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대화 지금 최적기..누구나 '철밥통' 갖게 하자"

2018. 4. 22.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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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영 한국노총 위원장 인터뷰

"문 대통령 지지율·개혁 기대 높아
새 대화기구 개편 이달 넘겨선 안 돼
이달내 합의 안되면 논의서 빠질 것"

"노사갈등 투쟁땐 정규직 조직만 혜택
4차 산업혁명속 사회안전망 더 중요
많은 노동 약자 위해 대화로 해법을"

[한겨레]

지난 20일 오후 서울 여의도 한국노총 위원장실에서 김주영 위원장이 <한겨레>와 만나 새로운 사회적 대화가 가야 할 방향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한국노총 제공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노사정위)의 한계를 뛰어넘겠다며 시작된 ‘사회적 대화 기구’ 개편 논의가 3개월째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비정규직·여성·청년 같은 약자들에게 문을 열고 근로조건과 고용뿐 아니라 복지·경제정의를 다룰 기구로 기대를 모았지만, ‘형식’에 대한 논의가 지나치게 길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9월 새로운 사회적 대화 기구를 처음 제안했던 김주영 한국노총 위원장은 “개혁 기대감이 높은 지금이 ‘사회적 대화 기구’를 꾸릴 최적의 시간”이라며 “국회 구성, 지방선거 흐름 등을 보면 새 기구 개편이 4월을 넘겨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한겨레>는 제3차 노사정 대표자회의를 나흘 앞둔 지난 20일 한국노총 집무실에서 김 위원장을 만났다.

김 위원장은 플랫폼 노동, 특수고용직 등 제도권 밖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지속해서 늘고 있는 상황을 언급하며 “사회적 대화야말로 불안정한 노동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유일한 답”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이어 “노사갈등을 모두 투쟁으로만 해결하면, 회사 쪽에 맞서 싸울 힘이 있는 대기업·공공기관 정규직 같은 조직만 혜택을 본다”고 지적했다. ‘사회적 대화’가 더 많은 노동 약자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지난해 2월 취임한 김주영 한국노총 위원장은 한국전력노조 위원장, 전국공공산업노동조합연맹 위원장을 거쳤고, 2003년 노사정위 합의를 통해 정부의 전력산업 민영화 시도를 막아낸 바 있다. 이 경험은 김 위원장이 새로운 사회적 대화를 제안한 배경이 되기도 했다.

김 위원장은 사회적 대화를 통해 ‘사회안전망’에 관한 주제를 꼭 다뤄보고 싶다고 했다. “노사정 교섭으로 사회임금을 올리고 싶다”는 게 그의 구상이다. 불안정한 노동시장, 4차 산업혁명 같은 변화에 대응해 ‘공격적인 사회안전망 강화’의 필요성이 더 커졌다고 보는 것이다.

“보수언론에서 안정적 일자리를 ‘철밥통’이라고 비판하던데, 누구나 최소한의 삶을 보장받을 ‘철밥통’ 하나씩 안고 살아야 합니다. 사회안전망을 강화해 철밥통을 아예 ‘금밥통’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한편으로 김 위원장은 3개월 남짓 사회적 기구 마련을 위한 논의를 거치고도, 노사정위법 개정안조차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 대해 답답함을 드러냈다. 그는 “문재인 대통령에게 힘이 있을 때 노동계가 많은 성과를 내야 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의 지지율이 고공행진을 하는 지금을 ‘대통령의 시간’이라 표현한 바 있는 그는 “제3차 노사정 회의에서 사회적 대화 기구를 구체화할 것이란 기대를 걸고 있다. 4월 안에 합의가 안 되면 한국노총은 논의에서 과감히 빠질 것”이라며 정부가 좀 더 적극적인 역할에 나서줄 것을 주문했다. 노사정위는 현재 사회적 대화 참여 주체를 청년·여성·비정규직과 소상공인 등으로 확대하고, 기구 이름을 ‘경제사회노동위원회'로 정하는 정도까지 의견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 위원장은 “한국노총은 지난해 9·15 노사정 대타협 파기 이후 큰 상처를 입었고, 굉장한 부담을 안고 새 기구를 제안했다”며 “노사의 공감대 형성이 쉬운 의제부터 신뢰를 확장해가면 된다. 더 많은 노동 약자를 위한다는 생각으로 모든 주체가 조금씩 더 용기를 내주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아래는 김 위원장과의 인터뷰 전문이다.

