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10년 전 약속' 공염불.."지켰다면 이재용 구속 없었을것"

2018. 4. 23.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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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조5천억 차명재산 사회환원 안해
전략기획실도 되살려 구체제 유지
순환출자 해소커녕 3년전 로비도
"이재용 구속 등 신뢰의 붕괴 불러"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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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회장은 퇴진한다. 전략기획실은 해체한다. 차명계좌는 세금 납부 뒤 유익한 일에 쓴다.”

2008년 4월22일 삼성이 내놓은 ‘삼성그룹 경영쇄신안’의 일부다. 삼성 구조조정본부 법무팀장이었던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로 총수 일가의 수조원대 비자금 조성 사실이 드러나고 이건희 회장이 재판에 넘겨지는 등 급박한 위기 상황에서, 삼성은 총수와 그를 보좌한 조직, 그들이 지키려 한 돈 등을 포기하겠다고 선언했다.

꼭 10년이 흐른 22일, 당시 삼성이 내놓은 경영쇄신안 10가지 중 절반 가까이가 지켜지지 않았다. 특히 차명계좌의 사회 환원 약속과 전략기획실 해체 약속을 어긴 것을 놓고는, 삼성의 신뢰를 크게 훼손하고 위기를 거듭 불러왔다는 지적이 나온다.

■ 차명계좌 사회환원, 지켜지지 않은 10년 전 약속 이건희 회장 차명계좌의 사회환원 약속은 10년째 이뤄지지 않고 있다. 지난해 경찰 수사와 국정감사 등을 통해 이건희 회장의 4천억원대 새 차명계좌와 세금 탈루 사실 등이 드러나는 등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2008년 삼성은 “세금 납부 뒤 남는 돈을 회장이나 가족을 위해 쓰지 않고 유익한 일에 쓸 수 있는 방도를 찾겠다”고 발표했다. 이재용 부회장도 2016년 12월 최순실 국정농단 청문회에서 “어머님, 형제들과 상의해봐야겠지만 저희가 결정해야 할 시기가 오면 정말 좋은 일에 쓰겠다”고 말했다.

특검 수사로 드러난 이 회장의 차명계좌는 당시 가치로 4조5천억원에 달한다. 삼성 쪽은 삼성생명 주식 2조4천억원은 조세포탈 계좌가 아니어서 사회환원 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이를 받아들이더라도 삼성은 최소 2조1천억원의 사회환원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다. 이 돈 가운데 상당 부분은 삼성전자 주식이어서,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6조원이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삼성 내부에서도 차명계좌의 사회환원이 이재용 부회장이 가장 먼저 풀어야 할 과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한 삼성 계열사 직원은 “지난해 다시 논란이 되기도 해서, 이재용 부회장이 출소 뒤 가장 먼저 차명계좌 문제를 풀 것으로 예상했었다”며 “어차피 늦어진 만큼 가장 효과가 좋은 시기를 찾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부활한 전략기획실, 위기의 단초 전략기획실의 부활은 삼성의 위기를 반복해 불러오는 실마리가 됐다. 총수를 보좌하고 그룹을 총괄하는 역할을 하는 전략기획실은 2008년 총수 일가의 비자금 조성에 깊이 관여한 사실이 드러나 해체됐다. 당시 삼성은 “각사의 독자적 경영 역량이 확보됐고, 사회적으로도 그룹 경영체제에 대해 일부 이견이 있는 점을 감안해 해체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삼성은 불과 2년 만인 2010년 10월 전략기획실을 미래전략실(미전실)로 이름을 바꿔 부활시켰다. 미전실 부활 7개월 전인 2010년 3월 퇴진했던 이건희 회장도 복귀한 참이었다. ‘책임 없이 권한만 있는’ 구체제로의 복귀라는 비판이 나왔지만 개의치 않았다. 미전실은 과거 전략기획실과 마찬가지로 총수 일가의 불법·편법적인 사익 추구와 경영권 승계 등을 기획하고 추진하는 구실을 했다. 결국 미전실은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위해 박근혜-최순실 등 국정농단 세력과 손잡고 움직였다가, 삼성그룹 전체를 위기로 몰아넣었다.

삼성은 지난해 초 미전실을 해체했지만, 1년도 되지 않아 삼성전자·삼성물산·삼성생명 등 3개사에 각 분야를 조율하는 태스크포스(TF) 조직을 새로 만들었다. 이 티에프 조직들은 과거 미전실 핵심 멤버들이 대거 포진해 있어 ‘미니 미전실’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삼성전자 ‘사업지원티에프’는 정현호 전 미전실 인사지원팀장(사장)이 이끌고 있고, 금융계열사를 총괄하는 삼성생명 ‘금융경쟁력제고티에프’는 미전실 출신 유호석 삼성생명 전무가 팀장을 맡았다. 비전자 계열사를 총괄하는 삼성물산 ‘이피시(EPC) 경쟁력강화티에프’도 미전실 출신 김명수 삼성엔지니어링 경영지원총괄 부사장이 주관하고 있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학과 교수는 “미전실은 재벌 총수 경영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만들어진 조직이다. 총수 체제를 유지하는 한 2008년 비자금 사건과 2016~2017년 국정농단 사태 등은 반복돼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 다른 약속들도 안 지켜져 삼성은 2008년 약속한 경영쇄신안 중 나머지 것들도 지키지 않거나 금세 과거로 되돌렸다. 이건희 회장은 퇴진한 지 채 2년이 지나지 않은 2010년 3월 회장직에 복귀했다. 2009년 말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 이명박 전 대통령으로부터 특별 단독사면을 받은 지 석달 만이었다. 현재 검찰은 이 단독 사면의 대가로 삼성과 이 전 대통령이 뇌물을 주고받은 것으로 보고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 회장의 부인 홍라희씨도 퇴진 3년 만인 2011년 리움미술관장에 복귀했다. 전략기획실의 ‘쌍두마차’였던 이학수 부회장과 김인주 사장은 약속대로 그만뒀지만, 미전실의 최지성 부회장과 장충기 사장이 이들의 역할을 대체했다. 사람만 바뀌었을 뿐 제도는 그대로 유지된 셈이다.

순환출자 문제의 해결을 검토하겠다는 약속은 아직 지켜지지 않고 있다. 삼성은 삼성카드가 보유한 에버랜드 주식 매각, 삼성에스디아이(SDI)의 삼성물산 주식 매각 등 법·제도적 이유로 불가피하게 처분해야 할 때만 순환출자 고리 해소에 나섰다.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순환출자고리 해소 부담을 줄이기 위해 공정거래위원회 등에 로비를 한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삼성생명·삼성증권·삼성화재 등 금융사의 윤리경영을 강화한다는 약속도 최근 삼성증권 직원들의 부도덕한 주식 매각에서 나타난 것처럼 공염불에 그쳤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는 “결국 돈에 대한 집착, 그것이 위기를 반복해 불러왔다. 10년 전 약속만 제대로 지켰다면, 이재용 부회장이 구속되거나 삼성이 지금처럼 심각한 사회적 신뢰 붕괴 상태에 빠지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현준 기자 hao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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