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페미 싫은 남학생님들, 밤길 무서워 봤나요?"

2018. 4. 21.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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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커버스토리
페미니스트 남교사 최승범

[한겨레]

“저와 함께 공부하는 남학생들이 직접 경험하기 어려운 삶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해 인간과 세계를 이해하는 안목이 넓어지기를 원합니다. 제가 수업에 페미니즘 이슈를 종종 녹여내는 이유는 단지 이것뿐입니다.” 강릉 명륜고에서 국어를 가르치는 최승범 교사는 일상에서 만나는 학생들과 선생님들에게 ‘슬그머니’ 페미니즘을 권한다. 그가 입은 티셔츠엔 ‘페미니즘이 민주주의를 완성한다’(Feminism Perfects Democracy)는 구호가 쓰여있다. 강릉/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남자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며 학생들에게, 또 주변 남자들에게 페미니즘을 전도하는 남자가 있다. 많은 남자들이 격렬하게 거부하는 페미니즘을 그는 왜 그토록 지지하는 것일까.

강릉 사람들도 강릉을 보수적인 도시라 한다. 강릉역에서 700m 떨어진 곳에는 고려시대인 1313년부터 향교가 자리잡고 있다. 유교적 윤리 규범을 가르쳤던 향교 옆으로, 남자고등학교인 명륜고가 보인다. 일요일이었던 지난 15일 오후, 향교와 명륜고가 자리한 교동에 도착했다. 작은 ‘노란 리본’이 붙은 현관문 벨을 누르자 키 188㎝의 건장한 체격을 지닌 남자가 나왔다. 명륜고 국어교사이자 강릉에서 나고 자란 ‘강릉 최씨’ 최승범(34)이다. 그가 입은 검은색 티셔츠에는 ‘페미니즘이 민주주의를 완성한다’(Feminism Perfects Democracy)는 구호가 선명하게 쓰여 있다.

최 교사는 얼마 전, 남성들에게 페미니즘을 권하는 책 <저는 남자고, 페미니스트입니다>를 썼다. 페미니즘을 접하게 된 과정과 페미니즘으로 변화한 삶 그리고 ‘남성 호르몬이 폭발할 것 같은’ 학생들과 함께 한 수업 내용 등을 담았다. 그에게 페미니즘은 ‘여성만큼이나 남성도 숨통 트이는’ 학문이자 운동이다.

“페미니즘은 현실을 객관화하는 도구다. 부조리를 인식하게 유도하고 불합리를 바로잡을 수 있는 용기를 준다. 인내와 희생 없이, 양보와 포기 없이 누리는 삶을 꿈꾸게 한다. 우는 남자, 말 많은 남자, 힘없는 남자도 괜찮다고 토닥인다. 군대 가라 떠밀고, 데이트 비용과 집 장만에 부담을 주고, 아담한 키와 작은 성기에 주눅들게 하는 주체가 ‘김치녀’가 아니라 ‘가부장제’라는 걸 알게 된다. 그 사실을 이해하고 나면 남성의 삶도 자유로워진다.”(52쪽)

중학생 땐 외환위기를 목격했고 2002년 고등학생 땐 ‘대한민국~’을 외쳤다는 남자. 대체 어떤 삶을 살아왔기에 이렇게 확신에 찬 목소리로 다른 남자들에게 “함께 페미니스트가 되자”고 하는 걸까.

페미니즘 토양은 어머니의 삶
연년생 두 아들 낳아 양육하고
아버지처럼 돈 벌고 집안일까지
중학교 시절 ‘틱’ 증상 나타나자
“엄마 사랑 부족해서” 손가락질 어릴 때부터 따지는 걸 좋아하고
권위 내세우는 아버지에 거부감
대학시절 ‘형수님’ 호칭에 정색한
무서운 선배로부터 ‘인생책’ 받아
20년간 품은 생각 무너지는 경험

