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인도네시아 농장·멕시코 공장에서..한국 기업도 노동 착취 눈감았다

박송이 기자 2018. 4. 21.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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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환경파괴·반노동…하청과 재하청 뒤에 숨어 책임 외면하는 초국적 기업들

하청, 재하청으로 이어진 다단계 공급망이 국경을 초월해 형성되면서 공급망 밑바닥에 있는 하청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환경 문제가 부각되고 있다. 아이폰을 조립·납품하는 폭스콘 중국공장에서는 10명이 넘는 하청노동자가 자살해 논란을 빚었고(왼쪽), 인도네시아 팜오일 생산 과정에 광범위한 인권침해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가운데). 태국산 새우가 불법 노동으로 가공됐다는 폭로도 있었다(오른쪽). 경향신문 자료사진

우리가 먹는 농수산물은 누가 생산하고 가공한 것일까. 우리가 입는 옷은 누구의 손을 거쳐 만들어졌을까. 식품, 옷 등의 생필품부터 텔레비전, 휴대전화 등 가전제품까지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대개의 상품들은 하청, 재하청으로 이어진 다단계 공급망을 통해 만들어진다. 세계화된 경제구조에서 생산, 마케팅, 판매, 서비스가 이뤄지는 전 과정은 국경을 초월해 작동한다. 문제는 공급망이 전 세계로 확대되면서 공급망의 정점에 있는 초국적기업은 공급망 밑바닥의 하청노동자들에 대한 책임에서는 멀어진다는 것이다.

세계적인 브랜드의 제품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개발도상국 하청업체 노동자들에 대한 심각한 노동착취와 인권유린이 있다는 보도는 더 이상 새롭지 않다. 아이폰을 조립 납품하는 중국의 폭스콘 공장에서는 지난 2010년 한 해에만 노동자 10여명이 잇따라 자살했다. 저임금과 날마다 이어지는 야근 때문이었다. 디자인·생산·유통 기간을 줄여 빠른 속도로 저가 신상품을 내놓는 ‘패스트 패션’이 유행하면서 H&M, ZARA는 초국적 의류 브랜드로 급성장했다. 그러나 이들의 막대한 이윤은 방글라데시 등 개발도상국 하청업체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조건을 배경으로 한다. 2012년 방글라데시와 파키스탄 의류공장 화재사건, 2013년 방글라데시 라나플라자 공장 붕괴사고 후 이들 초국적기업의 책임을 묻는 목소리가 제기됐다.

한국기업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해 5월29일 샤란 버로 국제노총 사무총장은 한국을 방문해 “한국기업이 한국 등 아시아 전역에서 반노조·노동억압·착취 등을 일삼고 있다”고 말했다.

■ 한국기업의 인권침해

팜오일은 인도네시아 주요 자원이다. 삼성물산, LG상사 등 국내 대기업이 인도네시아에 보유한 팜오일 농장의 면적은 총 7만6000ha로 서울 면적의 1.3배에 달한다. 국내 대기업은 이곳에서 나는 팜오일로 마가린, 샴푸, 립스틱 등 생활용품을 만든다. 문제는 이곳 팜오일 농장의 노동자들이 심각한 환경문제, 인권침해를 겪고 있다는 점이다. 2016년 공익법센터 어필, 국제민주연대 등 국내 여러 비영리기관(NPO)이 연대해 만든 기업인권네트워크는 중국, 인도네시아, 멕시코 등을 방문해 현지 노동자들의 노동환경을 조사했다. 그 결과 아동노동, 안전장비 미비, 선주민 생존권 침해, 낮은 임금, 금지된 화학제품 사용 등 광범위한 인권침해가 벌어졌음을 지적했다. 기업인권네트워크가 펴낸 ‘해외 한국기업 인권조사 실태보고서’는 “수세대를 살아온 지역 주민들, 특히 선주민들이 오랫동안 그 지역 산림에 의존해서 살고 있던 곳에서, 거대한 규모로 농장을 운영하며 위험한 노동을 통해 경작과 가공을 하는 경우라면 이에 걸맞은 상당한 주의의무를 다해야 한다”며 “이러한 상당 주의의무는 (하청업체뿐만 아니라) 모회사인 삼성물산에도 있다”고 지적했다. 기업인권네트워크는 2015년 8월 노르웨이 국가연금펀드가 팜오일 농장 내 환경침해 문제를 제기하며 대우인터내셔널에 대한 투자를 철회한 것에 주목했다. 이들은 “해외 진출 한국기업의 인권침해 대부분은 개발도상국 지역 저임금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노조해체, 임금체불, 폭행, 해고 등”이라며 “과거 1970~1980년대의 고도성장 단계에서 발생했던 노동자 인권침해가 시대와 장소만 바뀌어 해외에서 똑같이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현실은 다단계 공급망 밑바닥의 하청노동자들에게 산업재해가 일어나도 원청이 책임을 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2015년 6월 가디언에는 멕시코 LG 하청업체에서 평면TV를 만들다가 절단기에 손이 잘린 여성의 사연이 실렸다. 로사 모레노라는 이 여성은 2011년 2월 어느 날 평소처럼 부품을 배치하기 위해 기계에 양손을 넣는 순간 1t이 넘는 기계에 손목이 짓뭉개지면서 양손을 잃었다. 공장 관리자는 그에게 보상금으로 5만페소(약 360만원)를 주겠다고 했다. 터무니없는 합의금에 항의를 하자 매니저로부터 돌아온 답은 “그게 우리의 방침”이라는 것이었다. 모레노는 다행이 무료 법률 지원 변호사를 선임해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법원은 LG전자가 인지하지 못했다는 점을 들어 소송을 기각했다.

■ 유엔 사회권위원회 권고

개발도상국은 경제성장을 최우선으로 하는 나라이기 때문에 노동조건이 열악하고 노동자들에 대한 착취가 쉽게 일어나는 구조를 갖고 있다. 산재사고가 발생해도 책임자를 처벌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는 경우도 드물다. 김종철 어필 변호사는 “한국기업들이 진출한 나라 대부분은 거버넌스가 열악한 나라이기 때문에 그 나라에서 책임을 묻기가 힘들다”며 “기업의 국가에서 책임을 져야 하는데 해외 공급망에서 발생한 문제에 대해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민주노총과 금속노조는 2013년 삼성전자의 국내외 무노조 정책 사례를 모아 ‘결사의 자유 침해’로 국제노동기구(ILO)에 제소했다. 이들은 삼성전자가 인도네시아에서도 노조를 와해시키려 했다며 제소에 이를 포함시켰다. 그러나 한국정부는 “한국기업이 해외 사법 관할권에서 현지 노동자를 채용하여 운영할 경우 기업은 현지법을 적용받는다”고 주장했고 ILO는 결국 인도네시아 공장 건은 심의에서 다루지 않았다.

지난해 10월 유엔 사회권위원회는 국외 진출한 한국기업의 인권침해 문제를 지적하며 “공적 자금이 인권침해 기업에 들어가지 않도록 하고, 기업의 인권침해를 예방할 수 있는 법 제도를 마련할 것”을 권고한 바 있다. 유엔 사회권위원회의 권고는 그간 해외에 진출한 기업은 물론 한국기업의 공급망에까지 인권침해가 일어나지 않도록 정부가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국제사회의 합의를 외면한 결과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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