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품 필요 없는 종이접기..로봇공학을 바꾼다

2018. 4. 23. 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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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과학]
접었다 펼치는 구조로 기계 대체
작고 가볍고 단순한 로봇 구현

상황 따라 크기 변하는 바퀴로봇
접히면서 튀어오르는 벼룩로봇
늘어났다 줄었다 하는 팔로봇
우산처럼 펼쳐지는 태양전지판
의료·우주 등에 다양한 활용

기존과 다른 로봇 상상 가능해져
국내 연구진 성과 발표 잇따라

[한겨레]

종이접기 구조를 이용해 소금쟁이의 뛰어오르는 동작을 모방한 소금쟁이 로봇. 열이 가해질 때 몸체 아래의 형상기억합금 부품이 수축하면 버티던 몸체가 갑자기 안쪽으로 접히면서 물을 차고 뛰어오르는 동작이 구현된다. 서울대-하버드대 공동연구진 제공

지난 18일 찾아간 서울대 공대 301동의 ‘인간중심 소프트로봇 기술연구센터’에선 연구원 책상 위에 굴러다니는 이리저리 접힌 종이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대부분 대학원생인 연구원들 중 일부는 종이접기 원리를 이용한 새로운 개념의 로봇을 설계하고 만들고 있다. 그중 한 명인 이대영 박사후연구원은 자신을 ‘종이접기에서 영감을 얻으려는 로봇공학자’라고 소개했다. “맞아요. 장난감 개발하는 곳 같다고 말하는 사람도 더러 있어요. 하지만 볼트, 너트 없이 평면 한 장에 설계해 만드는, 전에 없던 새로운 개념의 장난감인 셈이죠.”

연구센터 입구의 한구석에선 손가락보다 작은 자벌레, 벼룩, 소금쟁이 모양의 로봇 모형들이 방문객을 맞는다. 몸은 작아도 국제 학술지에 발표돼 주목받은 어엿한 작품들이다. 소금쟁이 로봇은 2015년 과학저널 <사이언스>에 발표됐다.

바퀴가 변하는 변형바퀴 로봇. 종이접기의 접힘 패턴을 활용했다. 서울대 인간중심 소프트로봇 기술연구센터 제공

“접힘 구조가 로봇 부품 대체해 단순화”

변형 바퀴 로봇을 개발하는 과정에 만들어진 종이접기 습작들. 오철우 기자

종잇조각처럼 작고 허약해 보이는데다 동작도 다양하지 못한 종이접기 로봇이 공학 연구자들의 관심을 사로잡는 이유는 뭘까? 연구센터를 이끄는 조규진 교수(기계공학)는 종이접기 로봇 연구가 “로봇의 ‘개념’을 바꿀 수 있는 연구”라고 강조했다.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로봇은 수많은 부품으로 조립된 복잡한 기계장치의 모습이다. “그런 로봇을 작게, 더 작게 만드는 데엔 한계가 있어요. 볼트, 너트, 이음매 같은 기계부품이 작아지면 마찰 문제는 커지죠. 그런데 종이접기 원리를 빌리면 한 장의 평면에서 접힘 구조를 이용하면 이런 기계장치 기능을 대체할 수도 있습니다.” 어찌 보면 종이접기 로봇공학은 복잡한 기계장치를 어디까지 얼마나 단순화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개념’ 연구인 셈이다.

크기가 변하는 바퀴는 그런 사례다. 턱을 만나면 바퀴가 커져 넘어가고 낮은 틈을 만나면 바퀴가 작아져 그 밑으로 들어간다. 애초엔 여러 구동기로 제어하는 방식으로 개발하고자 했다. 그런데 장치는 점점 복잡해졌다. 조 교수는 “처음엔 바퀴를 늘렸다 줄이는 데에 구동기 16개를 썼는데도 쉽지 않았는데 종이접기가 문제를 해결해주었다”고 말했다. 종이접기 원리로 접혔다 펴지는 바퀴는 구동기 1개만으로 그 기능을 충분히 구현했다.

‘뛰어오르기’ 동작도 종이접기 로봇공학의 도전 과제가 됐다.

소금쟁이 로봇의 구조를 구상하는 연구 단계에서 고제성 당시 박사후연구원(현 아주대 교수)이 연구노트에 그린 도안들. 오철우 기자

2015년 서울대와 하버드대학(비스 생체모방공학연구소) 연구진의 공동연구로 만들어진 소금쟁이 로봇은 접히지 않으려고 버티다 어느 순간에 접히면서 튀어오르는 힘을 만들어내는 접힘 구조를 이용했다. 당시 제1저자로 연구에 참여한 고제성 아주대 교수(기계공학)는 “소금쟁이가 물의 표면장력이 깨지기 직전까지 최대한 발로 물을 누르다가 그 힘으로 뛰어오른다는 기존 학설을 공학적으로 확인해준 연구”라며 “물 위의 도약 동작을 구현하는 데 별다른 장치 없이 접힘 구조로 충분했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2013년에 개발돼 소금쟁이의 모델이 된 종이접기 벼룩 로봇은 1.1g 무게로 64㎝ 높이로 뛰어올랐다.