-지금 사회적 대화 기구 개편 논의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요즘 날씨랑 비슷하다. 어제는 쌀쌀했는데 오늘은 쾌청한 것처럼. 지금 노사정의 관계가 사실 예측이 잘 안 되고 있다. 이번에 사회적 대화 기구 개편에 대해서 어떤 합의를 만들어낸다고 하더라도 앞으로 사회적 대화를 계속 이어가는 것은 또 다른 과제일 것 같다.”

-한국노총은 사회적 대화에 상당히 적극적이다. 사회적 대화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있다면?

“2002∼2003년 정부에서 전력산업을 비롯한 공공부문을 민영화하려고 시도하던 때가 있었다. 그때 나는 전력 민영화를 막겠다며 한국전력노동조합 위원장에 출마해서 당선됐다. 전력산업구조개편촉진에 관한 법률을 막아내지 못했기 때문에 우리는 파업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노동조합 위원장인 나는 파업을 하면 구속되고 해고되는 것이 정해진 수순이었다. 그때 정부의 정책을 투쟁으로 넘는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걸 알게 됐다. 당시에 내가 낸 제안 중 하나가 노동조합·정부(사용자)·노사정위가 공동으로 연구단을 운영해서 전력사업 민영화 사업의 타당성을 검토해보자는 것이었다. 내 제안을 받아 만들어진 공동연구단이 1년 동안 9개 국가의 32개 기관을 방문하고 문헌 조사·국내 현장실사 등을 거쳐 ‘전력사업 민영화는 중단되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 논리가 아직도 깨지지 않았는데 그건 이해주체가 모여서 공동으로 낸 결론이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때부터 사회적 대화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사회적 대화를 통해서 노사정 주체와 함께 논의하고 싶은 주제는 무엇인가?

“노사정의 대화로 사회안전망을 강화하는 큰 전환을 할 수 있지 않나 생각한다. 노동시장은 갈수록 불안정해지고 자동차·조선 등 여러 산업에서 구조조정이 이루어지고 있다. 4차산업 혁명 등 기술 발전으로 앞으로 노동은 더욱 불안정해질 가능성이 크다. 정규직 노동자여도 보육·교육·의료·주거 등 기본적인 삶의 문제를 보장받지 못하는 이 상황에 지속가능한 사회로 가기 위해서는 사회안전망이 꼭 필요하다. 저출산 문제가 이렇게 심각한 이유도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월급만으로 살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은 사회안전망 부족을 개별 회사에서 임금인상이나 기업복지로 풀려고 하다 보니 각 기업 단위에서 노사가 죽기 살기로 싸우고 있다. 또 기업복지에만 매달리니 많은 사람이 울타리 안에 들어갈 수가 없다. 사회임금을 높이고 사회안전망이 튼튼해지면 지금처럼 치열하게 싸우지 않아도 된다. 한국의 경제 규모에 걸맞게 국가복지를 키우는 방향으로 사회 전반적 복지 수준을 끌어올려야 한다. 때문에 지엽적인 문제는 사업장 단위에서 노사가 풀고 사회적 대화 자리에서는 법과 정책·재정·제도 등 큰 그림에 대해 논의를 했으면 한다.”

-여전히 ‘보편복지는 노동 의지 혹은 노동의 가치를 떨어트릴 것’이라는 의견이 나오는 가운데 한국노총 위원장의 주장이라고 하기에는 상당히 파격적이다.

