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데스 현장메모] 야유→환희, 도르트문트가 쓴 '90분 반전극장'

이명수 기자 2018. 4. 22.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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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풋볼=도르트문트(독일)] 이명수 기자= 경기 시작 30분 전. 도르트문트 선수들이 워밍업을 위해 경기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선수들은 경기장을 돌며 인사를 보냈지만 도르트문트 홈 관중들은 야유로 화답했다. 지난 주말 샬케와의 레비어더비 0-2 완패에 따른 분노였다.

하지만 90분의 반전극장이었다. 도르트문트는 22일 새벽 1시 30분(한국시간) 독일 도르트문트의 지그날 이두나 파크에서 열린 2017-18 시즌 독일 분데스리가 31라운드 레버쿠젠과의 홈경기에서 시원시원한 공격을 선보이며 레버쿠젠을 4-0으로 완파했다. 더비 패배로 인한 팬들의 야유를 환호로 바꿔냈고, 3위 탈환과 UCL 티켓 획득에도 성큼 다가섰다.

# 신임 잃은 슈퇴거 감독

경기 전 장내 아나운서가 도르트문트 선발 라인업을 소개했다. 독일은 장내 아나운서가 이름을 외치면 관중이 성을 따라 외친다. 예를 들어 아나운서가 '마르코'를 외치면 관중들이 '로이스'를 외치는 식이다. 선수 소개 시간이 끝나고, 감독을 소개할 차례가 됐다. 아나운서가 '피터'를 외쳤다. 아무도 '슈퇴거'를 외치지 않았다. 야유만이 경기장에 울려펴졌다. 바이에른 뮌헨전 0-6 대패와 샬케전 0-2 더비 패배로 인해 슈퇴거 감독은 완전히 팬들의 마음 속에서 지워졌다.

슈퇴거 감독은 지난해 12월, 시즌 도중 경질된 피터 보슈 감독의 뒤를 이어 도르트문트의 지휘봉을 잡았다. 슈퇴거 감독은 어수선한 팀을 빠르게 수습했다. 도르트문트 데뷔전이었던 지난해 12월 13일, 마인츠전을 승리로 장식했고, 레버쿠젠전 승리 포함 10승 7무 4패를 거뒀다. 표면만 놓고보면 나쁘지 않은 기록이다.

하지만 큰 경기에 너무나 약했다. 진 경기를 살펴보면 지난해 12월 바이에른 뮌헨과의 DFB 포칼 16강전에서 1-2로 패했다. 그리고 뮌헨에 리그에서 0-6으로 대패했다. 잘츠부르크를 상대로 유로파리그 16강 문턱을 넘지 못했다. 지난 주말 샬케와의 레비어더비에선 0-2로 완패했다. 슈퇴거 감독은 큰 경기에 약한 모습을 보였고, 준수한 성적을 올렸음에도 팬들의 비난을 받고 있다. 독일 '스카이스포츠'는 "슈퇴거 감독이 올 시즌까지만 감독직을 수행한 후 다른 감독이 새로 부임할 것이다"고 보도했다. 레비어더비 완패가 결정타였고, 팬들은 이날 승리를 비롯해 슈퇴거 감독이 리그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도 박수를 보내지 않고 있다.

# 야유→환희, 12분이면 충분

킥오프 휘슬이 울리고, 관중들은 도르트문트 선수단을 전혀 반기지 않았다. 빌드업을 위해 수비 지역에서 공을 돌릴 때 야유가 쏟아졌다. 뒤에서 공을 돌릴 것이 아니라 앞으로 전진해 골을 넣으라는 압박이었다. 이에 압박감을 느낀 선수들은 몸을 아끼지 않는 투혼으로 경기에 임했다. 관중들은 선수들의 몸짓 하나하나에 반응했다.

전반 12분, 도르트문트가 선제골을 기록했다. 풀리시치의 패스를 받은 산초가 침착하게 마무리했다. 경기장은 환호성으로 가득찼다. 경기 전까지 야유를 보냈던 팬들은 온데간데 없고, 선제골에 신이 난 홈팬들만 보였다. 기세를 올린 도르트문트는 레버쿠젠을 더욱 거세게 몰아붙였다. 전반 34분, 로이스가 추가골을 기록했지만 VAR 판독 끝에 오프사이드가 선언됐다. 경기장은 야유로 가득찼다. 선수가 아닌 주심을 향한 야유였다.

