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나의 삶 나의 길] 노인환자의 '인간다움' 지키려.. 권력 갑질과 싸우다

류순열 입력 2018.04.21. 06:00 수정 2018.04.23.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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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즐겨 부르던 여대생 / 김광석·안치환 등과 활동 / 과로 탓 목소리 잃고 절망 / 의사 남편 만나 건강 회복 /"늙고 병들어 서럽지 않게"/ 남편과 지방 요양원 갔다 / 기어다니는 노인 모습 봐 / 인간 존엄성에 눈뜬 순간 / 권력 갑질에 시달리기도 / 구립병원 수탁운영할 때 / 구청장·의원 청탁 잇따라 / 거절했더니 집요한 보복 / 호텔같은 병원으로 꾸며 / 환자 묶는 억제대 안 쓰고 / 연어·전복 등 식단도 고급 / 지난해 '소비자대상' 수상

아침 햇살을 가득 품은 로비. 널찍한 공간에 고급스러운 의자의 배치가 여유롭다. 가운데 우뚝선 미술품은 공간의 품격을 높이고, 한쪽에서 에스프레소를 뽑는 커피머신의 기계음이 음악처럼 흘러내린다. 이런 곳이 병원이라니. 간간이 오가는 환자들이 아니었다면 호텔인 줄 착각할 뻔했다. 한쪽의 분리 공간도 커피 내리는 소리를 듣고서야 카운터가 아니라 카페인 것을 알았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하이톤의 경쾌한 인사가 정적을 깨며 환자를 태우고 오가는 휠체어 사이를 가른다. 한눈에 패션 감각이 돋보이는 미모의 여성이 환자들과 휠체어를 미는 도우미들에게 허리굽혀 인사하며 살갑게 안부를 묻는다.

서울 우면동 서초참요양병원의 아침 풍경이다. 하이톤 목청의 주인공은 김옥희(52) 참예원의료재단 행정원장. 재단 이사장을 지낸 이 병원의 ‘오너’다. 참예원은 서울 강남, 송파, 서초, 성북 네 곳에 노인요양병원을 운영하는 의료재단이다. 모두 900병상으로 노인병원으로는 서울 최대 규모다. 김 원장은 “질적으로도 최고 수준”이라고 했다.

지난 16일 서초참요양병원에서 김 원장을 만났다. 고령사회의 노인 건강과 복지에 투신한 삶. 그 이유와 이력을 들어보려 한 건데 첫 관심사는 ‘호화로운 로비’였다.

―로비가 호화롭다. 호텔인가 했다.

“호화롭게 보일 뿐 사실은 소박하다. 내가 의자부터 샹들리에, 미술품까지 직접 설계해 제작했다. 비싸 보이지만 돈은 정말 적게 들었다.”

로비만이 아니다. 전체 건물 설계와 인테리어에서 정원 조경, 집기 하나하나에 이르기까지 김 원장의 손길을 거치지 않은 것이 거의 없을 정도다. 김 원장의 집무실엔 고급스러운 대리석 테이블이 있는데, 이 역시 직접 설계해 만들었다고 한다. 김 원장은 “대리석을 직접 공장에 가서 샀다. 10만원이면 되더라”고 소개했다.

―겉모습만 번지르르한 것은 아닌가.

“우리 병원은 환자의 복지, 인간의 존엄성을 최고의 가치로 여긴다. 그래서 환자를 결박하는 신체억제대를 사용하지 않는다. 힘들지만 환자를 위해 결정한 것인데, 오히려 억제대 미사용으로 검찰에 고발된 적도 있다. 결국 무혐의로 종결되기는 했지만. 환자 식단도 고급이다. 복분자를 발효시켜 드레싱 소스를 만들고 오리와 연어, 전복까지 올린다.”

김 원장은 “쉽지 않은 길을 선택하면서 별 이익을 보지 못하거나 손실이 나기까지 하지만 의약품 리베이트를 받지 않고 투명한 회계처리를 하며 정도경영을 해왔다고 자부한다”고 말했다. 참예원의료재단은 2017년 소비자대상을, 김 원장의 남편 김선태 이사장은 보건복지부 장관상을 받았다. 

