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미래] 지역 살리는 '사회혁신 공간', 전국 방방곡곡에 퍼진다

박혜연 더나은미래 기자 2018. 4. 24.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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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안전부 '소통협력공간' 워크샵 현장

중공업 쇠퇴로 내리막길을 걷던 스페인의 중소도시 빌바오. 빌바오는 경제·사회적으로 쇠락한 구도심을 살릴 카드로 '사회혁신'을 꺼내 들었다. 혁신의 거점은 옛 타이어 공장지대에 조성한 '사회혁신파크(SIP·Social Innovation Park)'. 약 2만평의 넓은 부지에 사회혁신 랩(G-Lab), 사회혁신 아카데미, 사회적기업 인큐베이팅 프로그램 등을 채워 넣자, 연구소와 대학, 기업 등 50여 단체 1000여 명이 모여들었다. 공간의 중추는 청년들을 교육하고 혁신적 비즈니스 기회를 촉진하는 바스크혁신센터 '데노킨(Denokinn)'이다. 데노킨은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미디어랩과의 협업으로 세계 최초의 접이식 전기자동차 '히리코'를 생산, 부품 제작에 스페인 기업 7곳을 끌어들이며 지역의 교통난도 해결하고 있다.

스페인 소도시의 재생을 이끈 사회혁신파크의 실험이 한국에서도 이어진다. 지난 2월 22일, 행정안전부 사회혁신추진단은 올해 최대 두 곳의 '소통협력공간'을 조성, 지역 문제를 해결하는 사회혁신 플랫폼으로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사회혁신파크의 전국화, 시민 주도의 사회혁신 프로젝트 지원 등으로 정부 국정과제('사회혁신 기반 강화 및 생태계 조성')에도 담겼다.

사회혁신추진단은 지난 한 달간 소통협력공간의 조성과 운영을 맡을 지방자치단체를 공모해, 1차 심사를 거쳐 강원도·경상북도·광주광역시·전남 순천·전북 전주 등 5곳을 예비 사업자로 선발했다. 지자체에서 토지와 건물을 제공해 사회 혁신의 거점 공간을 조성하면, 국비와 지자체 예산이 5대5로 매칭되는 구조다.

지난 11일과 12일 서울 성수동 헤이그라운드에서는 예비 사업자 50여 명(지역별 민관협의회로 구성됨)을 대상으로 '지역거점별 소통협력공간 예비사업자 공동워크숍(이하 소통협력공간 워크숍)'이 열렸다. 사회혁신 공간이 지역의 변화를 만들어낼 촉매제가 될 수 있을까. 더나은미래는 워크숍 현장을 직접 찾아 사회혁신 트렌드를 취재했다.

지난 11일과 12일 양일간 서울 성수동 헤이그라운드에서 개최된 ‘지역거점별 소통협력공간 예비사업자 공동워크숍’ 현장. 24~25일에는 ‘구글캠퍼스 서울’ ‘SAP앱하우스’ 등 혁신공간에서 두 번째 워크숍이 열린다./행정안전부 사회혁신추진단 제공

사회혁신이 일어나는 공간의 특징은?

"대방동에 위치한 '무중력지대'에서는 공간을 위해 무엇이라도 기여한 사람들에게만 공간을 청소할 권리를 줬어요. 북창동의 코워킹 공간인 '스페이스 노아'는 이용자들이 정기적으로 '자신이 누구고 왜 여기에 왔는지'를 공유하도록 하는데, 여기서 어마어마한 소속감이 생겨납니다. 공간의 이용자들이 멤버가 됐다는 소속감을 느낄 수 있는 커뮤니티를 조성할 때, 공간이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이번 소통협력공간 워크숍에는 국내 혁신공간을 운영하는 전문가들이 강사로 나섰다. 서울시 북창동의 '스페이스 노아', 서울시 청년공간 '무중력지대' 등을 기획한 정수현 ㈜엔스페이스 대표는 직접 다녀온 국내외 30여 곳의 공유공간을 소개하며 공간 기획의 노하우를 나눴다. 정수현 대표는 "단 한 평이라도 멤버십을 위한 공간을 만들면 더 많은 참여를 이끌어 낼 수 있다"며 "좋은 시설을 만드는 것보다 공간을 자신의 것으로 생각하고 무엇이든 만들어낼 이들을 중심 그룹으로 만드는 것이 핵심"이라고 말했다.

체인지메이커들을 지원하는 '헤이그라운드'의 강점도 '커뮤니티'였다. 헤이그라운드는 '사회문제를 해결한다'는 같은 정체성을 가진 이들이 함께 일하고 배우며 성장할 수 있도록 멤버십제로 운영하는 공간이다. 공간을 운영하는 ㈔루트임팩트의 강보라 총괄매니저는 "체인지메이커들이 겪는 경제적 불안정과 심리적 외로움, 네트워크와 기회 부족을 '커뮤니티'로 해결하고자 했다"며 "헤이그라운드는 회계·법률 서비스와 공유 차량, 클라우드 제휴 서비스 등 성장을 위한 양분을 공급하는 데 방향성을 뒀다"고 말했다.

