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권 대표 누굽니까~안철수 '드루킹 회견문'에 드러난 '속내'

입력 2018. 4. 23. 16:06 수정 2018. 4. 23. 19:1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정치BAR_송경화의 올망졸망

[한겨레]

안철수 바른미래당 서울시장 후보가 22일 서울 종로구 미래캠프에서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안철수 바른미래당 서울시장 후보의 요즘 최대 관심사는 ‘드루킹’ 사건이다. 두 차례 긴급 기자회견에 이어 지난 22일에도 기자간담회를 열어 ‘건강한 민주주의 시대를 새롭게 열겠습니다’라는 제목의 입장문을 냈다. 그런데 입장문을 자세히 보면, 서울시장 선거에 나선 안 후보 쪽의 ‘속내’가 곳곳에 숨어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 타기팅…‘반 정부’표 결집 의도
‘서울시 등한시’ 비판 의식해 “당선만을 위할 순 없다”
‘대선 불복’ 비판 우려되자 “결과 달라졌을거라 안봐”
박원순 ‘경수야 힘내라’ 올리자 바로 끌어들이기
“야권 대표 선수” 언급하며 ‘김문수 대신 나’ 강조

“저는 이틀전 바른미래당 서울시장 후보로 확정되자마자, 이른 아침에 나와 새벽시장에 문을 열고 하루 시작하는 분들, 출근길 나선 시민들 만나 뵙고 인사드리고 싶었습니다. 한 분이라도 더 많은 시민들 손잡아 드리고, 서울시에 바라는 변화 하나라도 더 묻고 들으며 함께하고 싶었습니다.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그러지 못했습니다.

서울시장 후보 확정 기자회견에서는 ‘19대 대선 불법 여론조작 게이트’ 진상규명을 촉구해야 했고,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 ‘드루킹’과 만난 사실이 없는지, ‘드루킹 공직요구 협박사건’을 언제 보고받은 것인지 물어야 했습니다. 한 번 더 묻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 드루킹을 만났습니까?”

☞☞지난 20일 바른미래당 서울시장 후보로 확정된 안 후보는 후보직 수락 입장을 밝히면서도 드루킹 공격에 집중했다. 대통령 후보 시절 드루킹과 만난 사실이 없는지 물으며 문 대통령을 겨냥하기도 했다. 이날도 마찬가지였다. 여기에는 서울시와 직접 관련된 이슈가 마땅치 않은 상황에서, 대통령과 각을 세워 ‘반 정부·여당’ 표를 자연스럽게 결집하려는 의도가 깔려있다는 게 내부 설명이다. 문제는, 안 후보의 또다른 경쟁자 김문수 자유한국당 서울시장 후보도 똑같은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7년간 새정치를 하겠다며 애써온 제가 구태정치의 상징인 ‘불법 여론조작 게이트’를 모른채 하고 저의 서울시장 당선만을 위해 움직일 수는 없습니다.”

☞☞박지원 의원 등 더불어민주당 탈당파와의 결합, 대선 제보조작 사건, 극심한 갈등 뒤 분당…. 최근 1~2년 사이 ‘안철수 새정치’에 대한 평가는 처음과 많이 달라졌다. “안 후보 역시 구태 정치인과 비슷해졌다”는 비판과, “이제야 진짜 정치인이 됐다”는 평가가 동시에 존재한다. 안 후보 쪽 역시 “새정치가 퇴색했다”는 말을 의식하고 있다. 안 후보 입에서 ‘새정치’라는 단어가 등장한 것은 오랜만이다. 이날 “7년간 새정치를 하겠다며 애써”왔다고 자신을 표현한 것은, 여론의 평가와 달리 초심을 잃지 않았다는 점을 부각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드루킹’ 공세에 집중하는 안 후보를 향해 서울시 비전 제시 등은 등한시한 채 대선 후보와 유사한 행보에만 집중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를 의식한 듯 안 후보는 “모른 체하고 저의 서울시장 당선만을 위해 움직일 수 없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 ‘선거운동과 겸사겸사’라는 판단도 깔려 있다.

“제가 피해자라고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대선의 결과가 달라졌을 거라고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닉슨이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하야한 것은, 1개 주를 빼고 압승한 대선의 결과가 바뀔 가능성이 있어서가 아니었습니다. 그 자체가 범죄행위였기 때문입니다.”

☞☞‘드루킹’ 공세에서 안 후보 쪽이 제일 염려하는 지점이 여기에 있다. 당 관계자는 “마치 지난 대선 결과에 불복하려는 듯 비춰질까봐 우려되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의도와 달리 1년 전 대선 결과에 아직 연연하는 모습으로 보일까봐 걱정하는 것이다. 이에 대한 방어막으로 “피해자라고 문제제기하는 것은 아니다”, “대선 결과가 달라졌을 거라고 문제제기하는 것이 아니다” 등의 전제를 덧붙인 것이다.

