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변, 잃어버린 숨 쉴 권리] 미세먼지 농도 12㎍/㎥.. 한국은 '좋음' 단계, 영국선 '벌벌'

윤지로 입력 2018. 4. 23. 07:00 수정 2018. 4. 23.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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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국 사례 보니..

지난 2월 영국 고등법원은 대기질 개선을 위한 영국 정부의 대책이 ‘미흡하다’고 판결했다. ‘클라이언트어스(ClientEarth)’라고 하는 영국 환경단체가 정부의 대기질 개선 노력이 미흡하다며 정부를 상대로 제소했는데, 법원이 환경단체 손을 들어준 것이다. 재판부는 “영국 내 45개 지역의 대기질을 개선하기에 정부 대책은 심각한 결함이 있다(seriously flawed)”며 “이런 계획으로는 2021년까지 법적 환경기준을 충족할 수 없을 것”이라고 판시했다.

클라이언트어스와 정부 간 소송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5년과 2016년 이미 두 차례 비슷한 이유로 소송이 제기됐고, 모두 환경단체가 이겼다. 법원 판결에 따라 지난해 영국 정부가 내놓은 새 대책에는 고농도 오염지역을 대상으로 한 맞춤형 처방이 담겼다.

대기질 모델링을 통해 취약 지구를 선정, 지역 상황에 따라 통행제한과 도로설계 변경, 유료 통행구간 설정 등을 할 수 있도록 했다. 2억5500만 파운드(약 3380억원) 규모의 지자체 지원금을 조성하는 한편 노후 버스 교체비로 1억 파운드를 투입하기로 했다. 

그런데도 법원은 여전히 불충분한 대책이라며 정부에 세 번째 패소 판결을 내렸다. 영국 정부는 이달 말까지 새로운 대기질 개선대책 초안을, 7월까지는 최종안을 제출해야 한다.

환경단체와 법원까지 나서 형편없다고 질타한 영국의 미세먼지 연평균 농도는 12㎍/㎥이고, 대도시인 런던도 평균 15㎍/㎥다. 우리나라 기준으로는 ‘좋음’ 단계다. 지난해 우리 정부가 발표한 2022년 달성 목표치(18㎍/㎥)보다 낮다.
질소산화물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영국 일간 가디언은 환경단체 그린피스와 공동으로 영국 대기질 모델 결과를 활용해 “영국 전역에서 오염도로 150m 이내 보육·교육시설이 2091개소에 달하고, 이 중 어린이집이 절반(1013개소)에 육박한다”고 발표했다. 당시 조사에서 런던 동부 타워햄리츠의 한 지점은 이산화질소 농도 118.19㎍/㎥로 전국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는 우리나라에서 사용하는 ppm 단위로 환산하면 0.058∼0.063ppm(섭씨 0∼25도 기준) 수준이다. 서울에서 이 정도 수치를 보이는 곳은 14개 도로변 대기측정소에서만 세 군데다. 

영국을 포함해 유럽연합(EU)의 이산화질소 연평균 기준 40㎍/㎥(0.019∼0.021ppm)도 우리나라 기준치(0.03ppm)보다 엄격하다.

우리나라에 비해 대기 사정이 훨씬 좋은데도 영국 정부가 받는 사회적 압박은 세다. 이는 ‘대기환경 기준은 공기질 관리에 필요한 수치일 뿐, 기준치 이내의 오염물질도 건강에는 악영향을 준다’는 인식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미세먼지에 따른 전 세계 조기사망자가 700만명이나 될 것으로 추산한다. 대사위험, 식이위험, 흡연에 이어 네 번째 사망 위험요인이다. 이산화질소 역시 만성 기관지염과 폐렴, 폐출혈, 폐수종 등의 원인이 된다.

2015년 여명석 서울대 교수(건축학)팀이 서울 관악구의 한 어린이집에서 수행한 연구에 따르면 지름 1㎛(PM1) 이하의 작은 입자는 실내 미세먼지 농도가 실외 농도와 높은 상관관계를 보였다. 아이들의 재실 여부와 상관없이 실외가 고농도면 실내도 고농도를 보였다. 입자가 3㎛를 넘어가면 이런 상관관계는 약해졌다. 입자 크기가 작을수록 건강에 더 해롭다. 도로변 보육·교육시설은 실내에서도 각별한 관리가 필요하다는 의미다.

유럽과 미국은 도로로부터 어떻게 아이들 건강을 지킬 것인가에 상당한 관심을 기울인다. 자동차 배출량 감축도 중요하게 여기지만 효과를 볼 때까지 많은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취약지구 거주자들을 보호하는 정책을 동시에 펴는 것이다. 

미국 환경보호청(EPA)은 도로오염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학교 입지 가이드라인’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학교를 새로 지을 때 인근 교통량과 통행속도, 오염물질 배출량이 얼마나 되고 바람은 주로 어느 방향에서 불어오는지, 대기 확산이 잘 되는 곳인지 등을 미리 확인하도록 했다. 

캘리포니아주는 하루 통행량이 5만대를 넘는 도로 500피트(약 152m) 이내에는 학교 등을 신축하지 못하게 한다. 이미 도로 오염에 노출된 경우에는 나무를 심거나 보호벽을 세워 오염물질 유입을 최소화하도록 하고 있다.

즉흥적인 정책을 펼치는 우리나라와 대조적이다. 최근 교육부가 2020년까지 2200억원을 들여 학교에 공기청정기 등 공기정화장치를 설치하겠다고 밝힌 데 대해 환경단체와 전문가들은 부정적인 기류다. 공기정화장치의 효과가 불확실한 데다 관리 매뉴얼도 없어 세금만 낭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미세먼지 관련 시민사회 연대기구인 ‘미세먼지 줄이기 나부터 서울시민 공동행동’은 최근 성명에서 “학교 부지부터 대로변, 고속도로 옆 등에 설립되지 않도록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왕복 10차로 도로변에도 아무렇지 않게 학교를 지을 수 있다. 미세먼지가 국민적 관심사가 된 지난 5년 동안 서울 왕십리 뉴타운이나 위례신도시 등에 개교한 학교들도 150m 이내 거리에 6차로 이상 대로가 있거나 교차로에 접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에 서울 강동구는 도시계획위원회 심의과정에서 대로변 150m 안쪽 3층 이하 건물에는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등의 신축을 제한할 수 있도록 하는 조례를 제정키로 했다. 조례가 만들어지면 전국 첫 사례다.

윤지로 기자 kornya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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