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김정은의 '트럼프 사용법' 성공 예감

국기연 2018. 4. 23.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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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22일(현지시간) ‘북한이 비핵화에 합의했다’는 내용의 트윗을 날렸다가 입방아에 올랐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 발사를 중단하고, 풍계리 핵실험장을 폐기하겠다고 선언한 것이 그 발단이 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요일 아침에 척 토드가 진행하는 NBC 시사 프로그램 ‘투데이 쇼’를 보다가 잔뜩 화가 났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가짜뉴스 NBC의 졸린 눈을 한 척 토드는 우리가 북한과의 협상에서 너무 많은 걸 포기했고 북한은 아무것도 포기하지 않았다고 방금 말했다”고 지적했다. 트럼프는 이어 “와, 우리는 아무것도 양보하지 않았고, 그들이 비핵화(세계를 위해 매우 훌륭한 일)와 실험장 폐기, 실험 중단에 합의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김 위원장이 발표한 성명에는 비핵화에 관한 내용이 들어있지 않았기에 트럼프 대통령이 사실이 아닌 주장을 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북한이 핵실험장 폐기 선언을 한 지 불과 1시간 만에 트위터를 통해 “북한과 전 세계에 매우 좋은 뉴스로 큰 진전이다”면서 “모두를 위한 진전이 이뤄지고 있다”고 환영하는 입장을 밝혔다. 트럼프는 이어 “우리의 정상회담을 고대한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화염과 분노’ ‘꼬마 로켓맨’ ‘북한 완전 파괴’ 등의 말 폭탄을 퍼붓던 때와는 180도 달라진 태도를 보였다. 이 때문에 미국에서는 김정은의 ‘트럼프 사용법’이 제대로 먹혀들고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북한 김정은 조선노동당 위원장이 20일 평양에서 열린 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3차 전원회의를 주재하며, 풍계리 핵실험장을 폐기하고 경제건설에 총력을 집중한다는 새로운 `전략적 노선`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출처=노동신문
◆김정은의 ‘거래의 기술’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을 협상의 달인이라고 여기고 있고, 그 비법을 다룬 ‘거래의 기술’이라는 저서를 남겼다. 그런 트럼프가 김정은과 어떻게 거래를 할지 초미의 관심사로 부각됐다. 그렇지만 김정은-트럼프 회담의 전초전에서 트럼프를 다루는 ‘거래의 기술’을 선보인 쪽은 김정은이라고 미국의 언론 매체 ‘악시오스’가 이날 보도했다. 악시오스는 “김정은이 트럼프와 거래하는 기술을 이미 익혔다”면서 “그것은 바로 트럼프에게 승리를 안겨주는 것이거나, 최소한 트럼프가 승리했다고 생각할 수 있게 하는 것, 아니면 트럼프가 승리했다고 선전을 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미국 언론과 전문가 그룹은 김 위원장의 핵실험 중단과 핵실험장 폐기 선언을 ‘핵보유국’ 선언으로 해석하고 있다. 특히 김 위원장이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보냈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백악관의 트럼프 대통령 참모진도 김 위원장이 트럼프를 겨냥해 덫을 놓았다고 경계하고 있다. 그러나 최고 정책 결정권자인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매우 좋은 뉴스’이고 ‘큰 진전’이라고 받아들였으며 심지어 북한이 ‘비핵화에 합의했다’고 주장했다.

빅터 차 조지타운대 교수는 악시오스에 “아무도 이것을 믿지 않을지라도 만약 북한이 트럼프 대통령만큼은 이것을 믿도록 하는 데 성공한다면 이것이야말로 북한이 원하는 바가 아니겠냐”고 지적했다. 


◆‘화염과 분노’  대응책

미국의 시사 종합지 ‘애틀란틱’은 이날 안드레이 란코프 NK 뉴스 국장의 기고문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에 ‘화염과 분노’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했으나 김 위원장은 그런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대처 방법을 알아냈다고 전했다. 김 위원장이 핵실험 중단 및 핵실험장 폐기 선언을 한 것이 그 대표적인 사례라는 것이다. 북한의 이 선언이 미국 정부가 수십 년 동안 골머리를 앓아온 북한 핵 문제 해결과는 거리가 먼 얘기이지만 이것을 마치 북한이 양보한 것처럼 비치게 했다고 란코프 국장이 강조했다.

그는 “북한은 미국의 선제 타격 위협과 경제 제재 압박에서 벗어나야 하기 때문에 뭔가 양보를 해야 할 입장”이라고 강조했다. 김 위원장은 ‘단계적 동시 조처’ 방식을 제안하면서 트럼프 대통령과의 회담을 준비하고 있고, 중국은 이런 북한을 지원하고 있다. 란코프는 “북한의 단계적 조처에는 수많은 과정이 있고, 이를 이행하는데 많은 시간이 걸려 그사이에 백악관의 주인이 다른 전통적인 인물로 바뀌어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런데도 트럼프가 북한의 제안을 거절하고, 북한에 완전한 항복을 요구하면 중대한 실수를 범하는 것이라고 그가 강조했다. 란코프 국장은 “트럼프가 김정은에게 비핵화와 굶주림 및 폭격을 당하는 것 중에서 선택하라고 하면 김정은이 굶주림과 폭격을 당하는 쪽을 택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미국이 제2의 아프가니스탄전, 이라크전 또는 베트남전이 될 전면전을 북한과 치르는 것보다는 불완전한 타협이 낫기 때문에 트럼프가 북한과 협상하기를 바랄 수밖에 없다고 란코프 국장이 주장했다.

워싱턴=국기연 특파원 ku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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