지난 3월 최승범 선생님은 학교에서 “쌤 책 언제 나와요?” “쌤 저희도 페미니스트 되려고요”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런 학생들에게 나눠 준 핀버튼 배지.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여성위원회가 3월8일 세계여성의 날을 맞이해 제작한 배지들이다. 최승범 제공

‘인생 책’ 선물한 무서운 누나

최 교사의 집으로 들어서자 갓난아기 울음소리가 들렸다. 이날 오전 산후조리원에서 지내던 아내 김혜영(29) 교사와 딸 최김가람이 집으로 돌아왔다. 최 교사는 16일부터 일주일 동안 출산휴가를 냈다. 거실 벽쪽으로 크고 작은 책장이 놓여 있었다. <아내 가뭄> <그것은 썸도 데이트도 섹스도 아니다> <젠더트러블>…. 책장 한켠에 유독 눈에 띄는 제목의 책들이 모여 있었다. 최 교사가 ‘말싸움에서 밀리지 않으려’ 공부해온 페미니즘 책이다. <페미니즘의 도전>은 두 권이나 있었다. 표지는 달랐지만, 여성학·평화학 연구자 정희진이 쓴 같은 책이다. “흰색은 2005년 초판, 핑크색은 2013년 개정증보판이에요.”

<페미니즘의 도전>이 세상에 나온 2005년, 최 교사는 국어국문학과 철학을 공부하는 대학생이었다. 평소 좋아하던 선배 둘이 연애를 시작했다. 여자 선배에게 장난삼아 ‘형수님’이라 불렀다. 선배는 정색했다. “나는 남자친구를 통해 널 만나지 않았어. 남자의 무엇으로 불리기도 싫고. 그렇게 부르지 말아줘.” 워낙 무서운 누나인데다 듣고 보니 맞는 말 같아 곧바로 사과했다. 선배는 <페미니즘의 도전>을 선물하며 ‘말과 성차별’ 부분을 꼭 읽어보라 했다. 그동안 지녀온 생각들을 하나둘 붕괴시킨 ‘인생 책’이다.

―거실에 있는 책들을 보니, 공교육에서 흔치 않은 ‘문제적’ 선생님이실 것 같은데…. 교사를 직업으로 선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초등학교 고학년 때 투렛증후군(의식하지 못한 채 소리를 지르거나 행동을 하는 신경의학적 상태)이 발병했어요. 중학교 다니는 내내 ‘틱’(경련)이 굉장히 심했고요. 수업 시간에 얼굴을 찡그리고, 소리를 내는데 스스로 제어가 안 되니까 너무 괴로운 거예요. 애들로부터 놀림 받고 따돌림 당하다보니, 매일 아침 토할 정도로 학교에 가기 싫었어요. 부모님과 선생님은 ‘틱’을 그저 나쁜 버릇이라고 여겨 다그치거나 혼내기만 하셨고요. 그러다 중학교 3학년 때 좋은 담임 선생님을 만나게 됐어요. 그분 아들도 ‘틱’이 있었거든요. 부모님뿐 아니라 한 살 아래 남동생까지 학교로 불러 상담해주시고, 제가 교실에 없을 때 다른 학생들에게 놀리지 말라고도 당부해 주셨어요. 고등학교 들어갈 무렵 거의 다 낫게 됐어요. 중학교에서 따돌림 당하던 제가 고등학교에선 학생회장도 했죠. ‘우와, 교사 한 명이 사람 인생을 바꿀 수 있구나!’ 그걸 알게 되면서 중3 때부터 쭉 국어 교사가 되고 싶었어요.”

―지금은 증상이 완치된 건가요?

“틱으로 오래 진료를 받은 까닭에 공익근무요원으로 군 복무를 했어요. 완치되는 경우도 있고, 계속되는 경우도 있는데 저는 애매한 단계인 거 같아요. 운동을 심하게 하거나 극한 흥분상태가 되면 팔 떨림 같은 증상이 나타나긴 해요.”

