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사주풀이하던 드루킹은 어떻게 '괴물'이 됐나

반기웅 기자 입력 2018.04.21. 14:48 수정 2018.04.25.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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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파워블로거이자 ‘경제적 공진화 모임’(경공모)의 관리자인 ‘드루킹’ 김모씨가 네이버 댓글 추천순위 조작 혐의로 구속됐다. 김씨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지자 김씨의 필명 ‘드루킹’은 포털 실시간 검색 순위를 오르내리며 화제에 올랐다. 일부 경공모 회원들은 이 같은 현상을 “김씨 덕에 우리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졌다”며 반기고 있다. 김씨가 유명세를 얻었을 뿐 아니라 이 일련의 과정이 김씨의 예언과 맞아떨어졌다는 것이다. 이들은 손가락질을 받으면서도 유명해지길 원하고 있다. 이유가 있다. ‘유명해진다는 것’이야말로 김씨와 회원들에게 가장 든든한 장사 밑천이기 때문이다. 2000년대 중반 온라인 커뮤니티 서프라이즈에서 애완견 이름을 따다 만든 필명 ‘뽀띠’로 활동하던 무명의 네티즌 김씨를 하나의 조직을 이끄는 ‘추장’으로 만들어준 건 다름 아닌 ‘유명세’였다.

■온라인 카페 개미로 시작

“온라인 카페에서 사람들 사주풀이나 해주던 개미(소액투자자)였어요.” 주식투자자 ㄱ씨가 기억하는 2008년 김씨의 모습이다. 당시 김씨는 네이버 부동산 카페 ‘아름다운 집 행복한 사람들’(아름사)에서 활발히 활동했다. 김씨는 ‘달러를 가장 싸게 구입할 수 있는 방법’이나 ‘외환 동향 차트’, ‘유가동향 차트’ 분석글을 올리고 사주풀이를 해주면서 회원들과 교류했다. 회원들을 상대로 주식 종목 상담을 해주기도 했다. 다만 상담과정에서 김씨는 자신이 매입한 주식 종목은 공개하지 않았다. ㄱ씨는 “드루킹이 추천하는 주식은 여러 종목 중에 얻어걸리는 게 몇 개 있었을 뿐이지 대부분 하락했다. 그때도 주식을 잘하지 못했고 차트도 볼 줄 몰랐다”고 말했다.

2008년 김씨의 주요 관심사는 주식과 부동산, 재테크였다. MB정부와 관련된 게시글이 올라오면 비판 댓글을 달기도 했지만 주요 관심사는 재테크에 머물렀다. 다만 틈틈이 올리는 개인 일상 글을 통해 자신의 사회적 위치나 정보력을 부풀려 묘사하기도 했다.

평범한 개인 회원에 불과했던 김씨가 파워블로거로 이름을 알리게 된 계기는 2008년 9월 리먼브라더스로 시작된 미국발 금융위기다. 당시 김씨는 부동산 폭락론을 주장해 왔는데,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부동산 경기가 하락했다. 김씨의 예측이 우연히 들어맞으면서 지지하는 회원도 생겨났다. 아름사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던 김씨는 카페 매니저와 자신의 의견에 반대하는 회원들과 갈등을 빚으면서 2009년 1월 자신이 직접 카페를 만들고 자리를 옮겼다. 그때 만든 카페가 ‘경제적 공진화 모임’(경공모)이다. 당시 김씨를 지지하던 아름사 회원 20여명도 김씨를 따라 경공모에 자리를 잡았다.

지지회원을 거느리게 된 김씨는 더욱 노골적으로 각종 경제전망을 내놨다. 당시 김씨는 “한국 경제가 망하게 됐다. 곧 달러 환율은 3000원을 넘어서게 된다”며 “달러를 사야 한다”고 주장했다. ㄱ씨는 “김씨의 말을 듣고 빚을 내서 달러를 사들였다가 1억3000만원 넘게 손해본 회원도 있었다”고 전했다. 달러 환율에 대한 전망은 물론 김씨가 내놓은 경제전망들은 속속 빗나갔다. 김씨의 엉터리 예측에 문제제기를 하는 회원들은 바로 강제탈퇴 처리됐다. 자신의 견해에 반대하는 내용을 담은 댓글은 바로 삭제했다. 당시 김씨의 블로그를 자주 찾았던 한 주식투자자는 2009년 9월 한 커뮤니티 게시판에 “드루킹 블로그에 있는 댓글이 칭찬 일색이며 틀린 예상에 대한 의문이나 반대의견 글을 찾기 힘든 이유를 알았다”며 “드루킹 의견에 의문을 제기하며 남긴 댓글은 지워졌고 내 아이디는 글쓰기가 금지됐다”는 글을 남겼다. 김씨가 운영하는 블로그와 카페에 온통 김씨 옹호 글만 남아있는 이유라고 볼 수 있다.