“물론 그런 비판도 있을 수 있다. 나도 독일에 갔을 때 독일 노동계 관계자와 이야기를 나눠보니 보편적 복지나 기본소득 같은 것에는 관심이 없더라. 주로 노동조합에 가입된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는 지금 당장은 보편적 복지에 대해 반대할 수도 있다. 하지만 노동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은 다음 세대를 위한 논의가 될 수 없다. 나도 남들 다 가고 싶어하고 ‘신의 직장’으로 불리는 공기업에 속해 있는데, 내 삶의 안정성이 대를 이어서 갈 수는 없다. 다음 세대를 위해서는 보다 포괄적인 안전망이 갖춰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보다 공정한 조세제도를 만드는 등 새로운 판이 필요하다.

일부 보수언론에서는 안정적인 일자리를 두고 ‘철밥통’이라고 부르면서 비판하기도 하던데, 누구나 최소한의 삶을 보장받을 ‘철밥통’ 하나씩은 안고 살아야 하지 않겠나. 사회안전망을 강화해서 철밥통이 아니라 아예 ‘금밥통’을 만들어야 한다”

-사회적 대화가 지금 한국 사회를 개혁하기에 적합한 방식이라고 보나?

“노사관계는 필연적으로 갈등을 수반한다. 이 갈등을 싸워서 풀 것이냐, 대화로 풀 것이냐, 하는 문제가 남는다. 싸움은 생각보다 사회적 비용이 많이 든다. 아무나 싸울 수 있는 게 아니다. 노사관계의 모든 갈등을 투쟁으로만 해결한다면 회사 쪽에 맞서 싸울 수 있을 만큼 힘이 있는 노동자들만 혜택을 보게 된다. 그게 바로 대기업·공공기관 정규직 노동자다. 지금 한국 사회의 문제는 플랫폼 노동·특수고용직 등 제도권 노동 밖으로 밀려나는 사람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점에 있다. 우리나가 경제 규모로는 세계 10위권인데 그럼에도 여전히 많은 사람이 저임금에 시달리고 격차는 점차 심해진다. 보다 많은 대중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대화가 필요하다.

또 경제 주체의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상황을 인정하지 않으면 진전을 이루기는 어렵다. 예컨대 원하청 불공정 거래 문제가 한국 사회의 격차를 만드는 주요한 원인인데 이런 문제는 경영계의 합의를 끌어내지 않으면 제도개선이 굉장히 어렵다.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조율하는 게 모든 문제 해결의 시작이라고 본다.”

-사회적 대화 기구 개편에 대한 논의가 다소 늦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촛불 혁명으로 높은 지지를 받으며 취임한 문재인 대통령이 노동존중사회를 만들겠다 약속했다. 개혁에 대한 기대감이 상당히 높은 지금, 논의만 하면서 아까운 시간을 흘려보내서 정말 아쉽다. 앞으로 5월 국회 원 구성 새로 하고 6월에 지방선거 치르는 등 상황을 보면 이번 4월이 지나면 사회적 대화를 하고 싶어도 못한다.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이 그렇게 길지 않다고 본다. 아직 23일에 있을 제3차 노사정 대표자회의에서 사회적 대화 기구가 구체화할 수 있다는 작은 기대를 걸고 있다. 그날 대표자들이 빠른 합의를 이루어내서 4월 안에 노사정위법 개정까지 이루어낼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나 만일 4월에 합의가 안 된다면 한국노총은 논의에서 과감히 빠질 거다. 그 이후로는 합의가 어떻게 이루어진다고 해도 법 개정을 거쳐 실질적인 논의를 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에 계속해서 사회적 대화를 주장하는 것이 무의미하다.

과거 사회적 대화에 대한 노동계의 상처와 불신 때문에 논의 속도가 더뎌지고 있다. 그러나 한국노총에도 지난 9·15 합의 파기로 인해 사회적 대화에 대한 상처가 분명 있다. 나도 굉장한 고민 끝에 내 자리에 대한 부담을 안고 사회적 대화를 제안했다. 충분히 노사의 공감대 형성이 쉬운 의제부터 시작해 신뢰를 확장할 수 있다고 본다. 모든 주체가 조금씩 더 용기를 내주기를 바란다.”

이지혜 기자 god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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