큰아들이 ‘틱’을 앓자 보험설계사로 일하던 어머니는 매주 수요일 오후 짬을 내어 그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 주위 사람들은 ‘사랑이 부족해 생긴 증상’이라며 어머니를 탓했다. 고등학교 국어교사였던 아버지는 이런 비난에서 자유로웠다. 어머니가 살아온 고단한 삶은,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이 싹튼 토양이었다. 그걸 공부하면 어머니가 왜 그렇게 살아왔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머니는 가난한 집 일곱 남매 중 다섯째로 태어났다. 아들에 밀려, 하고 싶은 공부를 할 수 없었다. 스물셋에 만난 첫 연애 상대와 결혼해 연년생 아들 둘을 낳았다. 없는 살림 탓에 아버지가 대학원 공부를 포기하려 하자, 어머니는 집을 나섰다. 최 교사가 다섯 살 때부터 부모님은 맞벌이를 했다. 가사노동은 언제나 어머니 몫이었다. 동트기 전부터 밥 짓고, 퇴근 뒤에도 쉬지 못하는 어머니가 안쓰러웠다. 고통을 덜어드리기 위해, 열두 살 소년은 빨래나 청소, 설거지를 시작했다.

어머니가 걸어온 고단한 삶

―어머니가 가사노동을 전담하는 걸 당연하게 여기는 자녀들도 많은데, 최 선생님은 그렇지 않았나 봐요.

“그 모습이 되게 이상했어요. 생각해보면 어린 시절부터 따지는 걸 좋아했던 거 같아요. 선생님들이 머리카락 길이를 단속할 때 ‘왜 선생님은 기르면서 우리는 안 되냐. 선생님이라 되고 학생이라 안 된다는 건 이유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가 맞았고요. 운동이나 게임, 당구는 좋아했는데 이상하게 형들하고 술 마시며 노는 문화가 불편했어요. 술 마시는 걸 싫어하고 못 마시기도 했고요. 권위적인 걸 워낙 싫어해서 학생들을 억누르지 않는 교사가 되고 싶었죠.”

―왜 그렇게 권위적인 게 싫었을까요?

“아버지가 굉장히 권위적인 분이었어요. 저랑 제 동생은 항상 아버지 눈치를 봤어요. 아파트 엘리베이터 ‘땡’ 소리가 들리면 형제가 동시에 방으로 뛰어들어 갔어요. 아버지에게 혼날까봐 무서워서…. 제 방이 더럽다는 이유로 아버지는 ‘청소하라’고 책장 같은 걸 다 무너뜨리기도 하셨어요.”

―요즘엔 아버지와 관계가 어떠세요?

“편한 관계는 아니고요. 정말 가벼운 대화만 해요. 아버지도 절 어려워하시고요. 아버지도 좀 불행했을 것 같아요.”

약자의 위치에서 따돌림 당한 경험이 있고, 아버지의 권위도 싫었다. 그런 최 교사도 10대 시절 ‘더 강한 맛’에 도취된 적이 있다.

“고등학생 시절, 학원에서 중학교 때 저를 놀리던 애를 만났어요. 걔는 다른 학교로 진학했는데, 중학생 최승범만 기억하고 예전처럼 소리를 내며 놀린 거죠. 그동안 저는 키도 크고 성격도 바뀌었거든요. 그 자리에서 걔를 발로 차버렸어요. 나가떨어지더라고요. 그때부터 학원 애들이 저한테 되게 깍듯하게 대하는 거예요. 무언가 할 때 꼭 제 의견을 물어보고요. 그땐 좋았어요. 으스댔고. 안 하던 욕도 하고, 더 강하게 하려 했고. 이렇게 서로서로 세 보이려 하는 문화 때문에 중학생 때 따돌림을 당했다고 생각해요. 애들끼리 ‘내가 함부로 할 수 있는 애, 없는 애’ 구분하고, 서열이 있으니까요.”

