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이 되는 계약서, 독이 되는 계약서

정세형 2018. 4. 22.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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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정세형의 무전무죄(無錢無罪)(2)
많은 사람이 은퇴 이후 새로운 도전을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법 없이 사는 분도 있지만 그렇다고 법이 무작정 그들의 편이 되어주진 않는다. 법을 내 편으로 만드는 가장 좋은 방법은 법을 알고 일을 시작하는 것이다. 계약에서부터 소송에 이르기까지 실생활에서 일어날 수 있는 사례와 이에 대한 대응방법을 소개한다. <편집자>
지난 글에서는 계약서 작성의 중요성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이번에는 계약서를 작성할 때 염두에 둬야 할 4가지 요소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1. 당사자 - 나는 누구와 거래를 하는가
어떤 사람이 형사사건에 휘말려 변호사를 선임해야 했다. 그런데 누군가로부터 한 사람을 소개받았고, 그 사람은 자신을 어느 로펌의 사무국장이라고 소개했다. 그렇게 사무국장과 상담을 했고 변호인을 선임하기로 했다. 그러자 사무국장은 계좌번호를 알려주며 돈을 입금하라고 했다.

누구의 계좌냐고 물어보니 사무국장은 자신의 아내 명의 계좌라고 했다. 이전까지 한 번도 변호사를 선임해 보지 않았던 그는 조금은 의아했지만, 변호사 선임은 원래 이런 식으로 진행되는 것인가 보다 생각하고 사무국장의 말대로 했다. 그렇게 그는 얼굴도 모르는 변호사에게 자신의 운명을 맡겼다.

변호사의 얼굴도 보지 못하고 소송을 맡긴 사연을 종종 듣게 된다. 이럴경우 나중에 계약과 관련된 문제가 생기면 책임 소재가 불분명하기 때문에 누구에게 법적 책임을 물을 것인지를 염두에 두고 계약서를 작성 해야 한다. [사진 Freepik.com]

상담하다 보면 위 사례처럼 변호사의 얼굴도 보지 못하고 소송을 맡긴 사연을 종종 듣게 된다. 그런데 만일 변호사가 자신은 사무국장이 누군지도 모르고, 변호를 하기로 한 적도 없다고 한다면 사건을 맡긴 사람은 얼마나 난감하겠는가. 변호사를 직접 만난 적도 없고, 변호사에게 돈을 보낸 것도 아니어서 변호사에게 책임을 묻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사무국장을 고소한다 한들 떼인 돈을 받기까지는 또 얼마나 어려울 것인가.

이처럼 계약의 상대방이 누구인지 분명히 하기는 의외로 쉽지 않고, 계약이 급하게 진행되는 경우에는 더 그렇다. 우리 주변에는 자녀나 배우자 또는 친인척, 친구 명의로 사업을 하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비단 사업체가 아니더라도 부동산을 다른 사람 명의로 하는 경우 역시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이때 나중에 계약과 관련한 문제가 생기면 서로 책임을 떠넘기기만 하고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 따라서 계약서를 작성할 때에는 누구에게 법적 책임을 물을 것인지를 염두에 두고 계약 상대방을 분명히 해야 한다.

2. 권리와 의무 - 상대방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계약에는 당사자의 권리와 의무에 관한 사항이 반드시 포함된다. 특히 어느 쪽이 어떤 의무를 지는지, 과연 의무를 위반했는지를 가리기가 쉽지 않을 때가 있다. 아래의 사례를 살펴보자.

무마니 씨는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치킨집을 차리기로 했다. 한 치킨집 사장에게 권리금을 주고 시설을 인수했다. 임대인과 맺은 임대차계약서에는 ‘계약 종료 시 원상회복한다’는 특약이 들어 있었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데 불행히도 생각만큼 장사가 잘 안됐고, 급기야 월세까지 밀려 쫓겨날 신세가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임대인은 특약을 보여주며 시설을 모두 원상회복해 놓고 나가라고 한다. 무마니 씨는 그렇지 않아도 손해가 막심한데 자신이 설치하지도 않은 시설까지 모두 원상회복하라니 너무나도 억울하고, 어찌해야 할지 몰라 잠을 이룰 수 없다.

