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스위니 에픽게임즈 대표 개발, ‘슈퍼 마리오’에서 영감

게임별곡 시즌2 [에픽게임즈 2편]

■ 페르시아의 공주

‘페르시아의 왕자’라는 명작 게임이 있다. 1990년대 가장 획기적인 게임으로 손꼽히며 현재까지도 캐릭터의 그 부드러운 움직임을 기억하는 분들이 많은 게임이다. 영화로도 제작될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 

타이틀 화면 하단에는 1990이라는 숫자가 적혀 있지만, 원래는 1989년에 출시된 게임이다. 시리즈 1편 출시 이후 엄청난 인기를 얻었고 그 이후로도 ‘The Shadow and the Flame(1993)’ ‘Prince of Persia 3D(1999)’ ‘The Sands of Time(2003)’ ‘Warrior Within(2004)’ ‘The Two Thrones(2005)’ ‘Battles of Prince of Persia(2005)’ ‘Prince of Persia(2008)’ ‘The Fallen King(2008)’ ‘The Forgotten Sands(2010)’ ‘Prince of Persia: The Shadow and the Flame remake(2013)’ 등 최근 까지도 여러 시리즈가 출시될 정도로 인기가 높다.

페르시아의 왕자(Prince of Persia) 1990
(이미지 – YouTube.com)

XT 컴퓨터에서도 흑백 모니터에서도 원활한 게임 진행이 가능했기 때문에 XT컴퓨터, 허큘리스 그래픽 카드, 흑백 모니터에서 286(AT)컴퓨터, VGA그래픽 카드, 컬러 모니터로 변화하는 동안에도 꾸준하게 인기를 얻었던 게임이다.

그러던 중에 1992년 이상한 게임이 하나 등장했는데, 당시에 이름을 잘 몰랐던 친구들은 ‘여자 페르시아 왕자’라고 부르기도 했다. 정확한 이름은 ‘질 오브 더 정글(Jill of the Jungle)’ 이라는 게임으로, 에픽메가게임즈(Epic Mega Games)에서 개발한 MS-DOS용 횡스크롤 게임이다. 

1990년대 셰어웨어라는 형식으로 PC통신망이나 게임 잡지 부록 등으로 널리 퍼졌으나 이 게임을 진득하게 끝까지 해 본 친구는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총 3편의 시리즈로 구성된 이 게임은 ‘Jill of the Jungle’을 시작으로 ‘Jill Goes Underground’와 ‘Jill Saves the Prince’로 구성되어 있다. 마지막 편 제목이 왕자를 구하다(Jill Saves the Prince)라는 제목인데 어째 페르시아에 있는 어느 왕자를 연상시킨다.

질 지하세계를 가다 – 이 동네는 사람이 안 사나..
(이미지 – YouTube.com)

게임의 시스템은 ‘페르시아의 왕자’를 많이 참고한 것처럼 보인다. 단순히 액션만을 강조한 것이 아니라 게임 중간중간 퍼즐을 풀어야 다음으로 진행될 수 있게 한다거나, 특수한 아이템을 입수해야 다음으로 넘어간다거나, 스위치를 활용해서 잠겨 있는 문을 열어야 하는 등 생각하면서 진행해야 하는 부분들이 많다. 그래서 게임 장르도 ‘횡스크롤 액션 어드벤처게임’이라고 소개되어 있다.

‘페르시아의 왕자’는 그래도 여러 적군들이 등장해서 적적함이 덜했지만, ‘질 오브 더 정글’에서는 거의 여전사 혼자만 등장하는데, 게임을 하다 보면 적적함을 이루 다 말로 할 수가 없다. 배경 음악 역시 굉장히 엄숙하고 고요하면서도 잔잔하게 흘러 나오기 때문에 어떤 의미로는 섬찟함을 느끼게까지 한다.

질 지하세계를 가다 – 이야 진짜 끝판 깰 동안 사람이 하나도 안 나와..
(이미지 – YouTube.com)

이 게임은 애초에 ‘Xargon’을 만들기 전에 엔진 테스트용으로 개발된 게임이다. 그러다보니 회사 차원에서도 크게 홍보하거나 밀어주는 주력 상품은 아니었고, 테스트 게임을 기본으로 확장된 맵 구성과 레벨 시스템, 아이템 등 총 3부작으로 구성된 시리즈 구성 역시 똑같이 만들어져 있다. 