후반전 킥오프 휘슬이 울렸다. 로이스가 환상적인 라인깨기 이후 골키퍼까지 제치며 추가골에 성공했다. 경기장은 더욱 달아올랐다. 전반전 득점 취소 상황에서 마시던 물병을 집어던지던 로이스는 활짝 웃었다. 이후 필립과 로이스가 1골 씩 추가하며 스코어는 4-0이 됐다. 후반 42분, 로이스는 세르히오 고메즈와 교체아웃 됐다. 로이스가 교체되어 나올 때 81,360명의 관중들은 모두 일어나 기립박수로 로이스를 맞이했다. 야유로 시작했던 경기는 환희로 마무리됐다. 그리고 야유가 환희로 바뀌기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12분이었다.

# 도르트문트 선수들의 소심한 복수

도르트문트의 4-0 완승으로 끝났다. 경기 종료 후 도르트문트 선수들은 서포터들에게 다가갔다. 경기 전 야유로 일관하던 팬들은 온데간데 없고, 환호만을 보낼 뿐이었다. 분데스리가는 승리 세레머니를 팬과 함께 한다. 만세삼창을 하거나 다함께 점핑하며 서포터와 소통한다. 도르트문트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도르트문트 선수들은 팬들에게 박수만 보내고, 매정하게 라커룸으로 떠났다. 팬들은 애교섞인 야유를 보냈다. 왜 승리 세레머니를 하지 않느냐는 항의였다. 그럼에도 도르트문트 선수들은 뒤를 돌아보지 않고 매정하게 라커룸으로 떠났다. 경기 전 팬들의 야유에 대한 도르트문트 선수단의 '복수'이자 '밀당'이었다.

도르트문트 선수들이 떠난 자리에 한 레버쿠젠 선수가 다가왔다. 바로 도르트문트에서 8시즌 간 뛰다 올 시즌 레버쿠젠으로 이적한 스벤 벤더였다. 이날은 벤더의 첫 도르트문트 방문이었다. 벤더가 '친정팀' 도르트문트 서포터 앞에 다가가자 서포터들은 박수를 보냈다. 도르트문트 서포터는 '레버쿠젠 선수' 벤더에게 승리 세레머니를 함께 하자고 했고, 결국 벤더와 함께 만세삼창을 했다. 패배 팀 선수가 승리 팀 서포터와 함께 만세삼창을 하는 기괴한 장면이 탄생했다. 이 장면을 지켜본 레버쿠젠 팬들은 속이 쓰릴 뿐이었다.

# 분위기 회복 도르트문트, UCL 안정권 진입

이날 도르트문트에는 많은 것이 걸려있었다. 더비 패배로 인한 분위기 회복과 UCL 진출 티켓이었다. 도르트문트는 샬케전 패배로 인해 레버쿠젠에 3위 자리를 내줬다. 5위 라이프치히가 승점 4점 차로 도르트문트를 압박해오고 있었다.

지난 주말 레비어더비에서 도르트문트는 너무나 무기력했다. 4년 만에 샬케에 더비 승리를 내줬고, 올 시즌 더비전적을 1무 1패로 마감했다. 게다가 샬케가 도르트문트보다 리그 순위도 높다. 도르트문트 팬들은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

때문에 레버쿠젠전이 중요했다. 도르트문트는 막강화력을 폭발시키며 레버쿠젠을 4-0으로 완파했다. 선제골을 넣으며 앞서감에도 추가골을 넣기위해 몸부림치는 도르트문트 선수들의 움직임이 인상적이었다. 라인 바깥으로 나가는 공을 슬라이딩해 기어코 살려내는 모습에 팬들은 박수를 보냈다.

이날 승리로 도르트문트는 3위 탈환에 성공했다. 리그 3경기가 남은 상황에서 도르트문트는 승점 5점만 추가하면 다음 시즌 UCL 진출을 확정 짓게 된다. UCL 진출 안정권에 접어들었다. 야유로 시작했던 도르트문트 극장은 4-0 승리와 함께 환희로 막을 내렸다.

Copyright ⓒ 인터풋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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