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벼락 승진' 조현민이 부른 자질 논란..재벌 자녀 '경영세습' 사라질까

조형국 기자 입력 2018.04.23. 17:28 수정 2018.04.24.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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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서울 중구 대한항공빌딩 앞으로 시민이 지나가고 있다.  |권도현 기자 lightroad@khan.co.kr

“말은 동기지만, 결국 다른 길을 갈 그들과 나.”

2012년 1월부터 진에어 마케팅부 부서장으로 근무 중이던 조현민 대한항공 전무는 그해 4월 자신의 싸이월드에 진에어 신입승무원 11기와 함께 안전교육을 받은 소감을 남겼다. “짧고도 긴 2주, 함께한 시간들. 말은 동기지만, 결국 다른 길을 갈 그들과 나. 하지만… 함께한 2주는 앞으로도 더 많은 소통과 협력으로 더 발전하는 진에어를 만들거라 난 생각한다.” 체험교육 사진과 함께 올라온 글에서 그는 “언제 이런 체험 하겠어ㅎㅎ”라고 썼다.

조 전무의 예언은 현실이 됐다. 1년 만에 진에어 마케팅본부 본부장(전무)이 된 조 전무는 2016년 7월에는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대한항공에서의 쾌속 승진은 더 눈부시다. 2007년 대한항공 통합커뮤니케이션실 과장으로 그룹에 발을 들인 조 전무는 2008년 부장, 2010년 상무보를 거쳐 2014년부터 대한항공 통합커뮤니케이션실·여객마케팅부 전무를 겸임했다. 같은 기간 2010년 한진칼 자회사인 정석기업의 등기이사, 2011년 한진에너지 등기이사, 2016년 6월 한진칼 비등기 임원을 맡았다.

2014년에는 한진칼 자회사인 정석기업의 대표이사를, 2016년 8월에는 같은 한진칼 자회사인 한진관광 대표이사를 맡았다. 지난해 4월에는 칼호텔네트워크의 대표이사에 선임됐다. 이로써 조 전무는 진에어 부사장, 한진관광·정석기업·칼호텔네트워크 대표를 동시에 맡으면서 대한항공 전무로 일하게 됐다.

조 전무는 2005년 서던 캘리포니아 대학교(USC)에서 학사 학위를 취득했고 2012년 서울대학교 경영대학원에서 글로벌경영학을 수료했다. USC는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재단이사로 있는 곳으로, 조현아·원태·현민 3남매 모두 이 곳에서 석사 또는 학사를 받았다.

한진 일가의 장녀 조현아 칼호텔네트워크 사장은 1999년 대한항공 호텔면세사업본부에 입사한 뒤 6년 만에 대한항공 상무보가 됐다. 장남 조원태 대한항공 대표이사는 2008년 여객사업본부장이 된 후 이듬해 전무를 거처 2013년 부사장이 됐다.

재벌 2, 3세의 ‘초고속 승진’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난해 9월 기업 경영성과 평가사이트 CEO스코어가 상위 100대 그룹 총수일가 185명 승진 현황을 조사한 결과, 총수 일가는 입사 후 평균 4.2년 만에 임원 자리에 오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반 회사원은 평균 51.4세에 임원이 되는데, 총수 일가는 평균 33.7세에 임원이 돼 17.5년 빨리 승진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총수일가의 쾌속승진은 재벌 2~3세로 내려갈수록 빠르게 진행됐다. 창업 1∼2세대 총수일가는 평균 30.1세에 입사해 34.8세에 임원이 됐지만, 자녀 세대는 29.9세에 입사해 33세에 임원이 됐다. 임원 승진 기간은 부모 세대의 4.7년보다 1.6년 짧아진 3.1년이었다. 정교선 현대홈쇼핑 부회장(0.8년), 한경록 한솔제지 상무(0.9년) 등은 입사 후 1년도 안 돼 임원으로 승진했다.

지난해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의 장남 정기선 현대중공업 전무는 2009년 대리로 입사한 지 8년 만에 현대중공업 부사장 겸 현대글로벌서비스 대표이사로 승진했다. 구자열 LS그룹 회장의 아들 구동휘 LS산전 이사는 상무로 승진했다. 구 상무는 2013년 LS산전에 차장으로 들어와 3년 만에 이사로 승진했다.

‘금수저 물고 태어난 이들의 쾌속 승진’은 계속 될까. 조현민 대한항공 전무의 ‘물벼락’ 갑질로 재벌 2~3세의 자질 논란이 이어지면서 이들의 승승장구에도 제동이 예상된다.

참여연대는 23일 고용노동부에 ‘재벌 총수일가의 초고속 승진이 근로기준법 제6조 위반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묻는 질의서를 발송했다. 참여연대는 “그간 재벌총수 일가가 누려온 특혜 중 하나인 고속 승진이 노동 법령을 위반한 것은 아닌지 확인하기 위한 것”이라고 질의 취지를 설명했다.

현행 근로기준법 제6조는 “사용자는 근로자에 대해 남녀 성(性)을 이유로 차별적 대우를 하지 못하고, 국적·신앙 또는 사회적 신분을 이유로 근로조건의 차별적 처우를 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참여연대는 “재벌 가문 태생이라는 ‘선천적 사회적 신분’을 이유로 특별히 채용되고 초고속으로 승진하는 ‘차별적 처우’를 하는 것이 법에 위반하는지 질문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경율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소장은 “단지 재벌 자녀라는 이유만으로 총수일가 2~3세들이 주요직으로 승진해 경영상 비효율과 사회적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며 “이번 질의가 총수일가의 노동 불균형을 근절하는 단초가 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조형국 기자 situation@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