"헤이그라운드는 공간의 기획 단계부터 잠재 입주사들과 함께했는데, 입주 전부터 서로 만나고 교류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협업하는 곳들이 생겨났습니다. 노숙인 문제를 해결한다는 미션을 가진 빅이슈와 두손컴퍼니는 헤이그라운드 입주사로 만나 MOU를 맺고 빅이슈가 추천한 노숙인 분들을 두손컴퍼니 직원으로 고용하기도 했습니다."

전북혁신도시에 있는 '스페이스코웍'은 정부 공공기관의 공무원부터 청소년에 이르는 다양한 공간 이용자 그룹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사람과 자원을 연계한다. 이종찬 스페이스코웍 대표는 "공간을 찾은 2000명에게 꾸준히 뉴스레터를 보내고 외주나 협업이 필요할 때마다 커뮤니티 매니저가 이들을 서로 연결한다"며 "청년 창업가들이 지역 축제에 컨소시엄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연결하고, 전문가들을 지역으로 초청해 창업 특강을 열기도 한다"고 강조했다. 이 밖에도 구글(Google)의 '수평과 공유'의 기업 문화를 소개한 이재현 구글코리아 본부장, 브랜드의 의미와 명분을 스토리화해 꾸준히 전달할 것을 강조한 마케팅 전문가 신병철 중간계캠퍼스 대표의 강의도 소통협력공간의 기획에 인사이트를 더했다.

우리 지역에 '사회혁신 공간'이 필요한 이유

행안부의 '소통협력공간' 사업은 민관 파트너십에 방점을 뒀다. 사업 기획 단계부터 지자체와 민간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할 수 있는 '민관협의회'를 만들어 사업을 추진하도록 한 것. 민간에 위탁만 맡기고 관리 감독 노릇만 했던 관(官) 주도 사업의 한계를 넘어서자는 의미다. 사업을 추진할 지자체가 최종 선정된 이후에는, 사업을 평가할 성과지표도 행안부와 지자체, 위탁기관 등 참여자들이 함께 개발할 계획이다. 일종의 정부혁신 시도다.

전남 순천에서 코워킹 공간 '동네인포집'을 운영하는 정창호 대표는 "그동안 관과의 협력이 일방적으로 과업 사항을 지시하고, 감독하는 식이었다면 이번에는 민간에 더 주도권을 주려는 고민이 느껴져서 좋다"고 말했다.

소통협력공간 워크숍 둘째 날, 박연수 ㈜쿠퍼실리테이션그룹 수석 컨설턴트의 진행 아래 지자체별 그룹 토의 시간이 이어졌다. 참가자들은 1차 심사를 통과했던 사업계획서를 다시 들여다보며 혁신공간에 대한 고민을 이어갔다. 각 지역에 사회혁신 공간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지자체들은 제일 먼저 "지역의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곳"이라고 입을 모았다.

강원도 팀의 키워드는 '청년'이었다. 최용원 강원도청 예산과 주무관은 "청년들이 지역을 떠나는 것이 고민이었는데, 원인을 조사해 보니 도내에 사회혁신이나 문화예술 계열의 청년이 입주할 곳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청년이 주체가 돼 시민과 함께 여러 가지를 시도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북 전주팀은 성매매 집결지였던 시청 앞 '선미촌' 일대 재생을 위해, 서로 다른 유형의 4개 공간을 연결한 문화예술인권 공간을 기획했다. 지역 내 빈집 등을 부지로 활용해 여성 창업을 돕는 '손기술공유센터'를 조성하겠다는 아이디어도 포함됐다. 김선정 전주문화재단 팀장은 "선미촌을 '서노송 예술촌'으로 전환해 '여성인권'과 '문화'의 색깔이 읽히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이번 워크숍에 참여한 지자체들은 5월 중 수정한 사업계획서를 제출하고 PT 발표 등 최종 심사를 앞두고 있다. 최종 선정 자치단체는 다음 달 중순 무렵에 발표된다. 사회혁신추진단은 이번 소통협력 공간의 준비 과정 모두를 아카이빙해 누구나 참고할 수 있도록 영상이나 사진 등의 형태로 포털에 공개할 예정이다.

김용찬 행안부 사회혁신추진단장은 "이번 워크숍은 공모에 참가하는 모든 지자체가 역량을 키우고 공간 기획과 운영의 노하우를 배우고 토론하는 과정으로 마련했다"며 "최종 선정되는 민관협의회와 함께 수요자 중심의 사업 평가지표를 함께 개발하고, 실질적인 운영을 돕기 위해 현장에서 필요한 전문가의 컨설팅도 제공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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