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 미·중 통상전쟁, '미래 먹거리' 5G 기술 두고 제2라운드

조진형 입력 2018. 4. 22. 02:37 수정 2018. 4. 22.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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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정상회담을 가졌던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오른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로이터=뉴스1]

지난 1월 백악관에서 ‘산업 기밀’이 담긴 쪽지가 유출됐다. ‘중국의 안보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5G(5세대 통신) 통신망을 국유화시켜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시장경제의 본국을 자처하는 미국의 컨트롤 타워에서 '산업 국유화'가 거론됐다는 것은 그 자체가 충격적이었다.
당시 상·하원 의원들은 “정부는 민간 부문을 건드려선 안된다” “미국은 (사회주의 경제인) 베네수엘라와 다르다”며 ‘쪽지 내용’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약 3개월 뒤, '5G 지키기 총력전'은 현실이 됐다.
서로 수백억 달러의 ‘관세폭탄’을 쏘아올리면서도 타협 여지를 남겨뒀던 미·중 통상전쟁의 불길이 전격적으로 '5G 기술'로 옮겨붙은 것이다. 미국이 5G 기술과 관련된 중국 기업들에 대해 본격 제재에 착수하고 나서면서다.
5G는 4차 산업혁명의 필수 기반 기술이란 점에서 '첨단 산업의 심장'으로 불린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집권 2기의 역점 전략인 '중국제조 2025'의 핵심 산업이기도 하다. 미래의 먹거리를 두고 미국과 중국, 두 최강대국의 제2라운드가 벌어지는 것이다.

5G의 처리 용량은 기존 4G 기술의 무려 100배에 달한다. 4G가 1차선 도로라면 5G는 100차선 도로인 셈이다. 자율주행차 운행, 인공지능(AI) 활용은 물론, 촌각을 다투는 원격 수술도 5G 기술로 가능하다. 5G가 ‘4차 산업혁명 신경망’으로 불리는 이유다.

자율주행차의 주요 기능을 표시한 그래픽. [로이터=연합뉴스]

◇미국, 중국 최대 통신업체에 7년 거래 금지

지난 16일(현지시간) 미 상무부는 중국 2위, 세계 4위 통신장비업체인 ZTE(중흥통신)에 ‘미국 기업과 향후 7년간 거래 금지’라는 초강력 제재를 가했다. 이 제재로 ZTE는 홍콩 증시에 상장한 주식 거래까지 중단되는 초유의 사태를 맞았다.

사연은 이렇다. ZTE는 지난해 3월 대(對)이란 수출 금지령 위반 혐의가 적발돼 미 당국에 벌금 11억9000만 달러(1조2700억원)를 내기로 한 바 있다. 그런데 미 정부는 ZTE가 ‘제재 위반에 가담한 임직원을 징계하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단 이유만으로 '7년간 거래 금지'라는 강력한 추가 조치를 취한 것이다.

로이터통신은 “ZTE가 앞으로 자사 모바일기기에 알파벳 모바일 운용체계(OS)인 안드로이드를 사용하지 못할 수도 있다”고 언급했다.

설상가상으로 같은날 미 연방통신위원회(FCC) 역시 ZTE를 비롯한 해외기업 통신 장비 구매 제한 법안을 가결했다. 미국 시장 확장을 노리던 ZTE는 손발이 꽁꽁 묶인 신세가 됐다.

