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 프리즘] 만델라 후계자 라마포사, 흑백 경제 격차 해소할까

입력 2018. 4. 24. 00:05 수정 2018. 4. 24. 0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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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 남용에 부정부패 스캔들까지
흑인 정권, 만델라 퇴임 후 내리막
만델라 동지였던 흑인의 대변자
국민들 사이에 경제 개선 기대감

박경덕의 아프리카 아프리카
시릴 라마포사 남아공 대통령은 ‘만델라의 후계자’로 불린다. 수차례 투옥되는 등 흑인 차별 정책과 싸운 만델라의 정치적 동지다. [AP=연합뉴스]
지난달 5일 오후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 외곽에 있는 OR 탐보 국제공항. 전날 밤 인천공항에서 출발해 꼬박 만 하루 만에 남부 아프리카의 관문인 이곳에 도착했다. 두바이를 거쳐 비행시간만 총 18시간 35분. 올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아프리카는 정말로 먼 땅이다.

자동차를 타고 공항을 빠져나오자 곧바로 들판이다. 그 평원 한가운데로 곧게 뻗은 도로를 질주했다. 그렇게 얼마를 달리자 주변 풍광이 갑자기 바뀌었다. 도로 주변에 판잣집들이 늘어서 있고, 남루한 차림의 사람들이 그사이를 지나다녔다. 거리 곳곳에 쓰레기가 널브러져 있고, 가벼운 비닐과 스티로폼 조각들은 도로 위에까지 날아들었다. 내비게이션을 보니 ‘알렉산드라’다. ‘아뿔싸. 이 길로 오는 게 아니었는데….’

알렉산드라는 비극의 현장이다. 10년 전 남아공에서 ‘제노포비아(Xenophobia)’라 불리는 외국인 혐오 범죄가 처음 발생한 곳이다. 2008년 5월, 바로 이곳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을 겨냥한 폭력사태가 일어나 전국으로 확산하면서 60여 명이 숨지고 수백 명이 다쳤다.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통해 그 참상을 목격한 적이 있다. 10년 전 비극이 현재화되면서 나도 모르게 몸이 떨렸다. 알렉산드라는 도로 사정도 좋지 않았다. 자동차가 제 속도를 내지 못했고, 교차로마다 신호에 걸리면서 마음은 점점 더 조급해졌다. 긴장감이 엄습하는 가운데, 설상가상으로 날도 서서히 저물고 있었다.

바로 그때 또 한 번 반전이 시작됐다. 휘황찬란하게 불을 밝힌 고층 건물들이 갑자기 눈앞에 펼쳐졌다. 아프리카 대륙을 통틀어 ‘가장 부유한 지역’인 샌튼(Sandton)에 들어선 것이다. 샌튼은 곳곳에 호화 쇼핑몰과 5성급 고급호텔이 즐비하다. 백인이 주로 거주하는 호화 주택지구도 몰려있다. 알렉산드라와 샌튼이 이렇게 가까이 붙어 있는 줄은 미처 몰랐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요하네스버그 교외 빈민굴과 최고급 타운을 지나온 동선(動線)이 남아공에서 흑인과 백인의 경제적 격차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처럼 느껴져 씁쓸했다.

100년 전 이 땅에 넬슨 만델라가 태어났다. 그때 남아공은 백인들이 지배하는 땅이었다. 영국계와 네덜란드계 백인들이 각각 남아프리카연방(남아공의 전신)의 경제와 정치를 장악하고 있었다. 흑인들은 자신이 태어난 땅에서 주인 행세를 하지 못하고 주변부를 맴돌았다. 1948년 백인 정권은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라는 인종분리차별 정책을 법으로 제정했다. 이후 남아프리카연방에서 흑인에 대한 차별 정책이 점점 더 심해졌다.