지난달에는 ‘가제트 팔’처럼 늘었다 줄었다 하는 팔을 비행체 드론에 매달아 물속이나 구덩이에 빠진 물건을 집어 올릴 수 있는 ‘드론 로봇 팔’을 개발해 <사이언스 로보틱스>에 발표한 바 있다. 이대영 박사후연구원은 “뛰어오른 뒤에 접힌 날개를 펼치는 행글라이더 로봇이나 각자가 접혔다 펼쳐지는 블록들이 모이고 흩어지는 새로운 개념의 로봇 등을 연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양한 분야에서 관심 받는 종이접기

접혀 있다가 늘어날 수 있도록 만든 로봇 팔(검은색 부분). 드론에 달아 구덩이 속이나 높은 곳의 물건을 집을 수 있다. 서울대 인간중심 소프트로봇 기술연구센터 제공

일본말 ‘오리가미’로 널리 알려진 종이접기의 원리를 응용한 로봇공학은 2000년대 중반 이후 미국을 중심으로 활발해졌다. 이후 10여년 만에 다양한 동작과 쓰임새에서 종이접기 로봇을 구현하는 연구결과들이 이어지고 있다.

물건을 집고 옮기고 놓는 반복 작업을 수행하는 산업체의 ‘델타 로봇’을 단순한 종이접기 방식으로 만들어 동전 크기로 축소한 ‘밀리델타 로봇’도 만들어졌다. 하버드대학 중심의 공동 연구진에 참여한 고제성 아주대 교수(기계공학)는 “기계장치가 따로 필요 없이 접힘 구조를 이용해 전후, 좌우, 상하로 1초에 77회의 반복 동작을 하는 밀리델타 로봇의 기본 개념도 종이접기 원리에서 출발한 것”이라며 “미래의 초소형 카메라, 수술용 손떨림 방지장치 같은 분야에 응용될 수 있다고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 연구는 지난 1월 <사이언스 로보틱스>에 실렸다.

최근엔 집게벌레의 색다른 날개 접기 방식에 관한 연구가 눈길을 끌었다. 스위스 취리히 연방공과대학 연구진은 근육의 작용 없이 고탄성 단백질을 이용해 날개를 펴고 접는 집게벌레의 독특한 접기 패턴이 기존 종이접기와 다른 새로운 접기 패턴임을 밝혀냈으며, ‘탄성 종이접기’라는 원리로 작동하는 집게 팔을 만들어 과학저널 <사이언스>에 발표했다.

팔랑이며 유연한 2차원 평면이 특정 패턴으로 접히면 뻣뻣하고 강직한 3차원 형상으로 다시 태어난다. 특정 패턴으로 차곡차곡 접힌 꾸러미는 엉킴 없이 한번에 활짝 펼쳐져 날개가 되고 또한 태양전지판이 된다.

종이접기 예술인이자 이론가로 통하는 미국 물리학자 로버트 랭(57)은 ‘테드(TED) 강연’ 동영상에서 “놀랍게도 종이접기 구조는 의학과 과학, 우주에서, 인체에서, 그리고 가전제품 등에 응용된다”고 말한다. 실제로 쉽게 펼쳐지는 ‘미우라 접기 패턴’을 비롯해 종이접기 방식은 인공위성의 태양전지판에 응용된다. 혈관 확장 기구 스텐트는 접힘 구조로 좁은 혈관에 들어가서 펼쳐져 혈관을 확장해줄 수 있다.

접혀 있다가 엉킴 없이 한번에 펼쳐져야 하는 인공위성의 태양전지판은 종이접기 원리를 이용한다. 미항공우주국(NASA) 제공

조규진 교수는 “종이 재료를 쓰는 것도 아니고 전통적인 종이접기를 그대로 따라 하는 것도 아니라는 점에서 로봇공학이 종이접기를 직접 응용하는 것은 아니지만, 한 장 평면이 유연하다 강직해지고, 평면이다 입체가 되고, 줄어들고 펼쳐진다는 점은 작고 가볍고 간단한 기계장치를 만들려는 공학자에겐 좋은 영감을 준다”며 “평면에 인쇄하는 로봇(프린터블 로봇), 접어두다가 펼쳐서 쓰는 로봇처럼 기존 개념과 다르게 로봇을 상상하게 하는 새로운 ‘개념’을 찾는 것이 종이접기 로봇공학”이라고 말했다. 한편, 종이접기 문화유산의 발굴과 보급 활동을 펴는 종이문화재단의 이준서 사무처장은 “종이접기는 우리한테도 오랜 전통문화 유산”이라며 “고려말 조선초에 만들어진 일종의 보드게임 ‘승경도 놀이’의 널찍한 전개도가 양끝을 한번 잡아당기면 바로 활짝 펼쳐지도록 접혀 있었다는 점도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고 말했다.

오철우 선임기자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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