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초등 1학년 둔 워킹맘 "학원으로 뺑뺑이 돌리는 게 맘 아파요"

권현경 기자 2018. 4. 21.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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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 1학년 자녀 둔 워킹맘 고군분투기②] 워킹맘이 원하는 제도는?

【베이비뉴스 권현경 기자】

경력단절의 마지막 절벽이라 부르는 초등학교 1학년 자녀를 둔 워킹맘들은 자녀의 입학으로 완전히 달라진 삶을 살고 있다. 전쟁 같은 3월 한 달을 보낸 5명의 워킹맘을 만나봤다. -기자 말

① "휴가 낸다는 말을 더는 못하겠더라고요"
② 초등 1학년 둔 워킹맘 "학원으로 뺑뺑이 돌리는 게 맘 아파요"

오후 1시면 초등학교 앞에서 태권도를 비롯한 각종 학원 차들이 대기하고 있다가 아이들을 태우고 간다. 김재호 기자 ⓒ베이비뉴스

"열심히 일하고 와서 아이가 저를 보자마자, '엄마 배고파'라고 하면 옷도 못 벗고 밥부터 해야 하니까 스트레스예요."

경기도 파주에서 '품앗이 육아'를 하는 김태은(42) 씨의 말이다. 돌봄교실을 신청하면 하교 시간이 4시 50분. 워킹맘들은 이 시간에 집에 있지도 못할 뿐더러 데리러 갈 수도 없는 상황이다. 월요일은 미술학원 차가 돌봄을 끝낸 아이들은 데리고 가서 6시 반에 집에 데려다준다. 이조차 별도로 경비를 지급한 서비스다.

김 씨는 "월요일과 화요일은 제가, 수요일은 같이 품앗이 육아를 하는 간호사 엄마가, 목요일은 또 다른 엄마가 하원을 봐주고 있어요. 엄마들 퇴근이 7시 반에서 8시 사이니까 저녁을 안 챙겨줄 수가 없어요. 시간 때문에 미술학원을 보내는 거죠"라고 설명했다.

자영업을 하는 김 씨는 "저녁 미팅이 많고 수업도 있어 저녁이 애매하고 힘들어요. 수요일, 목요일은 9시에 끝나서 아이가 친구 집에 그 시간까지 있어요. 갔는데 자고 있으면 둘러업고 오거나 재우고 다음 날 아침에 데리러 간 적도 있어요. 지금 걱정은 이 집 저 집 움직이니까 규칙적인 습관이 형성 안 되는 것 같아 불안합니다"라고 말했다.  
 
◇ 초등 1학년의 이른 하교에 워킹맘들의 대처법도 각양각색

워킹맘들은 초등학교 1학년 자녀의 이른 하교 때문에 각자 상황에 맞는 대안을 마련하고 있다. ⓒ베이비뉴스

워킹맘들은 초등학교 1학년 자녀의 이른 하교 때문에 각자 상황에 맞는 대안을 마련하고 있다. 공통점은 학교 돌봄교실과 방과후교실이 끝나고 나면 어쩔 수 없이 태권도든 미술이든 학원을 보내 귀가 시간을 최대한 늦도록 하고 있다는 점이다.

권혜경(38) 씨는 공공기관 임기제 공무원으로 1년 전부터 근무 시간을 조율해 주 5일 근무, 4시 퇴근을 할 수 있도록 준비해 왔다. 돌봄교실이 안 되면 권 씨는 휴직밖에는 답이 없어 팀장에게 미리 아이 돌봄교실이 안 되면, 휴직해야 한다고 귀띔까지 해뒀었다고 했다.

권 씨는 "어릴 때부터 아이가 어린이집 종일반을 다녀서 1학년 때만큼은 내 시간이 없어도 집에서 밥해 먹이자고 마음을 먹었어요. 저녁 시간이라는 게 없어요. 야근도 마음대로 못하죠. 초과근무시간이 '0'에요. 직장 생활하면서 칼퇴근하는 게 눈치를 봐야 하는 상황이 있어요. 한 달 동안 초과근무 '0'이면 다른 직원들한테 미안한 부분도 있지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요"라고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이현지(가명·38) 씨는 "화·수·목은 돌봄교실에 있다가 태권도 갔다가 태권도 차를 타고 집으로 오고, 금요일은 수영 갔다가 태권도 갔다 오고 집에 오면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돌봐주세요. 퇴근하고 집에 가면 씻기고, 먹이고, 재우기 바쁘니까 너무 힘들어요"라고 속내를 털어놨다.

그래도 "돌봄교실과 방과후교실에 당첨돼서 정말 다행"이라는 말을 수차례 되풀이했다. 이 씨는 "1학년이 7반까지 있는데 돌봄교실은 2반밖에 없어요. 프로그램이 워낙 잘 돼 있어서 학원 보내는 것보다 나은 것 같은데 돌봄교실이 확대돼서 많이 참여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라고 바람을 전했다.

그러면서 "친정 부모님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회사는 그만뒀어야 했을 것"이라면서 "그나마도 학원을 덜 보내고 집에 빨리 오게 하는 건 할아버지, 할머니가 집에 계시기 때문에 가능해요. 부모님도 육체적으로 힘들고 자기 시간과 생활을 하셔야 하는데 그런 게 안 되니까 힘드신 것 같아서 마음이 쓰여요"라고 말했다.

