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 불통 리더십이 부른 역설 "정책 좋지만, 마크롱 싫다"
"바보야, 문제는 개혁이 아니라 개혁방식···프랑스 국민 73% "마크롱이 권위적"
'21세기 나폴레옹'으로 불리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개혁과 민심,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을까.
르몽드는 최근 "마크롱주의는 신(新) 보나파르트주의(나폴레옹식 독재정치)"라고 보도했다. 이 같은 세간의 평가는 마크롱 집권 이후 해외 자본의 투자 증가, 실업률 하락, 기업의 인수합병(M&A)규모 증가 등 경제지표가 호전되고 있는 상황에서 나온 것이어서 주목된다.
지난 18일(현지시간) 프랑스여론연구소(Ifop)와 피뒤시알이 유권자 1201명을 대상으로 나흘간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응답자의 58%는 마크롱에게 "불만족"이라고 답변했으며 그 중 24%는 "매우 불만족"이라고 답변했다. 이에 반해 "만족"은 38%, 그 중 "매우 만족"은 4%에 그쳤다. 지난해 5월 당선 당시 66%였던 지지율이 1년이 채 지나지 않아 40%선 아래로 주저앉은 것이다.
특히 가장 큰 갈등을 빚고 있는 프랑스국유철도(SNCF) 개혁에 있어서도 국민들은 마크롱의 손을 들어줬다. 이달 초 1006명의 유권자를 대상으로 한 설문결과에 따르면 유권자의 62%는 'SNCF개혁을 예정대로 진행해야 한다'는 답변을 내놨으며 오히려 'SNCF파업이 정당하지 않다'는 답변이 56%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마크롱의 개혁 방향에 대해서는 대체적으로 지지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개혁의 방식'이었다. 설문에 따르면 "(마크롱의) 통치스타일이 권위적"이라는 답변이 73%에 달해 부정적 응답을 이끌었다. "일은 잘하지만 국정운영이 일방통행식이다" 는 의미로 분석된다.
68혁명 떠올리는 프랑스 대학생들...마크롱은 강경진압
프랑스 대학생들은 최근 1968년 샤를 드골 정부의 사회모순과 실정을 비판하여 발생한 '68혁명'을 떠올리고 있다. 마크롱이 최근 고등 교육 개혁안인 비달법(La Loi Vidal)에 반대해 시위를 하는 파리10대학(낭테르대) 학생들을 강제 해산시킨 것을 두고서다.
낭테르대가 지난 68혁명의 도화선이 된 장소이고 이로 인해 샤를 드골 대통령이 물러난 것을 프랑스 사회가 생생히 기억하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이 같은 강경진압은 많은 이들에게 충격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프랑스 사회 전반에 걸쳐 '능력주의(meritocracy)'를 부활시키고자 하는 마크롱은 입시전형을 다양화하고 학생 선발의 자율권을 부여하는 등 입시에 관한 권한을 대학으로 이양하고자 한다.
대학생들은 이러한 대입제도 개편이 엘리트주의와 자본친화적인 교육을 도입하는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파리, 툴루즈, 몽펠리에 대학가를 중심으로 한 진보 성향의 학생들은 3월부터 비달법에 따른 대학 입시제도 개편안 철회를 주장하는 집회를 이어가고 있다.
"국회의원 수 1/3 줄이고 법안 수정도 제한"...마크롱, 대의기관 패싱 논란
하지만 대의 기관인 국회의 권한을 축소함으로써 민주주의를 약화시킨다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제1야당인 공화당의 하원 원내대표 크리스티앙 자콥 의원은 지난 달 "마크롱에게 이상적인 세계는 의회가 없는 곳"이라며 "의회를 공개적으로 무시하는 대통령이 이제는 의회 없이 소수의 테크노크라트(전문관료)의 힘으로만 통치하려 한다"고 비난했다.
마크롱이 국회의 동의가 여의치 않으면 '법률명령'을 사용하는 것도 정치권의 도마위에 올라있다. 법률명령은 의회의 정규심의를 거치는 법률 제·개정과 달리 대통령의 위임입법 형식으로 마련돼 공포와 동시에 효력이 발생하며 의회의 사후승인만 거치면 법률과 동일한 지위를 가지게 된다. 마크롱은 작년 노동시장 유연화를 골자로 한 노동법 개정을 이러한 방식으로 관철시킨 바 있다. 또 임직원의 복지혜택 축소를 핵심으로 하는 SNCF 개혁도 이와 같은 방식으로 추진하겠다고 선언해 의회의 반발을 사고 있다.
'주피터' 혹은 '보나파르트'...마크롱에게 따라붙는 꼬리표
마크롱이 의회와 절차를 무시하면서 개혁을 추진해가고 있지만 결과가 나쁘지는 않다. 특히 경제분야에서 그렇다.
이 외에 재정적자도 10년 만에 처음으로 국내총생산(GDP)대비 3% 아래로 하락해 2.6%를 기록했으며 외국자본의 프랑스에 대한 투자도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실적에 힘입어 작년 4분기 실업률은 전 분기보다 0.7%p 하락한 8.9%로 2009년 이후 분기별 기준으로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크롱에게는 '주피터(제우스)', '보나파르트'라는 별명이 여전히 붙어 있다. 마크롱이 나폴레옹처럼 젊은 나이에 지도자의 자리에 올랐기 때문만은 아니다. 자신의 정책을 밀어붙이는 일방통행식 리더십 때문이다.
마크롱은 최근 SNCF 개혁에 대한 반발에 대해 "여론의 변화에도 일희일비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프랑스 사회는 전통적으로 성과 못지 않게 절차적 정당성을 중요시하고, 이런 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깊다. 절차를 무시하는 권위주의적 리더십에 대한 저항이 거세지면 개혁 정책도 길을 잃게 된다.
요즘 프랑스에선 "대통령이 국민과 정치의 매개체인 의회의 역할을 해치면서까지 엘리제궁에 권력을 집중시키고 있다"(일간 르몽드)는 비판이 확산되고 있다.
패기 넘치는 마크롱이 새로운 도전에 직면한 셈이다.
허정원 기자 heo.jeong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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