“아무래도 많은 선생님들이 저를 ‘되바라지고 제멋대로이며, 말 안 통하는’ 사람으로 보는 것 같아요.” 지난해 언론을 통해 최승범 교사가 페미니즘을 가르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강원도교육청 등으로 최 교사가 ‘지위를 남용해 학생들에게 편향된 사상을 강요한다’는 민원이 수차례 들어왔다. 강릉/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반성폭력 자치규약을 함께 읽다

2003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강대 인문학부에 진학했다. 입학 전, 새내기 오리엔테이션에 갔더니 한 선배가 ‘반성폭력 자치규약’을 함께 읽자고 제안했다.

“원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술을 권하지 않는다. 신체 접촉을 하지 않는다. 새내기에게 반말하지 않는다. ‘왕게임’(주로 술자리에서 누군가 왕이 되면 그 왕이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을 하지 않는다. 잠자는 방은 성별로 분리한다….”

다른 단과대, 다른 대학도 다 그렇게 하는 줄로만 알았다. 대학생 최승범은 학생회나 학과 활동이 즐거웠다. 단 한번의 휴학 없이 입학 6년 만에 대학을 졸업하고, 2010년 기간제 교사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처음 아이들을 가르친 고등학교는 어떤 곳이었나요?

“강원도에 위치한 전형적인 사립학교였어요. 공부 못하는 학교였고, 차상위계층이나 기초생활수급자 가정 학생이 한 교실에 4분의 1부터 3분의 1까지 굉장히 많았어요. 학습 의욕도 별로 없었고요. 그 학교에서 공부를 잘했던 한 학생이 강원도 지역 사립대에 진학했는데, 부모님 두 분 다 장애가 있었던데다 가정 형편이 너무 좋지 않아 앞날이 보이지 않았어요. 결국 대학을 그만뒀을 거예요. ‘학생 잘 가르쳐 대학 보내는 게 교사가 할 일의 다는 아니구나’란 생각을 하게 됐어요. 정규직이 된 이후 전교조 활동을 하게 된 이유이기도 해요. 사회운동을 병행해야 할 것 같더라고요. 직종·직업간 소득 격차가 줄어 들어야 ‘대학 잘 보내기 위해 줄 세우는 데 올인하는’ 교육도 변할 수 있을 테니까요.”

―기간제 교사이다 보니 2012년 계약 만료로 다른 학교로 가게 된 건가요?

“사립학교는 법인 자체 전형으로 정교사를 채용하는데 필기시험에서 탈락했어요. 당시 채용 과정에서 ‘뒷돈’이 오가 책임자가 처벌을 받았어요. 제 자리에 또다른 기간제 교사가 오기로 결정되면서 경기도에 위치한 자율형 공립고등학교로 옮겼어요. 그 학교는 학력 수준이 굉장히 높았는데, 정부 지원을 받는 가정 학생이 단 한명도 없더라고요. 부모 소득이 학생 학력을 좌우한다는 것을 실감했고요. 젊고 능력 있는 선생님들을 많이 초빙해 학습 분위기도 좋았어요. 학교 차원에서 신문기사로 읽기 자료를 만들었고, 교과과정 상관없이 가르치고 싶은 건 다 가르칠 수 있었어요.”

―가르치고 싶은 거 다 가르칠 수 있었다면, 페미니즘 이슈도 교실에서 다룬 건가요?

“여성에게 편중된 가사노동·낙태죄 폐지 문제 등을 다룬 페미니스트 온라인 매체 <일다> 기사를 보여줬어요. 여학생들은 좋아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남학생들 반응은 영 신통치가 않았어요. 내신이 좋아야 그 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는데, 한 반에 여학생들이 ‘3분의 2’ 이상이었죠. 선생님도 거의 여자분들이니, 남학생들로서는 도대체 왜 여자가 차별받는다는 건지 이해하기 어려웠을 거라고 생각해요.”