“남북정상회담이 만병통치약이라고 믿는 모양인데, 우리 국민은 과연 북한이 실제 핵을 포기할 것인지 아주 차분하게 지켜볼 뿐 결코 흥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이번 지방선거 국면에서 야권의 최대 고민 중 하나는 남북 이슈다. 4월 말 남북 정상회담, 5~6월께 북미 정상회담이 예정되면서 지방선거 전 모든 이슈를 잠식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남북·북미 정상회담에서 성과가 클 경우 선거 국면 ‘대여 견제’ 전선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에 미리 ‘가시’를 넣어 놓은 것으로 보인다.

“박원순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에게도 분명히 묻습니다. 김기식과 김경수 후견인 역을 자임했는데, 그것은 서울시장 후보가 되기 위해서 청와대에 충성한 것입니까, 아니면 본심입니까. 김기식 전 금감원장에 대한 의혹이 정치적인 공격이라고 했는데, 법을 어긴 사실이 밝혀지고 낙마한 후에는 아무 말이 없습니다. 박원순 시장은 시민께 사과해야 합니다.

또한 지난 금요일 새벽, 박 시장 트윗 계정에 올라온 김경수 응원글. ‘김경수 멋있다, 경수야 힘내라.’ 이거 박 시장이 올린 것 맞습니까. 이 단순명료한 질문에 즉각 답해야 합니다. 그리고 어제 갑자기 트윗을 삭제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생각이 바뀐 것입니까, 사정이 바뀐 겁니까.”

☞☞‘드루킹 공세’에서 안 후보 쪽의 또다른 고민은 ‘박원순 이슈’가 부각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당의 한 관계자는 “(안 후보가) 댓글 피해를 얘기하는 것만으로는 서울시장 선거 지지율 상승에 한계가 있다”며 “(특히) 드루킹 이슈에서 박 시장이 쏙 빠져 있었다”고 말했다. 그런데 지난 19일 박 시장은 자신의 트윗 계정에, 김경수 의원의 출마 관련 기자회견 영상 링크와 함께, “김경수 멋있다, 경수야 힘내라”라는 글을 올렸다가, 다음날 이 글을 삭제했다. 안 후보 쪽 입장에선, 박 시장이 드루킹 이슈에 ‘발을’ 걸쳤다고 본 것이다. 안 후보는 이를 놓치지 않고, 왜 김경수 의원을 감싸는 글을 올렸다가 삭제했는지를 물으며 박 시장을 비판하고 나선 것이다.

☞☞그런데 박 시장은 19일에 올린 영상 링크와 해당 글을 내렸지만, “경수야, 힘내라”는 취지의 응원 입장을 바꾼 게 아니었다. 박 시장은 지난 20일 서울시장 민주당 후보 수락 입장을 밝히며 “아쉽게도 선관위 요청으로 어제 쓴 김경수 의원 관련 링크를 내렸다”고 경위를 설명한 뒤, “그러나, 여전히 김경수 멋있다, 경수야, 힘내라”라는 글을 함께 남겼다. 특정 후보의 기자회견 영상을 링크하는 것은 선거법상 논란이 될 수 있다는 선관위 권고 때문에, 김 의원 영상이 포함된 첫 글을 지웠을 뿐, 김 의원을 응원하는 입장을 수정한 것이 아니란 설명이다.

“야권의 대표선수로 국민의 마음을 받들어 승리하고, ‘확실한 견제’로 ‘가짜 민주주의’의 가면을 벗겨내겠습니다. 매크로로 만드는 수백만의 ‘댓글’이 아니라, 수백만 시민의 힘을 모아 ‘진짜 민심’이 넘쳐흐르게 하겠습니다.”

☞☞이번 서울시장 선거는 ‘1여2야’의 3자구도 양상으로 치러진다. 야권에는 여러모로 불리하다. 여권 후보가 ‘현직 프리미엄’까지 갖고 있어 더욱 그렇다. 안 후보는 지난 4일 출마선언 때부터 “야권 대표 선수”라는 표현을 사용한 뒤 거듭 이를 강조하고 있다. 김문수 후보와의 인위적인 선거연대에 대한 역풍이 예상되는 만큼, 일단은 민심에 의한 자연스러운 단일화를 기대하겠다는 것이다. ‘야권 대표 선수’란 말은, “중도, 보수 유권자여, 김문수가 아닌 나에게 표를 몰아달라”는 뜻의 다른 말이다. 아직까지는 안철수 후보, 김문수 후보가 비슷한 선거 전략·행보를 이어가는 가운데 야권 대표 주자를 향한 두 후보 경쟁이 더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송경화 기자 freehwa@hani.co.kr

▶ 한겨레 절친이 되어 주세요! [신문구독]
[사람과 동물을 잇다 : 애니멀피플][카카오톡]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한겨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