―왜 노인요양병원인가.

“1990년대 말 대학원에서 사회복지학을 공부하면서 장기간의 노인질환을 위한 병원 인프라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걸 알았다. 간병을 하려면 며느리나 부인이 희생해야 하는 시절이었다. 하루는 의사인 남편과 지방의 노인요양시설을 방문했는데, 키가 큰 노인이 공동화장실에서 엉금엉금 기어나와 닦아달라고 하시는 모습을 보게 됐다. 늙고 병 들면 인간의 존엄성도 보호받을 수 없는 것인가. 그분의 모습이 너무나 처량하고 불쌍했다. 병든 노인의 인격을,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하고 보호해주는 병원의 필요성을 절감한 순간이었다.”

김 원장과 남편의 노인요양병원 사업은 2001년 서울 화곡동의 노인전문병원 개원으로 출발했다. “처음부터 환자들이 너무 많이 몰려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였다”고 한다. 병원부지를 마련하고 환자를 위한 공간을 충분히 배려해 더 크고, 넓게 새 건물을 지었다. 그렇게 참예원은 서울 4개 구에 노인요양병원을 운영하는 의료재단으로 성장했다.

탄탄대로였던 것은 아니다. 성북구에 병원을 열기 위해 미완성 납골당 건물 경매에 참여해 낙찰됐는데, 이후가 문제였다.

김 원장은 “낙찰은 됐지만 권리를 행사하기까지 너무 힘들었다. 목숨이 위태로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고 말했다. 낙찰은 받았으나 복잡한 이해관계로 권리를 행사하는 데 상당한 저항과 위협에 직면했던 것이다. “분위기가 험악했다. 일본 야쿠자 자금이 들어와 있다는 얘기까지 있었다”고 김 원장은 회고했다.

강남구립 행복요양병원을 수탁하면서 겪게 된 시련은 그중 최악이었다. 신연희 구청장, 시의원, 구의원, 심지어 지역 국회의원까지 권력자의 갑질이 줄기차게 이어졌다. 채용 청탁, 보험 강매, 금품 요구 등 범죄나 다름없는 압력들이었다. 거절하면 보복했다.

“이런 사람 필요하지 않나요.” 신 구청장의 채용 청탁은 이런 식이었다고 한다. 2012년 신 구청장의 요구로 채용한 A씨는 나중에 알고 보니 신 구청장의 제부였다. 김 원장은 “강남구청측 요청으로 채용한 B씨는 한 달도 되지 않아 전 직원의 주민번호와 계좌번호를 확보하고 의료재단 내부자료를 수집한 자료가 발견되어 사직시킨 일도 있다”고 밝혔다. 당시 직원들은 “강남구청에 개인사찰을 당했다”며 분노했다. “이후 강남구청은 병원운영이 차질을 빚을 정도로 7600여장의 자료를 하루 만에 요구하기도 했다”고 김 원장은 말했다.

지방선거가 있던 2014년엔 신 구청장의 측근 인사가 정치자금을 요구했는데, 응하지 않은 후 보복이라 의심할 만한 조치들이 이어졌다. 신 구청장은 업무상 횡령과 직권남용 등 혐의로 지난 2월 말 구속됐다.

구의원 L씨의 갑질도 만만찮았다. “중요한 일로 꼭 만나야 한다”면서 자기 아내를 소개했는데, L씨의 아내는 곧바로 김 원장에게 월 보험료 2000만원짜리 생명보험을 들어달라고 청탁하고, 또 “남편이 강남구청장에 출마하려는데 학벌이 좋지 않다”면서 학기당 5000만원씩 2억5000만원의 학비를 요구했다. L씨는 이런 과정에서 참예원 의료재단 임직원에게 욕설을 퍼부으며 모욕하기까지 했다. 김 원장은 “이제까지 강남에 살아왔는데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비리가 버젓이 눈앞에서 벌어지는 것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신 구청장은 인사청탁한 사실이 없다고, 구의원 L씨는 “(보험 가입은)이사장의 요청이었으며, 그밖의 일도 정당한 의정활동이었다”고 반박한다.