“선생으로서 기본이 안 된 인간”

2013년 7월 후원을 호소하며 서울 마포대교에서 뛰어내린 성재기 남성연대 대표가 끝내 숨졌다. 역차별을 당한다고 생각하는 남성들 분노가 커졌다. 지금은 ‘무지무지 잘못했다’고 생각하는 사건이 그때 터졌다. 최 교사가 고인을 비난한 글을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에 올리자, 그가 가르치던 남학생들이 반박 댓글을 달았다. 댓글에 다시 격앙된 감정을 담아 댓글을 달았다. 그해 교원평가엔 ‘선생으로서 기본이 안 된 인간’ 같은 악평이 쓰여 있었다. 교실에 들어서는 것이 괴로웠다. 한동안 페미니즘 책도 읽지 않았다.

“미숙한 교사가 화를 낸다. 올해는 아이들에게 화내지 않는 게 목표였는데, 기분이 좋지 않다. 감정을 앞세우지 말 것. 쌓아두지 말 것. 생각하고 행동할 것. 교육은 다른 무엇을 위한 수단이나 도구가 아님을 명심할 것.”(2013년 9월27일 최승범 페이스북)

―학생들과 마찰을 빚으면서 교사를 그만둘 생각도 했을 것 같아요.

“그런 생각을 했는데, 다음해 만난 애들이 너무 예뻤어요. 원래 가르치던 학생들보다 한 학년 아래를 맡았는데, 학교에서 ‘천덕꾸러기’ 같은 느낌을 받고 있던 애들이었거든요. 평균 입학점수가 정점을 찍은 다음해 입학한 학생들이었어요. 워낙 전년도 합격 커트라인이 높다 보니 지원자 수가 크게 줄었고 입학 점수도 뚝 떨어졌죠. 그렇게 입학한 학생들에겐 ‘선배들은 잘하는데 우리는 못한다’란 콤플렉스가 있었어요.”

2015년 대전의 한 여자고교 기간제 교사를 거쳐 2016년 명륜고 정교사로 정착했다. ‘짝꿍’이라 부르는 아내를 만나기 전까지 그는 결혼에 관심 없던 청년이었다. 계약 만료가 다가오는 겨울마다 마음이 심란하긴 했지만, 학교를 바꿔가며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계속 함께 살고 싶은 사람이 생겨버렸다. 장인어른께 결혼을 허락받으려면 정규직이 돼야 할 것 같았다. 임용시험 공부를 시작했다. 사립학교인 모교에서 정교사 자리가 났다기에 서류를 내고 1차 필기시험을 보러 갔다. ‘한국 공교육을 진단하고 해법을 강구해보라’는 논술 문제가 나왔다. 암기 과목에 취약했던 그는 이 시험을 무조건 잘 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난 2016년 5월 ‘강남역 살인사건’ 이 발생한 이후 피해자 추모 글로 뒤덮인 지하철 강남역 10번 출구 모습.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그 ‘처녀’는 성관계에 동의했을까?

2013년 학생들과 갈등을 겪은 이후 교실에서 페미니즘이나 성차별 문제를 입 밖에도 꺼내지 않았다. 2016년 5월 강남역 살인사건이 일어났다. 침묵을 깨기로 했다. 자신이 가르치는 남학생들과 남학생들을 가르칠 동료 교사들에게 ‘작은 영향’이라도 미칠 수 있다면 좋겠다고 다짐했다. 교실에 놓을 <여성신문>을 구독했고, 페미니즘 구호가 적힌 옷을 입고 배지를 달았다. 교실에 ‘학급문고’를 조성하고 페미니즘 책도 넣었다.

국어 교과서에 실린 문학 작품을 통해 젠더 감수성(성별을 특정한 틀로 규정짓는 문제를 ‘당연하지 않다’고 느끼는 감각)을 건드리는 수업을 시도했다. 단편소설 ‘메밀꽃 필 무렵’이 시작이었다. 소설의 주인공인 허 생원은 달빛 은은한 밤 메밀꽃이 흐드러지게 핀 산길을 걸으며 과거를 추억한다. 평생을 혼자 살아온 그에게 성서방네 처녀는 인생에 있었던 단 한 명의 여인이다. 목욕하러 개울가에 나온 그는 물레방앗간에서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며 울고 있던 처녀와 밤을 보낸다. 그날의 추억을 달이 뜨는 밤마다 친구 조선달에게 ‘못이 박이도록’ 이야기한다. 최 교사는 소설 속 상황을 놓고 학생들에게 세 가지 질문을 던졌다.