김씨는 2010년 자신의 블로그와 카페에 쓴 게시글을 모아 <드루킹의 차트혁명>이란 책을 발간한다. 책에서 김씨는 자신을 차티스트(chartist)로 지칭, 주식시장을 분석하는 각종 차트의 패턴과 기법을 늘어놓았다. 김씨는 차트가 ‘시공’(時空)으로 이뤄져 있다며 차트 분석과 예측을 위해 일반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을 도입해야 한다는 다소 황당한 견해를 내놓기도 했다. 이 책을 사본 독자들은 리뷰를 통해 ‘(책 내용이) 개그다. 점괘 책자로 차트를 분석하는 것 같다’ ‘책을 읽고 속아 펀드를 해지했다. 깡통계좌를 보고 있자니 드루킹의 면상을 갈겨주고 싶다’는 등 혹평을 남겼다. 전문가들도 김씨의 차트 분석론에 대해 회의적인 견해를 보이고 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부(경제ㆍ기업 전담) 판사를 역임한 윤경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는 “드루킹과 같은 자칭 주식 전문가들의 차트 분석은 일확천금을 꿈꾸는 순진한 사람들을 현혹하는 새빨간 거짓말”이라며 “차트를 보여주고 시각적인 효과로 사람들을 기망하는 행위”라고 말했다.

‘드루킹’이 자신의 SNS에 사용한 이미지.

■문제 제기하는 회원들은 강퇴시켜

김씨는 책을 통해 현 경제 상황에 대한 진단을 비롯해 각종 전망도 내놨다. 김씨는 ‘5년에서 10년 사이 북한에 증권거래소가 생긴다’며 ‘우리 자본이 북한에서 내국인의 지위를 획득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북한의 민영화된 기업의 주식을 싸게 쓸어 담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남북 간 경제적 교류로 경기도 파주시(교하ㆍ운정) 일대가 물류의 중심지가 되면서 수도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김씨가 10년 동안 대한민국의 새로운 수도로 꼽고 있는 파주시는 김씨의 거주지이기도 하다. 아울러 김씨는 책의 마지막 장에서 2010년 말 미국 시장이 다우지수 3000대에 도달하고 코스피는 400 이하로 떨어진다고 전망했지만 김씨의 예측은 맞지 않았다. 부동산은 붕괴되고 또 다른 금융위기가 재발한다고 내다봤지만 이 역시 현실에선 이뤄지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온라인과 책을 통해 김씨가 내놓은 경제전망들은 대부분 빗나갔다. 문제를 제기하는 블로그 이웃이나 카페 회원들은 여지없이 글을 차단하고 강퇴시켰다. 예측 실패가 거듭되자 김씨는 수치를 내세운 경제전망을 줄이고 국내 경제구조적인 문제를 직접 바꿔야겠다며 공동체를 통한 경제혁명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2011년부터는 개인 블로그에 자신이 운영하는 경공모 카페를 소개하고 적극적으로 회원 모집 활동을 벌였다. 김씨는 재벌 위주의 경제구조가 문제라며 공동체를 통해 ‘재벌개혁’을 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동안 온라인 상에서 이뤄졌던 경공모 활동도 2012년부터는 오프라인으로 넓혔다. 중국 도교의 점술인 ‘자미두수’ 강의를 비롯한 회원들 간 정기모임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시점이다.

김씨가 회원을 끌어모으는 데는 사주풀이를 비롯한 ‘역학’이 큰 역할을 했다. 특히 <송하비결>과 같은 ‘예언서’는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소재였다. <송하비결>은 지난 2003년 출간된 요결 형식의 예언서로 출간 이후 시기의 예측은 모두 맞지 않아 예언서로서 수명이 다했다는 평가를 받는 책이다. 하지만 김씨는 다시 <송하비결>을 꺼내 최근의 정세에 맞춰 재해석본을 내놓기 시작했다. 2003년 <송하비결>을 해석해 펴낸 황병덕 전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드루킹이라는 사람이 <송하비결>을 통해서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는 건 불가능하다”며 “요즘 시대에 맞춰 대충 짜맞춰 넣은 건데 그걸로 모사를 꾸미려다 보니 문제가 생긴 것”이라고 말했다.