은행원 안주현(가명·43) 씨, 공무원 윤소영(36) 씨도 같은 입장이다. 안 씨의 아이도 돌봄교실과 방과후교실을 마치고 태권도에 갔다가 할머니나 돌봄 도우미 선생님이 안 씨 퇴근 시간까지 맡아주신다. 안 씨 역시 2~3월에 유치원 졸업식, 입학식, 상담, 학부모 총회 등으로 휴가를 4일 썼다고 했다. 그러면서 태권도를 보내는 이유에 대해 "집에 돌아오는 시간을 늦추기 위한 것도 있지만 큰 태권도 학원이라 친구들 좀 사귀라는 취지에서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윤 씨는 "아이가 돌봄교실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친정엄마인 외할머니가 돌봐주고 있어요. 7시 반쯤 퇴근하면 가능한 한 아이와 시간을 보내려고 최대한 노력해요. 아직 학원엔 안 보내고 있고요"라고 말했다.

윤 씨와 안 씨는 친정어머니와 시어머니의 도움으로 그나마 일을 그만두지 않고 해나갈 수 있는 상황이다.

◇ 학교 또는 사회가 어떻게 달라져야 할까?

워킹맘들은 맞벌이 부부에 대해서는 돌봄교실에 100% 맡길 수 있도록 확대돼야 한다는데 입을 모았다. ⓒ베이비뉴스

"공교육 시스템 안에서 아이들을 보호해주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학원으로 뺑뺑이 돌리는 게 너무 마음이 아파요. 딸이 셋인데 우리 아이들이 커서 일할 때는 지금보다는 나아졌으면 좋겠어요."

이현지(가명·38) 씨의 말이다. "다른 아이들은 집에 가는데, 제 아이는 짐을 싸서 다른 교실로 이동(돌봄교실로)을 해요. '친구들이 집에 가니 자기도 집에서 시간을 보내고 싶다'라는 말을 한 적이 있어요. 학교에서 다 같이 보내는 시간이 늘어나면 좋을 것 같아요. 정규 수업시간이 늘어나면 더할 나위 좋겠죠"라고 말했다. 

이 씨는 "몇 살 이하 어린이가 있는 부모의 단축 근무 시스템도 퍼져 정착되겠지만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긴 해요. 남성이든 여성이든 시간을 투자하는 데 대해 사회가 지급해야 하는 비용이라고 생각하고 장기적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요"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그런데 막상 제가 기업 사장이라고 생각하면 쉽진 않을 것 같지만 그걸 용인하지 않으면 피해는 사회가 받아야 하니까요. 딸이 셋인데 우리 아이들이 커서 일할 때는 나아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우리 아이들은 나보다는 덜 힘들게 일하고 가정에서 분업이 잘 이뤄지고. 그런 생각과 인식이 공감되면 좋을 것 같아요"라고 바람을 전했다.

돌봄교실과 관련해, 인터뷰한 워킹맘 자녀들은 모두 첫 학기 돌봄교실 신청에 당첨이 됐다. 그리고 학교 밖에 나와 있는 것보다 학교 안에 있는 게 안심이 된다고 했다. 간식비를 지급하긴 하지만 돌봄교실에서 간식을 주는 것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안주현(가명·43) 씨는 "아이들 입학 전에 돌봄교실 신청과 방과후교실 신청을 받아서 정말 다행이었어요. 학교마다 차이가 있는데요, 다른 학교의 경우 입학하고 2~3주 후 신청을 받아 멀리 친척분이 오셔서 봐주고 난리가 났었어요"라고 전했다.

워킹맘들은 "맞벌이 부부에 대해서는 돌봄교실에 100% 맡길 수 있도록 확대돼야 한다"는데 입을 모았다. 특히 초등학교 1학년을 시작하면서 아이 학교 방문을 위해 휴가를 다 써야하는 상황과 이른 하교로 시간을 맞추기 위해 학원을 보내야 하는 문제 등을 공통으로 체감하고 있었다. 

맞벌이 부부에게 가장 힘든 건 자녀의 방학 그리고 학교마다 시행하는 재량 방학이다. 선택의 기회를 주면 좋은데 선택을 하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권혜경 씨는 "방학이 문제예요. 방학 때 일주일 동안 돌봄교실도 쉬더라고요. 일주일만 어떻게 버티면 되는데…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휴가를 아껴 쓰는 수밖에 없어요. 정 안되면 방학 때 시댁에라도 보내는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김태은 씨도 "저희 '품앗이 육아' 하는 5명 엄마가 모두 '멘붕'이예요. 방학하면 어떡하나 하고요, 저희 중 한 명이 시어머니가 봐주실 수 있을지 모른다고 해서 그럼 4명 아이를 다 그분께 맡길 수 없겠느냐고까지 했다니까요"라고 전했다.  

앞서 2월 6일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는 초등학교 1학년 입학기 아동 돌봄 부담을 덜기 위해 해당 자녀를 둔 근로자가 입학기 한 달간 10시 출근하고, 연 10일 자녀돌봄휴가제도를 쓸 수 있는 지원 대책을 관계부처와 함께 마련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기자가 만나본 워킹맘 중에는 이 제도를 이용했다는 사람은 없었다.

워킹맘들은 인터뷰 내내 그래도 이렇게 일할 수 있음에 감사해 했다. 각자 직장에서 초등학교 1학년 자녀 문제로 휴직을 하거나 일을 그만두는 동료를 너무 많이 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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