① 성 서방네 처녀는 성관계에 동의했을까?

② 성폭력과 성폭력 아님을 구분하는 기준은 뭘까?

③ 우리는 왜 여성의 사생활에만 엄격할까?

―‘메밀꽃 필 무렵’ 수업은 학생들도 재미있어 했을 것 같은데요.

“저도 이거 ‘딱’이겠단 생각을 했어요. 학창시절 그 작품을 배우면서 왜 그런 의구심을 품지 않았을까 싶더라고요. 남학생들이 여자친구와의 진도를 동네방네 떠들고 다니는 걸 좋아해요. 오죽 자랑했으면, 애들이 저한테도 ‘선생님 ○○는 여자친구랑 뭐 했어요’ 이런 이야기도 해요. ‘왜 그걸 자랑해? 세 보이고 싶어?’ 이렇게 물어보면 당사자는 ‘아니에요. 자랑 안 했어요. 지어낸 말이에요’ 이러고요.”

―남자고등학생 성교육은 ‘실효성’ 있게 진행되나요?

“저희는 1년에 두 번 외부에서 강사가 오세요. 한 학년 300명 모두 강당에 모아놓고, 강사가 목이 터져라 이야기해요. 뒤편에 앉은 학생들은 떠들거나 자고요. 그냥 한 시간 때우는 느낌이에요. 학교에서 성매매 및 성폭력 예방교육을 제대로 하면 좋겠어요. 강사 한 명이 각 교실에 들어가 학생 30명과 함께 이야기하면, 애들이 지금보단 성교육을 진지하게 들을 것 같아요.”

중3 담임 선생님 덕에 삶 바뀌어
학생 존중하는 국어 교사 되기로
2010년 기간제 교사로 시작해
남학생들과 마찰 등 ‘좌충우돌’
“사회운동 해야 교육도 바뀌어” 2년전 강남역 살인사건 보면서
남학생·동료교사 설득 고민
‘학생-교사’ 중 교사가 강자이듯
‘남-여’ 중엔 남자가 더 큰 권력
“간접 체험으로 안목 넓어지길”

<저는 남자고, 페미니스트입니다>를 홍보하는 페이스북 페이지에 ‘욕 댓글’을 남기는 이들의 프로필을 보면 대개 10대 남자들이란다. 최 교사는 ‘경제 권력은 아예 없고 나이 때문에 핍박받는’ 이들을 이해한다고 했다.

“스물일곱에 시작하던 취업 걱정을 열일곱에 시작했고 열일곱에 시작하던 대학 걱정을 일곱에 시작했다. 입시 경쟁에 함께 뛰어든 엄마를 감시자·처벌자로 인식했다. 대개 남녀공학 중·고등학교를 다녔다. 공부는 여학생이 잘했다. 한창 게임할 나이에 ‘셧다운제’(16살 미만 청소년의 심야시간 게임 금지)가 시행됐다. 여성가족부는 없어져야 한다는 원초적 소명 의식을 장착했다. 아이티(IT) 강국을 조국으로 둔 탓에 어려서부터 포르노를 접했다. 어린이집부터 고등학교까지 줄곧 여자 선생님을 만났다. 여성이 상급자·권위자 역할을 맡는 게 어색하지 않다.”(140~141쪽)

―10대 남자들이 성장 과정 내내 본 세상에서 ‘사회적 약자로서의 여성이 없다’고 한 선생님의 글이 공감됐어요.

“애들이 모두 억울하다고 해요. ‘알바’ 못 구한다고. 알바 채용사이트에 들어가보면 다 여자만 찾는다고.

