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 제재 속에도 단둥엔 북한 가는 유조열차 늘었다

신경진 입력 2018. 4. 24. 00:56 수정 2018. 4. 24. 0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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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방중 이후 북·중 국경 가보니
20일 오전 중국 지린성 지안역을 출발한 국제열차가 만포철교를 건너 북한 자강도 만포시로 들어서고 있다. 이 철교로 2010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중국을 방문했다. [신경진 기자]
“천둥소리는 요란하지만 내리는 비는 적다(雷聲多雨點小).”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중국 방문 이후 북·중 접경에서 만난 한 대북 무역업자의 푸념이다. 북한의 기대 만큼 중국이 제재 단속을 풀지 않는다는 의미다. 하지만 원유 공급, 노동자 단속 등에선 제재의 틈새가 감지됐다.

지난 19일 랴오닝(遼寧)성 단둥(丹東) 외곽 러우팡(樂房)진에 위치한 단둥송유기지(丹東輸油站).

북 근로자 단속 완화 … 100명 유입설도

북한을 오가는 유조열차 25량용 플랫폼에는 레일마다 각각 20량짜리 열차 두 대와 한 량짜리 열차 한 대가 정차돼 있었다. 이튿날 오후에는 20량짜리 열차 2대가 늘어난 총 80여 량의 원유탱크가 목격됐다. 여기 실린 원유 2496t이 일년 내내 공급된다고 가정하면 1년이면 91만1040t 가량이다.

1975년 개통된 북·중 우의송유관의 설계 용량인 300만t에는 못 미치지만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제재 결의 2397호가 규정한 연간 52만5000t의 1.74배에 달한다. 물론 중국이 실제로 얼마나 북한에 원유를 공급하는지는 확인하긴 어렵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중국 상무부는 지난 1월 6일 대북 원유 수출 한도를 연간 52만5000t으로 제한했다. 하지만 목격된 유조열차는 중국의 제재 이행 의지를 의심하기에 충분했다. 기자가 2년 전 찾았을때 “하루 한 번꼴로 (유조) 열차가 오간다”고 했던 인근 상점 상인은 이번엔 열차 왕래 빈도를 묻자 굳게 입을 다물었다. 입단속 영향인 듯했다.

북한의 달러박스인 근로자 단속도 완화됐다. 지난해 유엔 안보리는 2년간의 유예기간을 주면서 해외 각국의 북한 근로자들을 모두 북한으로 돌려보내라고 했다. 하지만 단둥의 한 소식통은 “단둥 주변에서는 아직도 북한 노동자 3만~4만 명이 돌아가지 않고 있다”며 “최근에는 오히려 20~100명씩 새로 들어오는 추세”라고 말했다.

그는 “김정은 방중 이후 파견 인력을 관리하는 보위부도 제치고 중앙의 ‘방침’을 받은 여성 100명이 단둥에 들어왔다는 소식을 북한 일꾼에게 들었다”고 했다. 자유아시아방송(RFA)은 이달 2일 옌볜(延邊) 허룽(和龍)시에 400명의 북한 여성 근로자가 새로 파견됐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이들은 정식 취업 비자가 아닌 도강증(국경 통행증)을 가지고 입국한다. 유엔 안보리 결의 위반이다.

유엔 제재 여파로 올 초에 문을 닫았던 북한과 관련된 것으로 알려진 업소들도 우회로를 찾아 영업을 하나둘씩 재개하고 있었다. 북한 정찰총국의 해킹거점으로 알려진 선양(瀋陽)의 칠보산 호텔 정문엔 중푸(中福)국제호텔 간판이 깔끔하게 걸려있었다.

호텔 내 옛 북한식당 ‘경연(京筵)’ 간판 아래에선 일꾼들이 식당 재개장 준비에 한창이었다. 창문에는 사무직·카운터·기술·주방 등 직원을 모집하는 붉은색 공고가 붙어있었다.

선양 칠보산호텔 간판 바꾸고 새단장

단둥시 외곽 러우팡진 바싼 유류저장소에 정차된 유조열차. 이곳에서 시작되는 북·중 송유관을 통해 북한에 원유를 공급한다. [신경진 기자]
선양의 코리아타운 시타(西塔) 거리의 대형식당 모란관 등 북한 식당들도 영업 재개를 준비하고 있다는 소문이 들렸다. 선양의 한 소식통은 “모란관이 곧 영업을 재개할 것”이라고 했다. 명의만 중국인으로 바꾸면 유엔 제재 위반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 교민은 “폐쇄된 모란관을 인수하기 위해 팔방으로 알아봤지만, 여전히 소식이 없다. 북한이 처음부터 제재는 한때라고 여긴 듯하다”고 말했다.

북한 무역업자들이 몰려있는 단둥 고려거리는 여전히 한산했다.

한 무역업자는 “지난 9월 이후 단속 강도가 상상 이상”이라며 “1월에 유엔 신규 제재(2397호) 시행령까지 발효되면서 쇠붙이의 경우 연장은 물론 못 하나도 못 나간다”고 말했다. 화물 트럭 차축 옆에 몰래 숨겨 들어가던 차량 수리용 공구가 적발돼 벌금 5만 위안(850만원)을 낸 사례도 있었다고 했다. 다른 소식통은 “북·중 간 밀수가 여전하지만, 단속이 계속되면서 수수료가 지난해보다 서너배 올랐다”고 전했다. 올해 굵직한 밀수선 적발 사례가 5건 있었다는 말도 들렸다.

단둥 고려거리 한산 “못 하나도 단속”

단둥의 명소인 항미원조 기념관과 기념탑 공사는 막바지로 치닫고 있었다. 2014년 말에 시작된 이래 지지부진하던 공사가 오는 7월 27일 정전 65주년 기념일을 앞두고 양국 관계 정상화와 맞물리면서 속도를 내는 듯했다. 19일 오후 단둥을 출발, 압록강을 280여 ㎞ 거슬러 과거 고구려 국내성이었던 지린(吉林)성 지안(集安)시를 찾았다. 지안을 출발 매주 월·수·금 북한 자강도 만포를 오가는 국제열차가 운행되고 있었다.

북한 주민 15~16명이 역사 앞에서 배달된 휴지, 식용유 등 일용품을 찾아 들고선 탑승했다. 한 북한 중년 여성이 배웅나온 젊은 여성에게 들고 있던 휴대전화를 주고 오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열차 출발 전 촬영을 하는데 국경 수비를 담당하는 무장경찰 차량이 다가와 신분증을 요구했다.

훙(洪) 모 경관은 “지안은 기자가 자유롭게 촬영할 수 없는 민감한 국경지대”라며 지안에서 찍은 사진을 모두 삭제했다. “보도가 한 번 나가면 기자가 몰려오고 북한이 우리에게 항의한다.” 무경이 밝힌 단속 이유다. 그러면서 그는 “북·중 관계는 요즘 문제없다”고 말했다. 공안은 랴오닝성 경계지역까지 100여 ㎞를 따라오면서 취재를 감시했다.

선양·단둥·지안=신경진 특파원 shin.kyung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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