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일+] 지구는 플라스틱으로 몸살 앓는데, 명품은 왜 플라스틱을 멋지게 여길까?

김은영 기자 2018. 4. 22.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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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스틱 패션 시대… 재미 찾는 명품 VS 의미 찾는 패스트 패션

매년 800만 톤의 플라스틱 쓰레기가 바다로 흘러간다./그린피스 제공

매년 800만 톤의 플라스틱 쓰레기가 바다로 흘러간다. 이런 속도라면 2050년이면 바다에 물고기보다 플라스틱이 더 많아질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최근 스페인 해변에서 죽은 채 발견된 향고래 한 마리를 부검한 결과 비닐봉지 등 플라스틱 폐기물 29kg이 발견돼 충격을 안겼다. 한국에서도 폐비닐 수거 대란으로 플라스틱 사용을 줄여야 한다는 논의가 일고 있다. 22일 열리는 지구의 날 구호도 ‘플라스틱 오염을 끝내자’다.

◇ 명품이 된 플라스틱, 신선하면 그만?

플라스틱에 대한 위기감이 커지는 가운데, 패션계는 플라스틱 소재가 유례 없는 호황을 누리고 있다. 샤넬, 셀린, 발렌시아가 등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명품들이 플라스틱 제품을 전면에 내세웠다. 샤넬의 봄/여름 패션쇼에는 투명하게 빛나는 PVC(폴리염화비닐) 의류와 액세서리가 대거 등장했고, 셀린은 식료품 가게에서 볼 법한 투명한 PVC 가방을 가죽 지갑과 세트로 묶어 팔아 히트를 했다. 발렌시아가는 공업용 비닐로 사용되는 PVC를 활용해 형형색색의 셔츠를 내놨는데, 100만원에 달하는 높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불티나게 팔려나갔다고 한다.

올봄 패션계는 플라스틱 소재가 인기를 끌고 있다. 폴리염화비닐 소재의 제품을 선보인 샤넬(왼쪽)과 셀린/각 브랜드 제공

일상의 소재를 활용해 실험정신을 발휘하는 것이 ‘쿨’한 태도로 받아들여지는 지금, 명품이 플라스틱에 관심을 쏟는 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딘가 불편한 마음이 가시지 않는다. 이들에 의해 플라스틱이 ‘신선한 미학’으로 묘사되고 있기 때문이다.

플라스틱이 무엇인가. 싸고 편리하고 가벼워 어디든 쓰이지만, 썩지 않는 불멸의 소재. 더욱이 올봄 명품들이 ‘투명한 패션’을 구현하기 위해 즐겨 쓴 PVC는 석유계 합성물질 가운데도 처리가 어려운 소재로 알려진다. 온 세계가 플라스틱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명품의 플라스틱 패션은 ‘신선하다’라는 찬사만으로 끝내긴 어려워 보인다. 물론 플라스틱 제품을 잘 쓸고 닦아 대대손손 물려 쓴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불행히도 플라스틱의 반짝임과 투명함은 오래가지 않는다.

◇ 플라스틱 쓰레기로 옷 만드는 패스트 패션

패션계가 모두 플라스틱의 환상에 빠진 건 아니다. 스웨덴 패스트 패션 브랜드 H&M은 페트병과 재활용 폴리에스터 등을 재생해 매년 지속가능한 컬렉션을 선보인다. 작년엔 약 1억 병의 페트병을 재활용해 의류로 만들었다. 재활용 소재로 만들었다고 해서 디자인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프린트와 자수 등 섬세한 기법을 동원해 고급 패션으로 만든다. 재활용 소재로 만들기 때문에 패스트 패션치고는 제법 값이 나가지만, 신상품이 출시되는 날이면 일부 제품이 완판될 만큼 인기가 높다. 값싼 일회용 제품으로 ‘쓰레기 유발자’란 오명을 쓴 패스트 패션이 플라스틱 재생으로 새로운 비즈니스를 창출한 것이다.

플라스틱 폐기물로 만든 의상을 입은 모델 크리스티 털링턴/H&M 제공

스포츠 의류 용품 브랜드 아디다스도 2016년부터 바다에서 수거한 플라스틱 폐기물로 제품을 출시하고 있다. 해양 환경 보호단체 ‘팔리 포 더 오션(Parley for the Oceans)`과 함께 플라스틱 쓰레기로 ‘오션 플라스틱’이란 소재를 개발해, 러닝화와 축구 유니폼, 수영복 등을 만든다. 2016년에는 축구클럽 레알 마드리드의 유니폼을 선보이기도 했다. 이 밖에도 리바이스, 파타고니아, 노스페이스, 나우 등이 플라스틱 재생 소재로 패션 제품을 만든다.

지속가능성은 패션계의 가장 큰 트렌드다. 영국 시장조사기관 민텔에 따르면 젊은 밀레니엄 세대(17~26세) 중 44%가 환경친화적인 원단으로 만든 옷을 원한다.

지난해 온라인 명품 유통 회사 육스 네타포르테 그룹은 동물 모피 판매를 중단했다. 고객 2만5천 명 중 절반 이상이 ‘모피 판매 중단을 원한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페데리코 마르케티 CEO는 “모피는 우리 비즈니스에서 꽤 중요한 부분이었지만 고객의 요청에 따라 희생을 감수하기로 했다”라고 말했다. 같은 이유로 아르마니, 구찌, 베르사체 등 명품 업체도 모피 사용을 중단했다. 소비자가 원하면 콧대 높은 명품도 태세를 전환한다. 재미를 찾을 것인가, 의미를 찾을 것인가. 플라스틱 패션의 미래는 당신에게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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