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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기의 100년에서 100년으로] 분단의 상처ㆍ억눌린 여성의 삶… ‘엄마의 눈’으로 조명하다

입력
2018.04.23 04:40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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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살 ‘늦깎이 작가’ 데뷔

가부장제 아래 식민화된 사회 속

당당히 맞서는 여성의 삶 풀어내

페미니즘 문제의식에 선구적 모습

여성 시각으로 쓴 현대사 증언

전쟁이 개인을 어떻게 파괴했나

어머니의 끈질긴 생명력으로 고발

전쟁이 가져온 비극 비판적 성찰

아직 풀지 못한 분단체제 숙제

북풍ㆍ남남갈등 등 지금도 큰 영향

미래 이끌어갈 시대정신 하나는

‘분단의 극복’이라는 과제 명확

전쟁과 분단을 여성의 눈으로 그려낸 소설가 박완서. 한국일보 자료사진
전쟁과 분단을 여성의 눈으로 그려낸 소설가 박완서. 한국일보 자료사진

박완서(1931~2011)는 두 가지 점에서 이례적인 작가다. 하나는 마흔이 돼서야 작가로 나섰다는 점이다. 젊은 시절 문학 수업을 받고 데뷔한 게 아니라 중년의 성숙한 작가로 우리 앞에 불쑥 나타났다.

다른 하나는, 이렇게 뒤늦게 등장했는데도 쉼 없이 작품을 발표함으로써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작가가 됐다는 점이다. ‘나목’에서 시작해 40년 동안 박완서는 수많은 장편소설, 단편소설, 산문들을 남겼다. ‘휘청거리는 오후’,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 ‘미망’,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등 그의 대표작들을 이 땅에 사는 이들이라면 한두 권 정도는 읽어 봤을 것이다.

소설은 본디 이야기를 만들어 진실을 전하는 예술 양식이다. 이야기에는 체험과 허구가 공존하고, 진실에는 공감과 감동이 깃들어 있다. 박완서는 이야기를 직조하는 데 뛰어났을 뿐만 아니라 그 안에 인간과 사회에 대한 통찰을 담아두는 데 탁월했다. 문학적 성취와 대중적 사랑을 동시에 일군 작가가 다름 아닌 박완서였다.

문학평론가 권명아는 박완서 문학에서 발견할 수 있는 문제의식을 ‘여성의 입장에 선다는 것’, ‘분단 시대의 무의식’, ‘허영의 시장과 소설의 운명’으로 나눈 바 있다. 다시 말해, 박완서 문학을 지탱하는 세 기둥은 페미니즘, 분단 문제 인식, 자본주의 문화 비판이라 할 만하다. 박완서의 페미니즘과 분단 인식이 잘 드러난 소설이 연작 ‘엄마의 말뚝 1ㆍ2ㆍ3’(1980~82)이다.

실향민 엄마의 삶

‘엄마의 말뚝’은 박완서의 개인적 체험을 담고 있다. 1931년 경기 개풍에서 태어나 일제 강점기 후반 서울로 이사 와서 살아가는 이야기에 한국전쟁 당시 죽은 오빠의 이야기가 이어지고, 어머니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가 더해진다. 소설의 중심에 놓인 존재는 어머니다. 그리고 작품의 마지막은 현재 시점으로 돌아온다.

단편 연작 형태로 씌여진 '엄마의 말뚝'. 50년 가정사를 통해 분단, 월남, 전쟁, 이념의 문제를 다룬다.
단편 연작 형태로 씌여진 '엄마의 말뚝'. 50년 가정사를 통해 분단, 월남, 전쟁, 이념의 문제를 다룬다.

가족과 한국전쟁은 박완서 문학의 주요 소재다. ‘엄마의 말뚝’은 어머니란, 가족이란 어떤 존재인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이사간 날, 첫날 밤 세 식구가 나란히 누운 자리에서 엄마는 감개무량한 듯이 말했다. “기어코 서울에도 말뚝을 박았구나. 비록 문밖이긴 하지만…””(‘엄마의 말뚝 1’)

지긋지긋한 셋방살이를 끝내고 현저동 꼭대기에 집을 장만해 이사한 날 밤 이야기다. 말뚝은 집이다. 일상의 장소이자 영혼의 거처다. 역사와 세상의 거센 바람 속에서 식구들을 지켜줄 최후의 공간이 집이다. 우리 인간은 때때로 말뚝으로부터 벗어나려고 하지만, 결국엔 돌아오게 되는 곳이 바로 말뚝으로서의 가족이다.

