 발간하고 안보강연을 개최했다.
박 전 처장 측 변호인의 주장은 외부로 공개되면 안 되는 국정원 문건을 검찰이 무단으로 입수했기 때문에 현행법 위반이라는 것이다. ‘위법한 방법으로 수집한 증거는 효력이 없다’는 형사소송법의 독수독과 이론에 따라 국정원 문건들을 증거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변호인은 밝혔다.
변호인은 국가정보원직원법 제17조 1항을 꺼내들었다. 국정원직원법 제17조 1항은 “직원은 재직중은 물론 퇴직한 후에도 직무상 알게 된 비밀을 누설해서는 안 된다”라고 정하고 있다. 변호인은 “국정원 내에서 이 서류들이 열람되고 비밀 문건을 취급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까지 공개됐다는 사실 자체가 문제”라며 “국정원직원법 제17조 1항 위반”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장인 김상동 부장판사는 의문을 제기했다. 김 부장판사는 “해당 조항의 4항을 보면 ‘국정원장은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해치거나 군사·외교 등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허가를 거부하지 못한다’고 돼있다”며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국정원장이 허가를 거부하지 못한다는 것으로 재판에서의 증거나 말까지 비밀 누설로 처벌하려는 규정 같지는 않다”고 했다. 김 부장판사는 “독수독과 이론을 그대로 적용할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고 덧붙였다.
검찰도 적극 반박했다. 검찰은 “검찰이 국정원 서버에 임의로 접근해서 확인한 문건들이 아니고, 권한을 가진 국정원 직원이 서버에서 자료를 추출한 뒤 정리해 국정원 개혁발전위원회에 보고한 것”이라며 “국정원장이 수사의뢰를 한 내용인데 수집 과정에 어떤 위법이 있다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앞서 우병우 전 민정수석 측도 자신의 재판에서 국정원 적폐청산 태스크포스(TF)가 검찰에 넘긴 국정원 문건이 위법 수집 증거라고 주장한 바 있다.
국발협 2대 회장인 이모씨 측은 재판 자체를 비공개로 해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국정원 직원들이 증인으로 나오고, (증거로 제출된) 국정원 조직 자료를 외부에 노출시킬 필요가 있을까 싶다”는 게 이씨 측 변호인의 말이다.
이처럼 국정원에 대해 보안을 유지할 필요가 있어 재판을 비공개로 진행해달라는 주장은 현재 법원에서 심리가 진행되고 있는 다른 국정원 관련 재판에서도 대부분의 피고인들이 제기하는 내용이다. 이에 따라 상당수가 비공개로 진행된다. 이날도 서울중앙지법 형사31부(재판장 김연학 부장판사)는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과 함께 공직자·민간인 불법사찰에 가담한 혐의로 기소된 최윤수 전 국정원 2차장 재판을 비공개로 진행했다.
이에 김 부장판사는 “공개·비공개 여부는 저희도 참 (판단하기) 어려운 문제”라면서도 “재판은 공개하는 게 원칙이기 때문에 재판 전체를 비공개하는 것은 맞지 않다”며 이씨 측 요구를 당장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김 부장판사는 “다른 국정원 사건을 심리할 때도 (법정에서 다뤄지는 내용은) 위법(한지 여부를 따지는) 부분이라 특별히 국가 안전보장과 관련이 없었다”며 “한정된 범위 내에서 필요하다면 비공개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했다.
<이혜리 기자 lh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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