―그런 말을 들으면 뭐라고 하세요?

“지금은 그렇다고 해요. 그리고 ‘너희가 보진 못했지만 여자애들이 살아오면서 겪은 어려움이 있다. 밤에 길을 걷다 무서운 적이 있냐?’고 물어요. 그러면 애들이 ‘밤길이 왜 무섭냐’고 어리둥절하죠. 그러면 ‘제발’ 주위 여자들에게 물어봐 달라고 해요. 다음날, 두 명 정도는 누나나 여자친구에게 물어보고 학교에 옵니다. ‘여자들은 밤길이 무섭대요.’ 이런 증언이 나오면 다른 애들도 ‘아, 여자는 밤길이 무섭구나. 그건, 인정’ 그렇게 넘어가요.”

최승범 교사는 2016년 결혼해 최근 딸을 낳았다. 결혼 생활을 통해 “한국에서 남편 하기는 쉽고, 아내 하기는 어렵다는 것”을 느낀다. 강릉/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여자편 많이 들어 기분 나쁨’

―선생님 교육 방식에 대해 학교에선 반발이 없나요?

“학생들로부터는 없어요. 지난 2년간 교원평가에서도 딱 한 번 ‘여자편 많이 들어 기분 나쁨’이라고 나왔고요.”

―동료 교사들이나 학부모 반응은 어떤가요?

“아무래도 많은 선생님들이 저를 ‘되바라지고 제멋대로이며, 말 안 통하는’ 사람으로 보는 것 같아요. 교장 선생님은 이런 종류의 교육도 필요하다고 인정해주세요. 저에 대한 민원이 많이 들어와 곤란하실 텐데, 너무나 감사하죠. 부모님들로부터는 의외로 연락 온 것이 없어요. 아무래도 남고생들이 부모님과 소통을 잘 안 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합리적이고 열린 남성들도 페미니즘의 ‘ㅍ’ 자만 나와도 귀를 닫아버린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이런 말에 동의하시나요?

“저도 ‘페미니즘’ 말 자체를 꺼내는 게 조심스러울 때가 있어요. 학생들도 엄청 싫어하고요. 교사 대상 강연에서 어느 분이 ‘사람들이 페미니즘을 싫어하니 양성평등 혹은 성평등이라고 하면 안 되느냐’고 물어보시더라고요.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는다고 페미니즘이라는 말을 피하는 게 맞을까. 그럴수록 더 드러내고 더 공론화시키는 게 맞지 않나, 그런 생각을 해요.”

최승범 선생님은 올해 담임을 맡은 고교 3학년 교실에도 학급문고를 만들었다. 2016 오늘의 우리만화상을 수상한 <여중생A>를 비롯해 인권·젠더·현국현대사 등 200여권의 책이 꽂혀 있다. 최승범 제공

―책 제목을 통해 ‘페미니스트’라고 선언하셨는데, 선생님이 이해하는 페미니즘은 무엇인지 궁금했어요.

“지금까지 저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하지 않았어요. 다만, 책 제목이 그렇게 정해져서…. 제 입으로 저를 페미니스트라고 하기엔 민망해요. ‘공부하고 있다. 페미니스트 앨라이(지지자·협력자)’라고 표현해 왔어요. 페미니즘을 놓을 것 같진 않아요. 이젠 돌아오긴 글렀어요. 페미니즘을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것 같은 학생이 물었어요. ‘선생님은 대체 왜 페미니즘을 하세요?’ 전 ‘이래야 한다고 하는 게 싫어서’라고 답했어요. 우리나라엔 다른 무엇보다 ‘남자는 이래야, 여자는 이래야 한다’는 틀이 너무 심한 거 같고. 그것 때문에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못 사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고. 지금도 ‘선생은 이래야 한다’는 게 싫으니 마음대로 하는 것 같고요.”

―선생님은 궁극적으로 어떤 학교에서 일하고 싶으세요?