‘드루킹’ 김모씨는 활동본거지인 경기도 파주시에 ‘두루미 타운’이라는 공동체 마을 건립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 정용인 기자

■송하비결 재해석본으로 이목 끌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송하비결>을 토대로 쓴 김씨의 ‘예언’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은 계속 늘어났다. 김씨는 회원들이 다 함께 부자가 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며 새로운 ‘묘안’을 소개했다. 김씨가 주장하는 부자가 되는 방법은 단순하다. 재벌의 핵심 기업 주식을 ‘공동체’ 이름으로 사들여 회원 모두가 기업의 주인이 되자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김씨는 기존 시민사회단체에서 벌이고 있던 소액주주운동 개념을 그대로 본떠 경공모 회원 모집 활동에 이용했다. 김씨가 주식을 지정하면 회원들이 매입해 의결권을 경공모에 넘겨주는 방식이다. 김씨는 블로그에서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이 삼성전자의 지분 3.38%를 소유하고도 기업에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다”며 “우리도 3.38%의 지분만 소유하면 오너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경공모라는 ‘공동체’가 한 사람의 ‘인간’이 돼서 기업의 오너가 되면 공동체가 오너이자 노동자가 된다며 노동조합이 필요없는 이상적인 기업을 꾸릴 수 있다고도 말했다. 김씨는 이 같은 활동을 ‘재벌개혁’이자 ‘경제혁명’, ‘자본주의 4.0’이라고 명명했다. 김씨의 발상에 대해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재벌의 핵심기업은 3%의 지분을 확보하기 어려울뿐더러 사봤자 영향력을 갖지 못한다”며 “재벌 소유지배구조에 대해서 신문기사도 열심히 읽지 않은 무지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한국의 엘리엇’이 돼서 대기업을 손에 넣겠다던 김씨의 계획은 이번에도 공수표에 그쳤다. 당초 김씨는 재벌개혁 시기를 2014년으로 정했지만 실제 활동은 이뤄지지 않았다. 김경률 참여연대 집행위원장은 “경공모나 드루킹 관련 소액주주운동을 했던 단체나 개인도 없고, 시장에서 그런 움직임을 보인 사례도 없다”고 말했다. 김씨 주도의 소액주주운동은 지지부진했고 계획이 지연될 때마다 김씨는 공동체의 ‘결속력’을 강조했으며, 관심사를 정치분야로 선회시켰다. 경공모에서 활동했던 회원은 “드루킹이 경제 쪽에서 계속 실패하자 정치 쪽으로 진로를 바꾼 것”이라고 설명했다. 회원이 늘어날수록 조직은 더 폐쇄적으로 변했다. 조직 운영은 철저한 등급제로 이뤄졌고 사람마다 등급이 매겨졌다. 종교적인 색채도 더 짙어졌다. 언젠가부터 회원들은 기도문을 공유하고 6자 대명왕 진언이라는 ‘옴마니 파드메훔’이라는 주문을 외웠다. 김씨의 공동체에 대한 집착은 ‘두루미타운’이라는 이름의 공동체 마을 건립계획으로 이어졌다. 자신이 살고 있는 파주에 150세대 규모의 주택을 짓고 주거와 교육, 생활이 무료인 이른바 ‘유토피아’를 세우겠다는 것이다. 김씨는 2011년 자신의 블로그에 “두루미타운의 입지와 풍수는 내가 정했다”며 “2년 뒤에 이런 계획을 성공시킬 재원을 만드는 프로젝트가 시행될 것”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두루미타운 운영에 소요되는 비용을 기업과 기업 소유의 재단을 활용해 충당하겠다는 게 김씨의 구상이었다.

제2의 금융위기로 미국의 금융시스템이 무너진다던 김씨의 예측은 빗나갔다. 소액주주운동을 통해 대기업을 손에 넣는다는 ‘경제혁명’도 이뤄지지 않았다. 자금 모집 단계에서 난항을 겪은 두루미타운 역시 성공하기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경공모에서 활동했던 한 회원은 “지금 생각해보면 김씨의 얘기는 정말 황당무계한 게 많았다”며 “차라리 허경영씨 얘기가 더 현실적이 않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반기웅 기자 ban@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