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300억 들인 돈의박물관마을, '유령 마을'된 사연

송진식 기자 입력 2018.04.21.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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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오랜만에 미세먼지 걱정 없이 맑은 봄바람을 느낄 수 있었던 4월 18일. 평일임에도 도심 명소라면 방문객의 발걸음이 제법 있을 법한 날이었지만 서울 종로구 송월길에 있는 ‘돈의문 박물관 마을’은 예외였다. 돈의문 박물관 마을은 서울시가 ‘서울 4대문 안 동네의 정취에 창조적 감각을 더해 조성한, 마을 자체가 박물관인 마을’이다. 이곳에선 2017년 9월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가 열리며 한때 방문객들로 북적였던 곳이지만 비엔날레가 끝난 후 찾는 사람들이 뜸해진 상태다.

이날도 마을 구경에 나선 방문객을 찾아보긴 어려웠다. 가끔 마을 골목길을 지름길 삼아 광화문이나 서울시교육청으로 가는 행인들만 한두 명씩 눈에 띄었다. 마을의 중앙광장은 오가는 이 없이 텅 비어 있었다. 당초 유스호스텔로 쓰려고 지었던 번듯한 여러 채의 마을 내 한옥들도 상당수가 굳게 자물쇠로 잠겨 있었다. 바로 건너편에 있는 강북삼성병원과 마을에 인접한 빌딩 건물들 주변에 사람들이 북적이는 것에 비하면 돈의문 박물관 마을은 사실상 ‘유령 마을’에 가까웠다. 서울시가 도심 명소로 야심차게 조성했던 이곳에 대체 무슨 일이 생긴 걸까.

인근 빌딩에서 내려다 본 돈의문 박물관 마을 전경. 한낮임에도 인적이 드물어 ‘유령 마을’ 같다. 우철훈 선임기자

■소유권 분쟁 탓에 ‘유령 마을’화

박물관 마을은 2014년 종로구 교남동 주변 일대에 돈의문 1구역 도시환경정비사업이 시작되면서 조성됐다. 사업조합 측은 구역에 새 아파트(현 경희궁자이)를 짓는 대신 9770㎡(약 2960평)의 현 박물관 마을 부지를 공원으로 기부채납키로 했다.

당초 공원이 되면서 사라질 뻔한 이 마을은 서울시가 도시재생사업을 통해 살리기로 결정되면서 박물관 마을로 재탄생하게 된다. 박물관 마을로 재조성하는 데는 이견이 없었다. 이 지역은 1800년대에 작성된 옛 지적도상의 좁은 골목길이 그대로 남아있고, 1920년대부터 조성된 한옥들도 남아있어 도심 개발로 사라져가는 서울의 옛 정취를 보존하기에 적합하다는 게 당시 시의 판단이었다.

도시재생계획에 따라 서울시는 개발계획을 변경해 해당 부지의 용도를 공원에서 문화시설로 바꾸고 본격적인 마을 조성공사에 착수한다. SH공사가 맡은 마을 조성공사에는 최근까지 280억원이 투입됐고, 향후 마을 내에 있는 경찰박물관이 이전하게 되면 추가로 40억원을 들여 공사를 마무리할 계획이다. 사업계획상 박물관 마을의 최종 준공 시점은 2019년 12월이다.

계획상으로는 내년 말에 준공 예정이지만 돈의문 박물관 마을의 주요 기반이 되는 건물 39개동의 공사는 이미 2017년 8월 22일부로 완료된 상태다. 완료된 건물에서는 같은 해 9월 도시건축비엔날레가 성황리에 열렸다. 경찰박물관은 마을 끝자락에 위치해 이전문제가 주요 시설 사용에 영향을 주는 것도 아니다. 박물관 마을을 본격적으로 활용해도 아무 문제가 없는 상태라는 뜻이다.

그럼에도 박물관 마을은 비엔날레가 끝난 후 대부분의 건물이 공실로 남아있다. 본래 계획대로라면 마을 내 건물들에는 음식점과 공방, 전시장, 숙박시설 등이 입점해야 하지만 6개월 넘게 마을이 비어 있는 셈이다. 최근 일부 공방이 들어오고 전시회가 열리긴 했다. 그러나 마을 활성화에는 크게 못미치는 수준이다.

애써 조성된 돈의문 박물관 마을이 ‘유령 마을’이 된 이유는 마을의 ‘소유권’을 놓고 서울시와 종로구가 다툼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종로구는 마을 부지에 대한 소유권과 조성된 건물의 운영권에 대한 일부 권한 소유를 주장하고 있다. 반면 서울시는 마을 부지는 물론 건물의 소유와 운영권까지 모두 시에 귀속돼야 한다며 맞서고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마을 건물을 활용하려면 임대를 줘야 하는데 토지와 건물 소유 문제가 명확지 않다보니 임대계약을 체결하는 등에 문제가 있어 아직 비어 있는 곳이 많다”고 밝혔다.