비록 본 게임을 위한 테스트 게임이라고는 하지만 게임의 구성은 꽤 짜임새 있게 이루어져 있어 잔잔한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무엇보다 여자 캐릭터가 단독으로 출연하는 게임은 흔하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실제로 이 게임 이후로 오랫동안 여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게임은 거의 출시된 것이 없는 것만 봐도 어떤 의미에서는 가치가 있는 게임이다.

한참 후에 ‘툼 레이더’가 출시 되기 전까지 액션 게임에서 여자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하는 게임은 많지 않았다. 심하게 과장해서 얘기하면 ‘툼 레이더’는 ‘질 오브 더 정글’을 3D로 바꾼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이 게임 역시 액션과 퍼즐이 잘 조합되어 있는 게임이다.

Xargon (1993) – 이 게임을 만들기 위해 질은 그렇게 뛰어다녔나 보다.
(이미지 – https://www.dosgamesarchive.com/download/xargon/)

‘질 오브 더 정글’의 특징이라면 시리즈마다 게임 배경 테두리 화면 색이 다르다는 점과 등장하는 캐릭터는 같은 사람인데 옷 색깔이 다르다는 점이다. 1편에서는 녹색 옷을 입고 나오지만, 2편에서는 빨간색 옷을, 3편에서는 파란색 옷을 입고 나온다.

이 게임을 개발한 팀 스위니(Tim Sweeney)는 당시 자신이 즐겨 하던 닌텐도의 ‘마리오’ 게임에서 영감을 받아 개발했다고 한다. 그 역시 어린 시절부터 예사롭지 않은 인물이었다. 피터 몰리뉴가 5살에 개미를 관찰하게 된 것이 그의 게임 개발 철학에 영향을 준 것처럼, 팀 스위니 역시 5살에 잔디 깎는 기계를 분해했다. 일찍이 엔진과 보드 그리고 몇 가지 물건을 조합해서 이동 카트를 만들기도 했고, 9살 때 처음으로 닌텐도의 ‘Space Fire Bird’라는 비디오 게임을 접한 뒤로 게임에 빠져들게 되었다고 한다.

Space Fire Bird (Nintendo)
(이미지 – https://www.emuparadise.me/M.A.M.E._-_Multiple_Arcade_Machine_Emulator_ROMs/Space_Firebird_(rev._03-e_set_1)/98669)

그는 특이하게도 게임을 끝까지 해 본 적이 거의 없었다고 한다. 유일하게 끝까지 가 본 게임은 딱 두 개로, ‘둠’과 ‘포탈’ 이라는 게임이다. 특이한 성향 탓인지 웬만하면 시리즈 하나쯤은 해봤을 ‘젤다’ 시리즈와 ‘파이널 판타지’ 시리즈는 단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다고 한다. 대신 그는 ‘슈퍼 마리오’와 ‘소닉(Sonic the Hedgehog)’을 굉장히 좋아했는데, 특히 닌텐도의 ‘마리오’를 좋아했다. 그렇게 게임에 빠져 살다가 11살 때 처음으로 IBM-PC라는 물건을 접하고 프로그래밍에 빠져들었다. 뭔가 하나에 빠지면 헤어나오지 못하는 것은 팀 스위니 같은 사람들의 공통점이기도 하다.

질 왕자를 구하다 – 사람은 역시 안 나온다.
(이미지 – YouTube.com)

그렇게 프로그래밍 실력을 키우고 그의 나이 21살 때 드디어 에픽메가게임즈에 입사하여 ‘질 오브 더 정글’을 개발하게 됐다. 당시 혼자서는 모든 개발 업무를 다 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4명의 팀을 더 필요로 했는데, 그 당시 팀 스위니가 팀원을 모집하면서 쓴 글이 있다.

“PC용 차세대 셰어웨어 게임에 관심이 있는 게임 프로그래머가 있습니까?  Epic Mega Games는 그런 게임들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초고속 EGA & VGA 그래픽 코드와 객체 지향 게임 엔진을 작성하는 한 두 명의 프로그래머를 찾고 있습니다. Nintendo 스타일의 액션 게임을 진행하는 두 팀이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게임 디자인 팀과 관련된 몇 명의 대학생들과 함께 작업하고 있습니다. 최첨단에서 일하기를 원한다면 연락하지 않으시겠습니까?  PC 프로그래밍 작업 샘플을 우편으로 보내면 면접에 대한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필요한 경우 NDA를 요청하십시오.) 감사합니다.”

