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구 혜화동, 당신이 아는 건 극히 일부입니다

이영미 2018. 4. 23.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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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밤산책②] 느릿느릿 혜화동 골목 걷기

[오마이뉴스 이영미 기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흔히 혜화동로터리 주변이라고 하면 대학로의 복잡한 거리와 성균관대학교 앞의 번화한 거리를 떠올릴 겁니다. 하지만 혜화동로터리를 중심으로 북쪽 방향으로는 조용한 동네, 오래된 골목이 있습니다.

갑자기 소음은 '뚝' 하고 끊어지고 서울의 중심지인데도 느릿느릿 시간이 흐르는 동네를 만납니다. 오래된 간판에서 세월을 느끼고, 낡으면 낡은 대로 흘러가는 시간들 속에서 숨통이 트입니다. 깔끔. 반듯, 언제나 새로 닦여 있는 대도시의 풍경은 골목 하나를 들어서면 지극히 인간적이고 느슨한 풍경으로 변합니다.

오래된 가게들이 있는 혜화동 ⓒ이영미
오랫동안 마을 사람들의 크고 작은 일들을 함께 한 떡집 ⓒ이영미
"오늘은 잊고 지내던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네
내일이면 멀리 떠나간다고
어릴 적 함께 뛰놀던 골목길에서 만나자 하네
내일이면 아주 멀리 간다고

덜컹거리는 전철을 타고 찾아가는 그 길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을 잊고 살아가는지
어릴 적 넓게만 보이던 좁은 골목길에
다정한 옛 친구 나를 반겨 달려오는데
어릴 적 함께 꿈꾸던 부푼 세상을 만나자 하네" 

동물원의 노래 <혜화동>이 왜 만들어졌을까. 혜화초등학교 뒷골목을 걸으면 금방 그 노래의 느낌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어린 시절의 친구가 슬리퍼를 신고 웃으며 나타날 것 같은 그런 느낌. 의외로 오래된 한옥들이 드문 드문 보입니다. 아파트 대단지에 살아갈 수밖에 없지만, 우리의 어린 시절은 이랬습니다. 지붕과 지붕이 맞닿고, 골목마다 추억이 있는 우리 모두의 어린 시절이 여기에 있습니다.

어린 시절 친구가 저기서 걸어올 것 같은 혜화동 골목 ⓒ이영미
우리 모두의 추억 속에 있는 그 골목길 ⓒ이영미
오후 8시 무렵에도 동네는 조용합니다. 조용한 불빛 아래 걷기에 적당합니다. 발길 가는대로, 마음이 가는대로 걸어봅니다. 골목의 느낌은 제 각각 다릅니다. 도시탐험. 오래된 도시의 골목 걷기는 그래서 즐겁습니다.

혜화초등학교 뒷골목을 지나 올림픽생활관 앞 로터리에서 샛길로 빠져봅니다. 마을 버스만 지나는 동네길을 걷다보니 발레교습소가 보입니다. 창밖에서 잠깐 기웃, 발레교습소가 있는 동네라니! 혜화동은 이런 멋진 곳입니다.

발레교습소가 있는 동네, 혜화동 ⓒ이영미
다양한 이야기가 있는 동네 혜화동 ⓒ이영미
기와지붕에 자리한 미장원 ⓒ이영미
반듯반듯 잘라진 도로, 시시 때때로 이뤄지는 도시정비, 잊을 만하면 어디선가 부서지는 소리 재개발, 어느 하루도 쉴틈 없는 공사 소리. 이 모든 도시의 생리가 여기 혜화동에선 잠시 멈추어선 기분입니다. 오랜시간 변한 게 있다면 계단의 자리가 담이 되었다는 정도. 반듯 반듯한 재정비와 다른, '집주인 마음대로' 수선한 담벼락 앞에서, 아 저렇게 고칠 수도 있는 거지. 여유로운 마음이 됩니다. 창의적인 담벼락 아닌가요?
한때 계단이었던 곳이 담벼락이 되었네요 ⓒ이영미
골목을 헤매다 보니 어느새 오후 9시가 되었습니다. 혜화동로터리에서 산책을 마무리 합니다. 동양서림의 낡은 간판이 눈에 들어옵니다. Since 1953. 세월은 자랑스럽습니다. 이곳은 장욱진 화백의 부인이 생계를 위해 오랫동안 운영하기도 했습니다.

동양서림을 지날 때면 늘 장욱진 화백의 그림이 떠오릅니다. 현실과는 거리가 있었던 화가와, 그 화가를 위해 묵묵히 뒷바라지를 했던 화가의 아내, 그래서 장화백은 부인 이순경 여사의 생일에 맞춰 늘 전시를 열었습니다. 동양서림,언제나 저렇게 낡은 간판으로 저 자리에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since1953. 화가 장욱진의 생계가 되기도 했던 동양서림. 오래 오래 자리를 지키면 좋겠습니다 ⓒ이영미
우리는 혜화동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자동차를 타고 지나는 혜화동로터리는 차와 소음 많은 사람들로 붐빕니다. 그러나 차에서 내려 한걸음만 골목 안쪽으로 들어가 보면, 전혀 다른 풍경이 나타납니다. 종로구 혜화동. 그 이름만으로도 전해지는 세월의 포스. 오래된 한옥과 낡은 골목과 예술가들이 작업하는 연극공연장들이 어깨를 서로 맞대고 있습니다.

삭막한 서울. 우리는 흔히 이렇게 말합니다만 반은 맞고 반은 틀렸습니다. 서울의 중심 광화문에서10분 안에 닿을 수 있는 조용한 동네골목들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골목 하나를 들어오면 새로운 서울이 있죠.

인적은 드물고 불빛은 환해서 걷기 좋습니다. 맛집은 곳곳에 숨어있죠. 한 시간 정도 천천히 걸으면 어쩐지 낯선 도시방랑자가 되는 듯한 들뜬 기분이 되기도 합니다. 서울의 겨울은 춥고, 여름은 뜨겁습니다. 해질 무렵 걸을 수 있는 시간은 며칠 남은 4월, 그리고 5월과 6월 뿐입니다. 밤은 짧아요, 그러니 걸어요.

혜화동 골목걷기 ⓒ이영미
오늘의 걷기
거리 : 큰길우선 기준 42분 2.6키로. (다음지도)
주요코스 : 혜화역- 혜화우체국- 혜화초등학교 뒷골목- 올림픽국민생활관- 한무숙문학관- 짚풀사박물관- 동양서림
골목 마다 이리 기웃 저리 기웃 하다 보니 1시간 정도 소요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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