서울에 말뚝을 박고 딸을 신여성으로 키웠던 어머니에게 박완서는 자신의 이름을 돌려준다. 어머니가 죽고 난 다음, “삼우날 다시 찾은 산소에서 나는 어머니의 성함이 한 개의 말뚝이 되어 꽂혀 있는 걸 보았다. (...) 어머니의 성함 중, 이름을 따로 뜻으로 읽어보긴 처음이었다. (...) 그까짓 몸 아무데 누우면 어떠냐. 너희들이 마련해준 데가 곧 내 잠자리인 것을. (...) 어머니의 함자는 몸 기(己)자, 잘 숙(宿)자여서 어려서부터 끝 자가 맑을 숙자가 아닌 걸 참 이상하게 여겼었다.”(‘엄마의 말뚝 3’)

연작의 마지막에 와서 어머니의 이름이 밝혀진다. 독자들은 아내이자 어머니라는 보통명사 이전에 자기 이름을 가진 고유한 실존으로서의 여성과 대면하게 된다. “깔끔한 대신 차가운”, 한없이 고단했으나 더없이 당당했던 인간으로서의 어머니에 대한 기억은 박완서 문학이 품은 페미니즘의 문제의식을 선명히 보여준다.

박완서 문학의 기여

박완서 문학에 담긴 또 하나의 코드는 우리 현대사에 대한 증언과 해석이다. 한국전쟁이 개인의 삶을 어떻게 파괴했는지, 산업화가 어떤 소외와 허위의식을 가져왔는지를 박완서는 주목한다. ‘엄마의 말뚝 2’는 분단과 한국전쟁을 다룬다. 남편이 죽은 이후 절대 신앙이었던 아들을 잃은 다음 어머니가 보여준 모습은 감동적이다.

서울이 수복된 후 어머니는 가매장한 아들의 시신을 화장하고 강화도를 찾아가 “멀리 개풍군 땅이 보이는 바닷가에 섰다. 그리고 지척으로 보이되 갈 수 없는 땅을 향해 그 한 줌의 먼지를 훨훨 날렸다. (...) 어머니는 한 줌의 먼지와 바람으로써 너무도 엄청난 것과의 싸움을 시도하고 있었다. (...) 어머니를 짓밟고 모든 것을 빼앗아간, 어머니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분단(分斷)이란 괴물을 홀로 거역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다.”(‘엄마의 말뚝 2’)

1980년대 한 인터뷰에서 무수하게 고쳐 썼던 소설 데뷔작 '나목' 초고를 들어 보이고 있는 소설가 박완서. 박완서는 '마흔의 가정주부'로 홀연히 문단에 나타났다.
1980년대 한 인터뷰에서 무수하게 고쳐 썼던 소설 데뷔작 '나목' 초고를 들어 보이고 있는 소설가 박완서. 박완서는 '마흔의 가정주부'로 홀연히 문단에 나타났다.

박완서는 어머니의 끈질긴 생명력을 역사와 사회와 이렇게 조우시킨다. 실존적 어머니의 존재를 역사적·사회적 존재로 변화시킨다. 자식들의 성공을 위해 고향을 떠나 서울에 말뚝을 박았지만, 결국 대면한 것은 아들을 앗아간 전쟁의 비극이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이에 굴하지 않고 자식의 유해를 바람에 실어 고향으로 날려 보내는 신성한 의례를 치른다.

“운명에 순종하고 한을 지그시 품고 삭이는 약하고 다소곳한 여자 티는 조금도 없었다. 방금 출전하려는 용사처럼 씩씩하고 도전적이었”던 어머니의 당당한 태도는 시대와 마주한 개인, 역사에 맞서는 여성의 모습을 뭉클한 감동으로 전달한다. 이렇게 박완서는 한국전쟁의 상흔과 분단체제의 비극을 증거하고 고발한다.