게임 개발자 구인 공고에서도 밝혔듯이 그가 ‘질 오브 더 정글’을 개발 할 때 닌텐도의 ‘슈퍼 마리오’에서 영향을 많이 받았음을 알 수 있다.

질 왕자를 구하다 – 사람이다! 사람이야! 여기 사람이 있어요!
(이미지 – YouTube.com)

게임에서 ‘점프’가 차지하는 중요성이라든가 숨겨진 장소에 아이템이나 변신(작아졌다 커지는 마리오의 변신에서 영감을 받은 듯한)이라는 시스템 요소 등 많은 부분들을 ‘마리오’에서 영향을 받았는데, 게임의 속도감 역시 템포가 ‘마리오’와 상당히 비슷한 수준으로 전개된다. 너무 빠르지도 않고 그렇다고 너무 느리지도 않으며, 필요할 땐 한 박자 쉬고 갈 수도 있는 스크롤 진행 방식의 게임으로 적당히 쉬는 동안에 퍼즐을 풀어갈 수도 있다. 맵의 구성 역시 브릭(벽돌)형태의 맵으로 마리오의 맵에서 차용한 부분이다.

질 왕자를 구하다 – 구해주니까 결혼해 달라고 한다.
(이미지 – YouTube.com)

당시 대학생 신분이었던 팀 스위니는 ‘질 오브 더 정글’을 통해 본격적인 상업용 타이틀 제작에 대한 경험을 하게 된다. 비록 셰어웨어 형태의 게임이었지만 그래도 하루에 10~30여 건에 이루는 주문이 들어올 정도로 판매량은 기대 이상이었다고 한다. 학생 신분에서는 그 정도도 큰 돈으로 느껴졌을 것이다. 만약 학생 신분을 떠나 어른의 비즈니스 기준으로 본다면 흥행에 실패한 타이틀이었겠지만, 다행히도 이 게임은 정식 판매용이 아니라 게임 엔진용 실험 버전이었기 때문에 회사 차원에서도 큰 타격은 없었을 것이다.

질 왕자를 구하다 – 인생 뭐 있어. 당연히 OK!
(이미지 – YouTube.com)

1990년대 초기에 이런 게임들을 개발할 여건이 보장되지 않았다면 지금의 언리얼 역시 탄생하지 못했을지 모른다. 개발자를 우대하고 개발자들의 생각을 존중하던 초기의 회사 분위기에서 다양한 시도를 접해 볼 수 있었고, 게임을 파는 것이 아니라 게임을 만드는 엔진을 판다는 다소 생소한 정책 역시 회사 차원에서 지원을 받을 수 있는 분위기가 마련되지 않았다면 나오기 어려웠을 것이다. 여전히 남들이 만든 게임을 유통하는 일을 하거나 몇 번 성공 타이틀을 출시하기는 하겠지만, 실패한 타이틀로 인해 에픽게임즈 회사 자체가 운영관리의 어려움을 겪다가 사라졌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질 오브 더 정글’은 지금의 ‘언리얼 엔진’을 탄생할 수 있게 만든 그들의 철학이 만들어지고 싹 틔울 수 있는 계기가 된 게임이라는 점에서 많은 의미와 가치가 있는 게임이다.

■ 필자의 잡소리

조지 오브 더 정글
(이미지 – YouTube.com)

다분히 ‘질 오브 더 정글’ 남자 버전을 노리고 만든듯한 느낌의 ‘조지 오브 더 정글’ 이라는 플래시 게임이 있었는데, 게임 내용은 액션 캐릭터라기 보다는 타잔을 모티브로 한 줄타기 게임이다. 단순한 동작만으로 누가 더 오래 버티나 줄 타기에 운명을 건 게임으로 바나나를 먹으면 괴상한 함성을 지르는 게임으로 아슬아슬한 줄타기의 묘미를 느껴볼 수 있다.

글쓴이=김대홍 schnauf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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