일련의 조치를 중국이 얼마나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는지는 중국의 대응에서 알수 있다.
다음날 중국 정부는 미국산 수수에 무려 178.6%의 반덤핑 관세 보복 조치를 취하는 강력 조치를 내렸다.
이와 관련해 중국국제금융공사(CICC)는 “ZTE가 미국의 제재를 1~2개월 내에 해결하지 못하면 통신설비나 휴대폰의 생산·판매에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중국 난징에 위치한 통신기업 ZTE 건물 풍경. [로이터=연합뉴스]

미국이 5G 기술과 관련된 중국계 기업을 상대로 제재 조치를 취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달 트럼프 정부는 중국 1위 통신장비업체인 화웨이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싱가포르 반도체 기업 브로드컴이 미국 퀄컴을 인수하려는 시도에 제동을 걸었다. 앞서 1월엔 미국 통신사인 AT&T와 손 잡고 최신 스마트폰을 미국에 판매하려던 화웨이의 계획이 미 당국의 규제에 가로막혀 수포로 돌아갔다.
또 트럼프 정부가 관세폭탄을 투하하기로 한 1333개 중국산 수입품목엔 5G 관련 제품이 무더기로 포함돼있다.

◇“미국, 중국에 ‘5G 기술’ 뒤처져”

미국이 이처럼 5G 기술 지키기에 필사적인 것은 향후 글로벌 경쟁에서 우위를 계속 유지하려는 국가전략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5G 기술 확보를 향한 중국의 독주를 미국 국가이익에 대한 심각한 위협으로 간주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미국은 ‘5G 준비태세’에 있어서 중국에 뒤처진 상태다. 최근 미국 이동통신산업협회(CTIA)가 ‘5G를 가장 준비한 국가’ 10개국을 선정한 결과 1위는 중국이었다. 미국은 한국(2위)에 이어 3위에 그쳤다. CTIA는 “중국이 정부의 전폭적 지원과 이동통신 산업의 동력을 바탕으로 근소한 리드를 지키고 있다”고 설명했다.

사이버 보안 역시 미국에 예민한 이슈다. 미 국토안보부의 수석 정보 관료 출신인 리차드 스타로폴리는 “중국 당국의 검열 정책이 미국산(産) 첨단 통신 기술과 결합된다면 (각 나라의) 표현의 자유는 더욱 침해될 수 있다”며 “미국 입장에선 이를 안보 위협으로 간주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중국은 차세대 산업 전략이 상당한 타격을 입은 것은 물론 자존심까지 크게 상한 상태다. “(5G를 비롯한) 핵심 산업 기술의 자급자족을 반드시 달성하겠다”고 공언한 상황에서 이 기술의 핵심 부품 수입을 미국에 의존해온 취약한 산업 구조가 세계에 노출됐기 때문이다.
중국 경제매체인 제일재경은 “ZTE는 반도체·광학 부품 등 약 30%의 핵심 부품을 미국에서 수입해왔다. 중국산 부품이 국제 수준에 비해 한참 뒤처져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중국의 지난해 반도체 칩 수입액은 2601억 달러(278조 원)이며, 이중 퀄컴 등 미국 기업 13개사의 비중이 약 4분의 1(667억 달러)에 달한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트럼프 정부의 대중(對中) 압박이 오히려 중국의 기술 발전을 촉진시킬 것이란 전망을 제시하고 있다. 최근 환구시보는 사설을 통해 “중국이 미국산 칩에 기대어 잘 될 것이란 환상을 버려야 한다. 중국은 과학기술을 공략할 능력을 갖고 있다”며 “중국이 자력으로 기술 돌파에 매진한다면 핵심 부품의 국산화가 가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중국중앙방송(CC-TV)에 따르면 시 주석도 최근 “핵심기술을 제약받는 게 최대 걱정거리이며 동냥에 의존해서는 구할 수 없다”고 말하며 핵심기술 자체 개발의 중요성을 부쩍 강조하고 있다.

조진형 기자 enish@joongang.co.kr

☞‘중국제조 2025’= 중국 정부가 2015년 3월 발표한 산업 전략. 반도체·전기차·로봇 등 10대 핵심 산업에서 글로벌 기업을 키워내 하이테크(Hi-tech) 국가로 전환하겠다는 목표를 담았다. 특히 핵심 기술 및 부품·소재를 2020년까지 40%, 2025년까지 70% 자급하겠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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