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윤 "계속 조그맣게 공연도 하고 앨범 내며 살고파요"

2018. 4. 23.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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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데뷔 20돌 기념 음반 낸 가수 박지윤

16살 '하늘색 꿈'으로 가요계 첫발
라이브 앨범·화보집으로 복귀
윤종신의 미스틱서 나와 홀로 서기
"이젠 내 삶을 선택할 수 있는 나이"

[한겨레]

가수 박지윤이 지난 20년 동안 부른 노래를 최근 시디 2장에 묶어 냈다. 사진 박지윤 크리에이티브 제공

“연예인이라는 게 정의에 따라 다르긴 한데,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연예인의 이미지가 있잖아요. 티브이에 많이 나오고 예능 프로그램에도 나오는 유명인을 연예인이라고 부르는데 저는 한번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던 적이 없고 스스로도 연예인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어요.”

‘연예인 박지윤’은 아직 유효한 거냐는 물음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 노래하는 것과 가수 하기 전부터 해온 모델로서 가끔 카메라 앞에 서는 것을 제외하면 그는 점점 연예인이 아니라 평범한 일반인의 삶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는 자신을 “누군가에게 드러내는 것을 불편해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했고, 지금껏 박지윤을 봐온 사람이라면 이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사진 박지윤 크리에이티브 제공

1997년 12월. 로커스트의 ‘하늘색 꿈’을 다시 부르며 등장한 소녀가 있었다. 열다섯살, 워낙 어렸기 때문에 무얼 하고 싶다기보다는 그저 들어오는 일을 시키는 대로 할 뿐이었다. ‘하늘색 꿈’에선 늘 쑥스러운 웃음을 보이며 춤을 췄고, 예능 프로그램에 나가 어색하게 있다 오곤 했다. ‘성인식’에서 파격적인 춤과 의상을 선보이고, “할 줄 알어?”라고 도발적으로 묻던 박지윤은 그때 겨우 스물한살의 나이였다. 해야 한다고 해서 했을 뿐이다.

“노래하는 걸 좋아하다가 우연치 않게 누군가에 의해서 이 일을 시작하게 됐는데 유명인의 삶이라는 게 어떤 건지 나중에 알게 된 거죠. 그래서 내 삶을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나이가 됐을 때는 내가 할 수 있고 하고 싶은 일만 하게 되고 점점 내가 원치 않는 일은 하나씩 정리를 하게 됐어요.”

2009년 6년의 공백 뒤에 7집 <꽃, 다시 첫번째>라는 의미심장한 앨범으로 돌아왔을 때 새로운 싱어송라이터가 탄생했다며 평단은 환호했다. 티브이에서 춤추며 부르던 노래와는 전혀 다른 어쿠스틱한 성향의 음악이었다. 6년 동안 그는 혼자서 곡을 쓰고 가사를 다듬으며 자신의 노래를 만들었다. 대형 기획사 소속이었던 그는 ‘박지윤 크리에이티브’라는 1인 회사를 만들어 음반을 만들고 홍보했다. 이어 발표한 8집 <나무가 되는 꿈> 역시 박지윤의 세계를 더 공고히 해주었다.

사진 박지윤 크리에이티브 제공

“두장의 앨범을 만들면서 혼자 모든 걸 하다 보니 사람과의 관계에 많이 지쳐 있었는데 미스틱에서 먼저 같이 하자고 요청이 왔어요. (윤)종신 오빠에 대한 신뢰도 있었고 당시에 ‘너무 네 안에만 갇혀 있는 게 아니냐’는 조언도 많이 들어서 미스틱과 함께하는 선택을 했던 것 같아요. 회사에 들어간다는 건 분명 비즈니스적인 부분이 있는 거니까 ‘전속 가수’란 게 어떤 건지 알면서 어느 정도 감수를 하고 들어간 거죠.”

그가 2013년 윤종신이 이끄는 미스틱 엔터테인먼트라는 큰 회사에 들어갔을 때 의문을 갖는 이들이 많았다. 그곳에서 발표한 노래들 역시 호평을 받았던 전작들과는 달랐다. 철저히 미스틱의 시스템 안에서 만들어진 노래였다. 자신이 선택한 이상 최선을 다한다는 생각으로 회사의 요구를 따랐다. 주변 사람들이 놀랄 만큼 다시 춤을 배웠고 티브이에도 출연했다. 하지만 스스로 쓴 곡은 미스틱에 있는 동안 단 하나도 발표하지 못했다. 그는 “종신 오빠도 고민이 많았을 거고, 회사 입장도 있었을 것”이라며 이해했다. “종신 오빠를 통해서 정말 많은 좋은 분들을 만나게 됐어요. 종신 오빠는 지금도 응원해주고 있고, 그때 만난 분들과 계속 음악 작업도 같이 하고 있고요.”

지금 그는 다시 혼자서 일하고 있다. 기자의 연락을 직접 받고 약속 장소를 정하고 메일도 직접 쓴다. 여러 삶의 굽이를 돌며 데뷔 20년을 맞은 그가 택한 결국 가장 잘 맞는 방식이다. 그는 지난달 말 데뷔 20주년을 기념하는 음반과 180쪽에 이르는 사진집을 냈다. 지난해 겨울 20주년을 맞아 연 공연 실황이 두장의 시디에 담겼다. 그는 20명의 현악 연주자와 함께한 이 큰 공연에서 다시 스스로 음악의 틀을 짰고 미스틱에서 인연을 맺은 피아니스트 조윤성과 함께 편곡도 했다.

‘아무것도 몰라요’, ‘환상’, ‘성인식’, ‘난 사랑에 빠졌죠’, ‘소중한 사랑’ 등 과거 히트곡부터 ‘그대는 나무 같아’와 ‘바래진 기억에’ 같은 홀로서기 한 뒤 만든 아름다운 노래들이 고르게 수록되어 있다. 또 ‘하늘색 꿈’을 부르던 열다섯 시절부터 서른여섯 지금까지의 변화가 담긴 사진을 하나하나 골라 옛 필름을 찾아 인화하고 사진을 스캔해 20년 역사를 기록했다. “정말 많이 힘들었다”고 웃으며 말할 정도로 생각보다 많은 금액과 시간과 정성이 들어갔다.

사진 박지윤 크리에이티브 제공

그는 지금 음악 말고 조용히 팟캐스트 방송을 하나 하고 있고 내레이션에 매력을 느껴 가끔 내레이터 일을 한다. 이게 그가 지금 할 수 있고 하고 싶은 일이다. 20년 뒤의 모습을 생각해본 적 있느냐는 질문에 그는 지금보다 더 평범하게 살겠지만 계속 노래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보였다.

“20년 전에 지금 나의 모습을 전혀 상상하지 못했듯이 50대가 된 내가 어떻게 살고 있을까 정말 잘 상상이 안 가요. 바람이 있다면 꼭 많은 분들이 아니더라도 제 음악을 들어주는 분들이 계셔서 조그맣게 공연도 할 수 있고 계속 앨범을 낼 수 있는 것, 그러면 정말 감사할 것 같아요.” 김학선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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