임대차 계약 같은 권리와 의무의 범위나 판단 기준에 대해 다툼이 생길 소지가 있는 계약이라면 권리는 무엇이고, 의무는 무엇인지, 의무 위반 여부를 어떻게 판단할 것인지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우상조 기자

임대차 계약에서는 계약 종료 시 임차인이 시설을 원상회복(또는 원상복구)해야 한다는 내용을 특약사항으로 넣는 경우가 많은데, 그 구체적인 범위에 대해 다툼이 생기는 경우가 많다(참고로 대법원에서는 특별한 약속이 없었다면 현 임차인은 전 임차인이 시설한 부분에 대해서는 원상복구 할 의무가 없다는 입장이다).

이처럼 권리와 의무의 범위나 판단 기준에 대해 다툼이 생길 소지가 있는 계약이라면 권리는 무엇이고, 의무는 무엇인지, 또 의무 위반 여부를 어떻게 판단할 것인지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3. 손해배상 - 상대방이 약속을 어겼을 때 어떻게 배상을 받을 것인가
상대방이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아 손해가 발생하더라도 원칙적으로는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쪽이 상대방의 의무 위반으로 인해 손해를 입었다는 점과 얼마만큼의 손해를 입었는지를 모두 입증해야 하므로 적절한 배상을 받기가 매우 어려울 수 있다.

이때 손해배상액 예정 조항을 두면 상대방이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사실만 증명해도 손해액 등을 구체적으로 입증하지 않더라도 예정한 배상액을 청구할 수 있다.

아무리 손해배상을 받는다 해도 계약이 원활하게 진행되는 것만큼은 못하기 때문에 처음부터 상대방의 계약 이행을 보다 확실하게 확보할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이때에는 ‘위약벌’ 조항을 명시하는 것을 고려해 볼 만 하다. 위약벌은 손해배상과는 별도로 상대방의 의무 위반에 대해 제재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상대방이 의무를 위반한 경우 위약벌과 별도로 실제 손해에 대한 배상을 청구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이 외에도 기한 내에 해야 하는 일의 경우라면 ‘지체상금’ 조항을 두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4. 관할 - 서로 합의점을 찾지 못했을 땐 어디에 하소연할 것인가
수원에 사무실을 둔 건설회사가 동두천에서 공사하면서 현지 장비업체로부터 건설장비를 빌렸다. 공사가 끝난 후 장비대여금 정산 때문에 서로 이견이 생겼는데, 어느 날 갑자기 동두천 법원에서 소송 안내문이 날아왔다. 장비대여업자가 동두천시법원에 대금청구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건설회사 사장은 소장 내용은 그렇다 치더라도 당장 바빠 죽겠는데 동두천까지 왔다 갔다 할 생각을 하니 머리가 아프다.

당사자 간에 분쟁이 생겼을 경우 제3의 기관을 통할 수밖에 없는데, 가장 흔한 방법이 소송이다. 이때 어느 법원에서 재판할 것인지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서울고등법원 제공=연합뉴스]

당사자 간에 분쟁이 생겼을 경우 결국 제3의 기관을 통할 수밖에 없다. 가장 흔한 방법이 바로 소송, 즉 ‘법원’에 가는 것이다. 이때 어느 법원에서 재판할 것인지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특히 거래 당사자의 활동 지역이 같은 경우 큰 문제가 없겠지만, 서울과 부산처럼 서로 멀리 떨어져 있으면 법정출석이나 변호사 선임 등이 불편할 수 있다.

이 경우 아무래도 가까운 법원에서 소송을 받는 것이 여러모로 편리하다. 낯설고 먼 지역에서 소송해야 하는 위험을 피하려면 아예 관할 법원을 계약서에 명시해 합의된 곳에서만 소송이 가능하도록 못 박아 두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지루한 소송의 정신적·경제적 고통 덜어주는 중재제도
다만 소송은 3심제로 이뤄져 있어 설사 1심 판결이 선고되더라도 패소한 쪽에서 불복하는 경우 2심으로 갈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해 또다시 누군가 불복하면 3심까지 가야 재판이 끝나게 된다. 이런 경우 이기더라도 그간의 소송과정에서 입는 정신적, 경제적 고통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그래서 최근에는 한 번에 해결 가능한 중재제도를 활용하는 경우도 있으니 중재제도에 대해 미리 알아두는 것도 도움이 된다.

지금까지 계약서 작성 시 유의해야 할 사항에 대해 간단히 알아봤다. ‘잘 작성된 계약서 한장이 백 마디 약속보다 낫다’는 마음으로 계약서 작성에 신중을 기한다면 두 번째 인생의 성공 가능성도 그만큼 높아질 것이다.

큐렉스 법률사무소 정세형 변호사 jungsehyu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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