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이 된 '똥'..한국인 표준 장내미생물을 찾아라

2018. 4. 23. 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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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과학]
세포수의 10배..건강 관련 깊어
2023년까지 은행DB 구축 목표
생명연·서울대병원·천랩 협력
200여명 분변 기증받아 분석중
318종 분리 성공..신종 8종 확인

식습관·문화와도 밀접한 관계
한국인, 일본인보다 유익균 많아
서식환경 따라 유해균 돌변할 수도

[한겨레]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생물자원센터 연구실에서 한 연구원이 무균 진공체임버에서 대변 속 장내 미생물을 분리 배양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제공

우리 장에는 최소 1000종 이상의 미생물이 사는 것으로 추론된다. 대변에는 대장에 살고 있는 미생물들이 포함돼 있다. 대변에서 수분을 뺀 나머지의 40% 정도가 미생물이다. 대장 미생물들은 질병·건강과 직결돼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연구자들이 대변 속 미생물들을 찾아나서는 이유다.

<동의보감>에는 사람의 말린 변을 끓인 물에 타 먹여 열병을 치료하는 처방이 실려 있다. 또 ‘장청뇌청’이라 하여 장을 깨끗이 하면 머리도 맑아진다는 말도 수록돼 있다. 실제 변이 약이 되는 세상이다. 항생제 내성균인 클로스트리듐 디피실 감염 환자는 만성 설사에 시달리는데 건강인의 대변을 이식해주면 대부분 며칠 만에 낫는다. 환자가 설사를 하는 것은 항생제 과다 투여로 병원균뿐만 아니라 유익한 균들도 모두 죽어버렸기 때문이다. 건강인의 대변은 장내 환경을 정상 상태로 돌려놓는 것이다.

우리 몸에는 사람 세포보다 10배 많은 미생물들이 살고 있다. 유전자로 따지면 인간 유전자보다 미생물들의 유전자 총합(마이크로바이옴)이 100배 많다. 특히 장에는 가장 많은 다양한 미생물들이 살고 있어 인간의 ‘제2의 게놈(유전체)’이라고 불린다. 장내 마이크로바이옴은 장뿐만 아니라 피부·대사·정신질환과 노화 등 질병이나 건강과 밀접한 관련성이 있다는 연구가 최근 잇따르고 있다. 20세기 말 인간게놈프로젝트(HGP)처럼 2008년 미국 국립보건원(NIH)이 주관하는 ‘인체 마이크로바이옴 프로젝트’(HMP), 유럽 국가 중심의 ‘인간 장내 메타게놈 프로젝트’(MetaHIT) 등이 잇따라 출범한 배경이다. 국제 규모 사업 외에도 국가별 마이크로바이옴 연구사업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미국과 캐나다는 각각 ‘국가 마이크로바이옴 이니셔티브’(NMI)와 ‘캐나다인 인체 마이크로바이옴 이니셔티브’(CMI)에 막대한 연구비를 투여하고 있고, 중국도 ‘중국인의 인체 마이크로바이옴 프로젝트’(C-HMP)를 추진하고 있다. 한국은 2016년 12월 ‘한국인 장내 표준 마이크로바이옴 뱅크’(KGMB) 사업을 시작했다. 2023년까지 80억원을 들여 건강한 한국인의 장내 마이크로바이옴에 대한 메타게놈(장에 존재하는 미생물들의 총체적인 유전체)을 분석하고 장내 미생물을 분리 배양한 뒤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 국내 연구를 지원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는 것이 목표다. 사업을 주관하고 있는 한국생명공학연구원(생명연)의 이정숙 책임연구원은 “마이크로바이옴은 식습관이나 문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국가적 다양성을 고려했을 때 한국 마이크로바이옴은 어떤 구성을 하고 있는지 연구할 필요가 있다. 메타게놈 기반은 잘 돼 있는 데 비해 유용한 미생물 실물 자원이 없어 어려움을 겪는 연구 현장을 지원하기 위해 한국인 장내 표준 마이크로바이옴 은행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연구팀 분석 결과 한국인은 일본인에 비해 피르미쿠테스(후벽균)문에 해당하는 미생물 종을 많이 보유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락토바실러스, 비피도박테리움 속 등 유익균들이 한국인에게 더 많은 것으로 확인돼 연구팀은 논문을 준비 중이다.