“학생·교사 간 위계가 사라지면 좋겠고요. 교사도 나이·경력 따라 발언권 차이 있는 게 아니라. 그냥 1인 1표였으면 좋겠어요. 2~3년 안에 개방형 방과후 교육과정에 페미니즘 강좌를 만들어 보고 싶어요. ‘개방형’은 강릉 내 다른 학교 학생들도 신청해서 참여할 수 있거든요. ‘페미’ 거점 학교를 만드는 거죠.”

지난 2월 `포괄적 성교육 권리 보장을 위한 네트워크'가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연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 교육, 지금 당장!’ 초·중·고 학교 페미니즘 교육 의무화 청와대 청원에 대한 입장 발표 및 정책 제안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발언하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왜 며느리들이 해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최 교사는 자신이 ‘여자’였다면 책을 내는 일이 없었을 것이라고 한다. 남자들은 여자 말보다 남자 말을 더 신뢰한다. 그 덕에 ‘이 정도 내공과 필력’으로 페미니즘을 권하는 책을 썼다고 했다. 그는 교실에서 학생 인권 탄압에 기여하고 있다는 사실에 미안해한다. 성인-청소년 관계에서 가해자는 성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성-여성 관계에선 남자들이 문화적·사회적 권력을 누리고 있음을 학생들에게 알려주고 싶다. 최규석 작가의 웹툰 <송곳>에서 나오는 ‘사람들은 옳은 사람 말 안 들어. 좋은 사람 말을 듣지’란 대사가 가슴속에 콕 박혀 있다. “학생들도 마찬가지다. 똑똑한 선생님 말 안 듣는다. 좋은 선생님 말을 듣지. 의견을 존중하고 예의를 갖추고, 함부로 말하지 않고, 목소리에 귀 기울이면 좋은 선생님이 될 수 있다.”(155~156쪽)

최승범 선생님과 출판사 ‘생각의 힘’은 <저는 남자고, 페미니스트입니다> 출간에 앞서 모금을 진행했다. 목표 금액 2천만원이 훌쩍 넘는 돈이 모였다. 텀블벅 누리집 갈무리

최 교사의 아내인 김혜영 교사는 페미니즘을 공부하는 남편을 만나면서 스스로 의식하지 못했던 ‘틀’을 돌아보게 됐다.

“추석이나 명절 때 숙모들이 늦게 오셨어요. 저희 어머니는 맏며느리였고 성실하셨는데, 타박은 타박대로 받으셔서 지금은 이혼하셨어요. 그런데 어머니는 지금도 그 숙모들을 미워하세요. 숙모 중 한 분은 여자, 남자가 평등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간간이 하셨거든요. 예전엔 그저, 변명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생각해보면 아버지 쪽 제사인데 남자들은 다 앉아 있고 애도 안 보고…. 이런 부분에 대해 제가 되게 보수적으로 생각했고, 당연히 여자들 특히 며느리들이 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김 교사)

강릉/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편향된 사상 강요한다’는 민원

지난해 언론을 통해 ‘페미니즘 가르치는 남자 교사’로 알려지면서, 강원도교육청·강릉교육지원청엔 최 교사가 ‘지위를 남용해 학생들에게 편향된 사상을 강요한다’는 민원이 여러 차례 들어왔다. 책이 더 널리 퍼지면, 수차례 쓴 소명서를 반복해야 할지 모른다.

“저와 함께 공부하는 남학생들이 자신이 경험하기 어려운 삶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해 인간과 세계를 이해하는 안목이 넓어지기를 원합니다. 여성뿐만 아니라 이 땅에서 먼저 살다 간 조상들, 다른 인종·장애인·성소수자·비인간 동물의 삶 또한 열린 눈과 마음으로 바라보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관용과 다양성을 갖춘 너그럽고 자애로운 성인으로 성장하기를 바랍니다. 제가 수업에 페미니즘 이슈를 종종 녹여내는 이유는 단지 이것뿐입니다.”(2017년 강원도교육청에 제출한 소명서)

강릉/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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