당시 서른 살이던 청년 만델라는 흑인 차별 저항 운동을 이끌었다. 27년간의 수감생활도 그 투쟁의 한 과정이었다. 결국 만델라는 흑인도 참여하는 민주적 선거를 관철시켰고, 1994년 남아공 최초로 흑인이 참여한 자유선거를 통해 다인종 의회를 구성했다. 그리고 바로 그 의회에서 대통령이 됐다.

어렵게 출범한 흑인 정권은 1999년 만델라가 퇴임한 후 내리막길을 걸었다. 타보 음베키와 제이컵 주마 등 만델라의 동지였던 후임 대통령들이 재임 시절 권력을 남용하고 부정부패 스캔들에 휘말린 탓이다. 흑인 대통령의 시대가 이어졌지만, 대다수 흑인의 삶은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지표가 흑인 실업률이다. 남아공 통계청이 발표한 지난해 4분기 고용 현황에 따르면, 남아공 실업률은 26.7%를 기록한 가운데, 인종별 통계에서 흑인 실업률이 30%로 가장 높았다. 다음으로 혼혈인 컬러드(Coloured)가 23.5%, 인도·아시아계가 9.2%, 백인 6.7% 순이었다. 흑인 실업률은 백인과 비교하면 차이가 23.3%포인트나 된다.

높은 흑인 실업률은 치안 불안의 주요 원인이 되고 있다. 이웃나라에서 일자리를 찾으러 들어온 외국인 노동자들을 향해 분노를 폭발하는 제노포비아도 따지고 보면 일자리 다툼이 주요 원인이다. 코트라 이승희 아프리카 지역본부장은 “흑인들의 가난과 높은 실업률은 남아공에서 구조적인 차별과 배제의 결과로 나타나는 측면이 강하다”며 “그래서 주요한 정치적 의제로 접근해야 하는데, 강도와 약탈 같은 개인적인 폭력으로 표출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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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델라 탄생 100주년인 올해, 그의 후계자로 불리던 시릴 라마포사(65)가 남아공의 새 대통령이 되었다. 라마포사는 대통령에 취임하자마자 발표한 올해 국정연설에서 가난한 흑인들이 구조적으로 배제되는 사회 시스템부터 바꾸겠다고 약속했다. 최우선 국정과제로 소외된 흑인들을 보살피기 위해 빈곤층 교육과 보건, 최저임금제도 등을 개혁하겠다고 발표했다. 라마포사는 또한 경제의 파이를 늘리기 위해 농업과 광산업을 육성하고 외국인 투자유치와 관광업 활성화를 추진하겠다는 의지도 밝혔다.

라마포사는 흑인차별정책과 싸운 만델라의 동지다. 대학 시절 학생운동을 벌이다 수차례 투옥됐고, 30세가 되던 1982년에는 남아공 광산노조를 설립해 노동현장에서 흑인 차별에 저항했다. 정계에 진출한 뒤에는 그 역시 아프리카민족회의(ANC)에서 흑인의 이익을 대변했다.

라마포사는 ‘경제 전문가’이기도 하다. 1997년 ANC 대표 경선에서 실패한 뒤 한 때 사업가의 길을 걸었다. 그래서 남아공 국민 사이에서는 앞으로 비즈니스 하기가 좋아질 것이라는 기대가 많다. 지난달 초 요하네스버그에서 만난 한 기업인은 “라마포사 대통령은 자신이 직접 사업을 해봤기 때문에 기업인의 애로를 잘 알고 있을 것”이라며 “앞으로 남아공에서 사업하기가 좋아질 것이고 외국인들이 투자하는 데도 좋은 환경이 만들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박경덕 포스코경영연구원 수석연구원·국제관계학 박사
한국에도 시장 개척의 기회가 열릴 것으로 보인다. 코트라 관계자는 “향후 남아공 정부가 교육·보건·복지 등 공공 서비스 부문에 큰 관심을 쏟고 있는 만큼, 우리 기업들은 교육·보건 시장과 이와 연관된 정보통신기술(ICT) 및 인프라 산업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박경덕 포스코경영연구원 수석연구원, 국제관계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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