대장 안에 서식하는 장내 미생물(마이크로바이옴)을 표현한 그림. 게티이미지뱅크

사업은 생명연과 분당서울대병원, 천랩 등 세 기관이 진행하고 있다. 병원에서 건강검진 대상자나 기관생명연구윤리위원회(IRB) 승인을 받아 기증받은 건강인의 분변을 수집해 전달하면 생명연은 미생물을 분리 배양해 동정(생물의 분류학상의 소속이나 명칭을 바르게 정하는 일)하고, 유전체분석 전문 바이오벤처인 천랩은 메타게놈 염기서열 분석 작업을 한다. 건강인은 50~60개 항목의 설문 조사를 거쳐 선정한다. 가장 중요한 건 변의 상태이다. 2016년 <사이언스>에 마이크로바이옴 구성과 가장 상관관계가 높은 항목이 변의 상태라는 것이 보고된 바 있다. 설사형에서부터 변비형까지 변의 상태에 따라 장내 체류 시간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장에는 유산균처럼 공기 중에서도 잘 사는 미생물이 있지만 산소와 닿으면 바로 죽는 절대혐기성 미생물들도 많다. 염증과 관련된 미생물 중에 절대혐기성들이 많다. 연구팀이 주목하는 건 이들 미생물이다. 대변 채취에서부터 실험까지 모두 공기가 없는 밀폐된 진공 속에서 이뤄져야 해 까다롭다. 김병용 천랩 연구소장은 “변 시료가 모아지면 실온에서는 4시간 안에, 냉장 상태에서도 하루이틀 안에 실험실에 도착해야 하고 처리 작업 뒤엔 영하 80도에 보관한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이달 12일 현재까지 건강한 한국인 200여명의 변을 확보해 318종 4819균주의 미생물을 분리했다. 이 가운데 58종은 새로운 종일 가능성이 있는 후보로 분류돼 있으며, 8종은 세계 어디에서도 보고된 바 없는 신종임이 확인돼 연구팀이 관련 저널에 논문을 조만간 제출할 예정이다.

한국인 장내 미생물 분포.(문 단위 분류). *이미지를 누르면 확대됩니다.

또 예상한 대로 연령이나 생활습관 등에 따라 미생물의 분포에 차이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남성들 변에서는 콜린셀라 에어로파시엔스(8.56%)가 가장 많은 반면 여성에서는 비피도박테리움 롱검 아종(7.10%)이 가장 많았다. 또 흡연 습관이 있는 사람들한테 가장 많은 미생물은 콜린셀라 에어로파시엔스인 데 비해 과거 흡연 습관이 있던 사람은 비피도박테리움 슈도카테눌라툼, 비흡연자는 비피도박테리움 롱검 아종이었다. 특히 과거 흡연을 한 사람한테서는 일반적인 경우에 우점종이 아닌 엔테로코쿠스 패시움 등이 많이 검출돼 눈길을 끌었다. 이들 미생물은 일주일에 2~3회 정도의 음주 습관이 있는 사람들한테서도 많이 검출됐다. 이정숙 연구원은 “성인 200여명이 한국인을 대표한다고 할 수는 없다. 또 현재까지 분리한 미생물의 구성은 메타게놈 분석 결과와 일치하지 않는다. 분리하는 조건에 따라 잘 분리되는 종이 있고 그렇지 않은 종이 있기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앞으로 600여명한테서 대변을 추가로 채집할 예정이다. 특히 어린이부터 노인까지 생애주기별 분석이 필요하다. 최근에는 인체의 정액과 자궁에도 미생물이 존재할 수 있고 모계 미생물이 배아 발생 과정 중 태반, 양수, 제대혈에서도 서식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들이 나오고 있다. 일반적으로 어린이는 박테로이데테스(의간균)문이 피르미쿠테스문보다 많은데 어른이 되면서 역전된다.

한국인 장내 미생물 분포.(속-종 단위 분류). *이미지를 누르면 확대됩니다.

이정숙 연구원은 “미생물은 양면을 가지고 있다. (유익한 것으로 알려진) 많은 유산균 중에도 저장식품에서 유해균이 될 수 있는 게 있다. 미생물과 사람의 건강과의 관계에 대한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유지환 연세대 의대 교수는 “장내 환경에 유익한 작용을 함으로써 인체에 이로움을 주는 살아 있는 균주를 프로바이오틱스라고 일컫지만, 현재까지 특정 균주의 특정 유효성분이 특정 질환에서 특정 작용에 의해 효과가 있다는 객관적 연구 결과가 없다. 유럽에서는 효능과 메커니즘을 밝히지 않으면 프로바이오틱스라는 말을 쓰지 말라는 권고까지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이근영 선임기자 ky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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