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문장으로 완성한 단편, '구보 박태원' 향한 존경심 담았죠"

박해현 문학전문기자 2018. 4. 23. 03:04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예순 살에 등단한 소설가 박찬순, 세번째 소설집 '암스테르담..' 출간

소설가 박찬순(72)이 세 번째 소설집 '암스테르담행 완행열차'(도서출판 강)를 냈다. 2006년 예순 살에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박찬순은 늦깎이 작가 생활에 전념, 4년 전 한국소설가협회 작가상을 받기도 했다. 최근 광화문에서 만난 작가는 "새 책엔 젊은 날부터 수십 년간 마음속에서 삭이고 삭인 작가들을 향한 오마주(Hommage·존경심)가 담겨 있다"며 "음악이 삶에 주는 위안에 감사하는 마음도 들어 있다"고 했다.

수록작 중 단편 '산천을 허리에 꿰차는 법'이 특히 눈길을 끈다. 소설가 박태원(1909~1986)이 1936년 발표한 실험소설 '방란장 주인'을 기리며 그와 같이 단 한 문장으로 이야기를 끌고 간 작품이다. 박태원의 소설은 '그야 주인의 직업이 직업이라 결코 팔리지 않은 유화 나부랭이는 제법 넉넉하게 사면 벽에 가 걸려 있어도, 소위 실내 장식이라고는 오직 그뿐으로, 원래…'라며 숱하게 쉼표를 찍어서 결국 한 문장으로 된 서사를 완성했다.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음악으로 자신을 다스려야 치졸한 인간이 되지 않는다”는 작가 박찬순. /이태경 기자

박찬순 소설도 '청계천 이야기를 쓰면서 나는 왜 멀리 떨어진 대구 신천에 내려와 있는 것인지 그 야릇한 심사를 나 자신도 알 수가 없어 황망해다가 뭐 한참을 걷다 보면…'이라며 꼬리에 꼬리를 무는 서술 형식을 시도했다. '했으니'라는 연결어미를 주로 동원하면서 '했는데'라거나 '하면서'라며 서사를 풀어간다. 작가가 소설가 '구보'를 만나는 환상이 전개됐다.

박찬순은 "2016년 박태원 연구자들이 모인 '구보학회'에서 논문 대신 발표한 구술(口述) 소설"이라며 "문장이 끊어지지 않도록 되풀이해 읽으면서 기를 쓰고 써 내려갔다"고 회상했다. 작가는 박태원의 흔적을 찾아서 쓴 단편 '성북동 230번지'도 책에 실었다. 정지용의 시 '해협'을 젊은 날에 읽으며 '나의 청춘은 나의 조국/ 다음날 항구의 개인 날씨여'란 시구에 감동했던 기억으로 숙성시킨 단편 '레몬을 놓을 자리'도 수록했다.

팔레스타인 출신의 문명비평가 에드워드 사이드에게도 경의를 표했다. 사이드가 지휘자 바렌보임과 손잡고 만든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합동 교향악단'을 모델로 삼았다. 작가는 서해를 배경으로 열린 가상의 '남북한 청년 음악회'를 담아 소설 '북남시집 오케스트라'를 썼다.

책 제목이 된 단편 '암스테르담행 완행열차'는 서양 악기 '비올라 다 감바'를 예찬한다. 16~18세기에 주로 연주된 이 악기에 대해 작가는 '바이올린보다는 5도 낮고 첼로보다는 약간 높다는 악기'라며 '인간 목소리의 모든 굴곡진 결을 다 표현할 수 있다'고 묘사했다. 작가는 "비올라 다 감바는 소리를 높이 내지르고 싶은 욕망을 참아야 하는 악기라서 더 애절하다"며 "하지만 저음(低音)으로 우리를 무장 해제시키고, 음악 속에서 오르가즘을 맛보게 한다"고 품평했다.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