박물관 마을 내 한옥이 자물쇠로 잠긴 모습.

■지방선거 앞두고 갈등 고조

돈의문 박물관 마을은 일단 2018년 10월까지만 임시사용 승인이 난 상태다. 종로구청에 따르면 2016년 공시지가 기준 마을 부지의 가치는 736억원에 달한다. 인근 부동산에서는 공시지가가 시세의 70~80%임을 감안해 마을의 실제 땅값이 1000억원이 넘어갈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마을 조성에 투입된 비용과 건물가치까지 더하면 서울시와 종로구 모두 쉽게 포기하기 어려운 자산규모임이 틀림없다.

그렇다면 왜 소유권 분쟁이 생기게 됐을까. 양측의 소통 부족과 관련 법규의 모호함이 원인이다. 당초 종로구는 박물관 마을 조성을 위해 시가 정비계획을 변경할 때부터 토지 소유권이 구청에 있음을 주장했다. 종로구 관계자는 “원래 그 땅이 행정구역상 종로구 관할(종로구 송월길2)이므로 조합에서 기부채납을 할 때도 당연히 종로구로 하는 게 맞다고 누차 서울시에 전달했다”고 밝혔다.

서울시의 입장은 달랐다. 조성계획부터 인가변경, 마을 기반시설 공사까지 모두 서울시가 맡아 하는 사업인 만큼 토지와 건물 모두 서울시가 가져가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관련 법령에서도 기부채납에 따른 소유권 이전 문제의 경우 공원부지는 규정이 있지만 박물관 마을은 문화시설이라 규정을 적용하기가 모호했다. 양측이 의견을 달리하는 동안 서울시는 이 안건을 도시재정비위원회에 올렸고, 2016년 9월 열린 도시재정비위원회에서는 서울시의 손을 들어줬다.

이렇게 논란은 끝나는 듯 싶었지만 종로구도 그냥 물러서지 않았다. 마을의 주요 시설 조성이 거의 완료된 시점인 2017년 6월 30일 종로구는 관리처분계획 고시를 통해 마을 부지의 소유권을 종로구로 이관하겠다고 발표했다. 도시재정비 촉진을 위한 특별법상 박물관 마을 토지의 소유권 이전 인허가권 자체는 종로구가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종로구의 고시로 현 시점에서 서울시가 박물관 마을의 소유권을 주장하기는 어려운 상황이 됐다.

서울시는 종로구가 규정을 악용해 ‘억지’를 부린다는 입장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이미 상위법을 통해 도시재정비위에서 결정까지 내린 사안에 대해 종로구가 소유권을 주장하는 건 억지”라고 밝혔다. 반면 종로구 관계자는 “서울시가 당초 종로구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사업을 진행했다면 이런 일도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돈의문박물관마을의 중앙 광장 모습. 오가는 사람 없이 텅 비어있다.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어 양측의 대립은 한동안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양측 모두 “선거와는 관계가 없는 사안”이라고 선을 긋고는 있지만, 1000억원이 넘는 공공재산을 가져오고 빼앗기고의 차이는 크기 때문이다. 종로구 의회만 해도 “마을의 토지와 건물 소유권을 모두 가져와야 한다”며 강경한 입장을 내비치고 있다.

서울시와 종로구 모두 자체적으로 법률사무소를 통해 법정다툼으로 갈 경우 본인들이 더 유리하다는 판단을 받아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법정다툼으로 이 문제가 확대될 경우에도 문제가 쉽게 끝나지 않을 수 있다는 얘기다. 그리고 소유권 문제가 어떻게든 정리되지 않는 한 돈의문 박물관 마을의 정상운영은 어려울 전망이다.

흥미로운 점은 박원순 서울시장과 김영종 종로구청장 모두 이번 지방선거에서 ‘3선’에 도전 중이라는 점이다. 둘 다 여당 소속 지자체장이라는 점은 물론, 과거 박 시장이 희망제작소 상임이사로 재직할 당시부터 김 구청장과 박 시장이 가깝게 지내왔다는 점도 흥미로운 부분이다. 건축전문가인 김 구청장이 2012년 <건축쟁이 구청장하기>라는 책을 낼 때도 박 시장이 추천사를 써줬다. 이 때문에 양측 간 대립이 지방선거 전 협의를 통해 조정될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서울시의 또 다른 관계자는 “최근 박 시장이 김 구청장과 만나 이 문제에 대해 논의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양측 간 대립이 극단적으로 치닫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송진식 기자 truej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