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다 차관 성희롱 사건..잠잠하던 일본 내 '미투' 불붙나
검은 옷을 입은 국회의원 20여 명이 ‘#미투(#Me Too)’라고 적힌 종이 팻말을 들었다. 여성 총무상이 20대에 겪었던 성적 괴롭힘을 고백하고, 취재 현장에서 성희롱을 당한 기자와 방송 종사자들의 증언도 이어진다. 세계적으로 퍼져 나가고 있는 성폭력 피해자들의 연대 움직임인 ‘미투’ 운동 열풍 속에서도 그간 잠잠하던 일본 사회가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검은색은 분노를 의미한다”
그러나 이 사건의 처리 과정에서 아소 다로(麻生太郎) 일본 부총리 겸 재무상이 “후쿠다에게는 인권이 없느냐”며 제 식구 감싸기에 나서는 등 일본 지도층의 낮은 성평등 의식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이에 분노한 야당 소속 의원들이 20일 단체 행동에 나섰다. 마이니치 신문에 따르면 입헌민주당, 희망의 당, 공산당 등 6개 야당 소속 의원들은 이날 ‘#미투(#Me Too)’라고 적힌 종이 팻말을 들고 재무성을 항의 방문했다.
시위에 참가한 여성 의원들은 동참의 의미로 검은 색 옷을 입었다. 입헌 민주당의 렌호(蓮舫) 참의원 국회대책위원장은 “검은색은 분노를 의미한다”며 “여성들이 목소리를 제대로 낼 수 없는 데 대한 항의의 의미”라고 말했다. 같은 당의 아쓰지 카나코(尾辻かな子) 의원도 “압도적인 권력 차이로 성희롱을 당해도 말할 수 없었던 피해자들을 혼자 두지 않겠다. 성희롱에 침묵하는 시대는 이제 끝나야 한다”고 호소했다.
정치권부터 나선 미투..사회 전체로 번지나
정부 내에서도 문제의 심각성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노다 세이코(野田聖子) 총무상은 18일 국회에서 “나 역시 20대에 성적인 괴롭힘을 받은 적이 있다”고 고백하며 ‘미투’에 동참했다. 그는 또 20일 기자들에게 “미디어에서 활동하는 여성도 성희롱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힘들다, 일하기 쉬운 환경이 아니라는 호소가 들려온다”며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왜 1대1로 만나냐"..2차 가해도 심각
일본에서는 지난해 5월 프리랜서 저널리스트 이토 시오리(伊藤詩織)가 유명 방송사 기자에게 성폭행을 당한 사실을 폭로하면서 ‘미투’가 시작됐지만,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하고 잦아들었다. 이번 후쿠다 차관의 성희롱 사건으로 확산되지 않던 미투 운동이 일본 사회 전체로 번질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한편 20일(현지시간) 미 국무부가 발표한 ‘2017 세계 인권보고서’는 일본 사회의 성희롱 문제를 정면으로 지적했다. 보고서는 일본 정부의 2016년 조사 결과를 인용, “여성의 평균 급여는 남성의 73%에 머물러 있고, 일하는 여성의 30%가 성희롱 피해를 호소한다”고 지적하며 “일본 여성이 직장에서 당하는 불평등한 대우에 우려를 표한다”고 밝혔다.
이영희 기자 misquick@joongang.co.k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