‘엄마의 말뚝 2’는 1981년 이상문학상을 받았다. 당시 심사위원을 맡은 국문학자 김윤식은 이 소설이 “개인과 민족의 관계가 오직 가족사 속에서 깊게 파악됨으로써 추상적이기 쉬운 분단문제가 새로운 양상으로 전개되었음은 이 작가의 삶을 바라보는 눈과 그것을 형상화하는 작가의 능력이 함께 높은 경지임을 말해” 준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엄마의 말뚝’에 담긴 삶의 기록을 박완서는 장편소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에서 다시 한 번 감동적으로 형상화한다.

이 짧은 글에서 박완서 문학의 전모를 다루기는 어렵다. 박완서 문학에 담긴 코드는 여럿이다. 무엇보다 박완서 소설들은 가부장제 아래 식민화된 여성의 삶과 분단이 가져온 그늘을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데 결코 작지 않게 기여했다. 사상으로서의 문학의 힘은 개인과 사회의 관계를 날카롭게 파헤쳐 삶의 실존적 근거와 사회의 존재 이유를 묻고 그 답변을 구하는 데 있다. 지난 50년 가까이 이러한 문학적 계몽에 더해 소설 읽기의 즐거움을 선사했던 작가가 박완서였다.

분단의 미래

프랑스 역사학자 페르낭 브로델은 역사 안에 존재하는 시간을 세 층위로 구분한 바 있다. 사건사의 시간, 사회사의 시간, 구조사의 시간이 그것이다. 브로델이 말하는 사회사의 시간은 ‘국면의 역사’의 시간이다. 특정한 시기에 형성된 국면의 역사가 개별 사건 및 사회구조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광복 이후 한반도에서 관찰할 수 있는 사회사의 시간은 ‘분단체제의 시간’이다.

분단체제가 미친 영향은 과장할 필요가 없지만 그렇다고 과소평가해서도 안 된다. ‘북풍 논란’, ‘코리아 디스카운트’, ‘남남갈등’ 등은 분단의 영향들을 보여주는 구체적인 사례들이다. 남북관계는 외생 변수가 아니라 계급과 지역, 세대와 함께 사실상의 내생 변수인 셈이다. 더욱이 지난 몇 해 북한이 핵무기 개발에 박차를 가함으로써 남북관계와 북미관계가 악화됐고, 이 상황은 적지 않은 국민들에게 전쟁의 불안과 북한에 대한 분노를 안겨줬다.

소설가 박완서가 잇달아 내놓았던 작품들. 한국일보 자료사진.
소설가 박완서가 잇달아 내놓았던 작품들. 한국일보 자료사진.

이러한 분단체제의 시간이 올해 들어와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다. 곧 치러질 남북 정상회담과 북ㆍ미 정상회담이 그것이다. 현재 우리 사회에 부여된 일차적인 대외 과제는 북한의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체제의 구축이다. 장기적으로는 항구적인 평화를 바탕으로 통일의 기반을 일궈야 한다. 이 과정이 물론 순탄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최근의 흐름은 한반도 평화를 위한 새로운 기회가 열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돌아보면 지난 100년 가운데 긴 시간을 우리는 분단체제 아래서 살아 왔다. 앞으로 이어질 100년 동안 통일이 과연 이뤄질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먼저 중요한 과제는 평화이고, 통일은 그 다음의 과제일 수 있다. 분명한 것은, 분단의 극복인 통일이 경제혁신, 민주주의와 함께 우리나라 미래를 이끌어갈 시대정신의 하나라는 점이다. 분단을 딛고 통일을 이뤄 대한민국이 동아시아 평화와 번영의 주역으로 거듭나길 바라는 이가 나만은 아닐 것이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 ‘김호기의 100년에서 100년으로’는 지난 한 세기 우리나라 대표 지성과 사상을 통해 한국사회의 미래를 생각하는 연재입니다. 다음주에는 장하준의 ‘사다리 걷어차기’가 소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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