―어려움 없이 자란 ‘금수저’ 출신 같다. 권력의 갑질을 견디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금수저, 전혀 아니다. 대학시절 절망적이었다. 어떻게 하면 질병이 주는 고통을 잊고 죽을 수 있을까 진지하게 고민하던 날들의 연속이었다.”

기타치며 노래하는 것을 좋아하던 김 원장은 대학 시절 ‘노래얼’(고려대 노래패)에서 활동했다. 전두환 독재정권에 대한 저항이 치열했던 시절이었다. 선배들과 동기들이 학생운동으로 수감되거나 군에 입대했다. 수많은 공연을 감당하며 과로한 탓인지 어느 날 몸에 이상이 생겼다. 큰 수술을 받았고 고운 목소리를 잃었다. “고 김광석, 안치환 형과도 함께 음악활동을 했었는데, 이젠 100미터도 걸을 수 없는 39킬로그램의 병든 몸! 절망뿐이었다”고 김 원장은 회고했다.

남편을 만난 것은 그때였다. 1991년 3월 어느 날 극심한 복통으로 병원에 갔는데 병원장은 예비군 훈련으로 부재 중이었고 선한 얼굴로 진지하게 질문하는 앳된 의사를 만났다. 지금의 남편이다. 김 원장은 “처음 본 순간 이 사람과 결혼할 것 같다는 생각이 스쳤다”고 했다. 그럼에도 김 원장은 처음엔 만남을 거절했단다. “너무 어려보였다”는 게 이유다. 여성 특유의 ‘밀당’(밀고 당기기) 심리였을까. 결국 “오늘이 마지막”이라고 작정한 ‘앳된 의사’, 튕기기만 하다 “오늘도 전화하면 만나겠다고 해야지”라고 결심한 ‘밀당녀’의 마지막 통화가 둘을 묶었다. 두 사람은 이듬해 1월 결혼했고 이후 김 원장은 서서히 건강을 회복했다. 고운 목소리도 되찾았다. 요즘 그는 대학 동기들과 만든 밴드에서 기타와 보컬을 맡고 있다.

―사업으로 치면 역경을 딛고 큰 성공을 하신 건데.

“진정 좋은 병원을 만들려면 희생이 필요하다. 자기 소유를 주장할 때 병원이 올바로 가기 어렵다. 확고한 생각이다. 남편과 나의 영향력을 줄이고 고루 분배할 때 서로를 견제하면서 좋은 조직이 될 것이라는 확신이 있다. 우리 아이들(1남1녀)에게는 물려주지 않겠다고 이미 선언했다.” 김 원장은 “애초 전 재산을 교회에 기부할까 고민하다가 대형 기성교회가 너무 타락해 2011년 의료법인을 만들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직원들에게 월급도 많이 주겠다.

“회사가 망하지 않을 만큼 준다. 직원복지, 급여 모두 공평하게 하려고 노력한다. 우리 병원엔 직원 한 명 한 명의 인생이 녹아 있다. 직원들도 우리 병원은 우리가 만들었고 우리가 지켜갈 것이라는 생각들을 갖고 있다.” 김 원장은 직원들에게 ‘드라마 인생론’을 펼친다. “여러분은 모두 각자 자기 드라마의 주인공이다. 너보다 소중한 존재는 없다”고.

그러고 보니 병원 곳곳에서 만나는 젊은 직원들의 표정, 말투가 스스럼없다. 그들에게 김 원장은 눈치를 봐야 하는 직장 상사는 아닌 듯했다. 그보다는 믿고 따르는 ‘큰언니’, ‘큰누나’ 같은 존재가 아닐는지.

류순열 선임기자 ryoosy@segye.com

●김옥희 원장은…

△1966년 전남 해남 출생 △1989년 고려대 졸업 △2003년 백석대학교 사회복지 대학원 졸업 △2001년 참노인전문병원 행정부원장 △2011년 참예원의료재단 이사 △2013년 참예원의료재단 이사장 △2014년 고용노동부 장관상 수상 △現 참예원의료재단 행정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