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청소년에게 속아서 술 팔다 걸리면..무서워 죽겠다"

한정수 기자 2018. 4. 21.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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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 [Law&Life-술마시는 10대, 억울한 사장님 ①] "'미성년자' 무기삼아 가짜 신분증에 신고 협박까지..억울함 없도록 제도 개선해야"
그래픽=이지혜 기자


"무서워 죽겠어요. 얼굴만 봐서는 청소년인지 성인인지 알기가 어렵잖아요. 바빠 죽겠는데 일일이 신분증 검사를 하기도 어렵고… 위조한 신분증을 들고 다니는 아이들도 있거든요. 걸리면 무조건 영업정지니까, 최대한 조심해야죠."

서울 동대문구의 한 대학가 인근에서 주점을 운영하는 박모씨(31)의 말이다. 만 19세 미만의 미성년자에게 술을 파는 것은 범죄다. 업주는 형사처벌과 함께 영업정지 등의 행정처분도 받는다. 그러나 미성년자는 이렇다 할 처벌을 받지 않는다. 이 같은 제도가 불합리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미성년자들이 이를 악용하는 일이 일어나면서다.

청와대 국민청원도 등장했다. 자신을 '지호 엄마'라고 소개한 한 여성은 지난 10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불합리한 식품위생법 개정과 청소년 음주 관용에 대한 청소년보호법 개정을 위한 국민청원'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려 술을 산 청소년도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8일 현재까지 2만여명이 동의했다.

이 글에서 그는 자신과 남편이 운영하는 술집에서 손님들끼리 싸움이 벌어져 경찰에 신고를 하려하자 한 미성년자가 신고하지 말라고 협박을 한 사연을 소개했다. 고민 끝에 결국 신고를 했지만 자신들만 69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받고 미성년자는 훈방된 일을 지적하며 "이게 옳은 일인지 법조인과 정치인, 국민들에게 묻고 싶다"고 적었다.

◇ '속아서' 술 팔아도 업주는 영업정지, 미성년자는 처벌 안돼

미성년자에게 주류를 판매하면 청소년보호법에 따라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이것이 끝이 아니다. 지방자치단체는 1차 적발시 영업정지 2개월, 2차 적발시 영업정지 3개월, 3차 적발시 허가 취소나 영업소 폐쇄 처분을 내린다. 영업정지 처분을 과징금으로 대체할 수도 있다. 과징금은 1년간의 매출액 등에 따라 산정된다.

문제는 교묘히 업주들을 속이는 미성년자들이다. 위조한 신분증을 사용하기도 한다. 자신과 얼굴이 비슷한 형이나 언니의 신분증을 사용하거나, 숫자 '8'자를 칼로 긁어내 '3'자로 바꾸는 식이다. 한국외식업중앙회에 따르면 미성년자들이 술을 마신 뒤 "술값을 낼 수 없다"며 신고 협박을 하거나, 경쟁 업체에서 미성년자를 잠입시킨 뒤 신고를 하는 사례도 있다.

속아서 미성년자에게 술을 판 업주들은 억울한 처벌을 받을 수 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CCTV 등을 통해 신분증 확인 등을 제대로 한 사정이 참작돼 검찰에서 무혐의나 기소유예 처분을 받게 되면 행정처분 역시 10분의 9까지 감경될 수 있다. 2개월(60일)의 영업정지 처분이 6일로 줄어든다는 뜻이다. 만약 이 처분을 받아들일 수 없다면 행정심판이나 소송 등을 제기해야 하는데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어 대부분의 업주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처분을 받아들이는 경우가 잦다.

반면 미성년자가 처벌될 가능성은 매우 낮다. 현행법상 미성년자가 술을 마신 행위를 처벌하도록 규정한 법은 없다. 다만 신분증을 위·변조하는 것은 공문서위조죄에 해당해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해질 수 있다. 또 미성년자가 술을 마신 뒤 업주에게 돈을 낼 수 없다며 신고 협박을 하는 것은 공갈죄에 해당한다는 의견이 있다. 공갈죄의 법정형도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이다. 그러나 실제 처벌까지 이어지는 경우는 적다.

◇ "형사처벌 면한 억울한 업주는 행정처분 면제해줘야" 입법 논의중

업주를 속이고 술을 마신 미성년자도 처벌해야 한다는 주장이 거세지는 것은 이런 맥락에서다. 경찰 관계자는 "술·담배 등을 구입하기 위해 청소년들이 신분증을 위조해 사용하는 일이 적발되면 대부분 '다음부터는 그러지 말라'는 정도로 타이르고 돌려보내는 경우가 많다"며 "사회통념상 청소년들의 일탈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경향이 있어서인 것 같다"고 말했다.

술을 구입한 미성년자를 처벌하는 규정을 신설하는 것이 가능할까. 앞서 18대 국회에서 술을 구입한 미성년자에게 사회봉사를 하도록 하는 방향으로 논의가 이뤄졌지만 무산됐다. 청소년은 보호해야 할 대상이라는 이유에서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유해한 매체물과 약물 등이 청소년에게 유통되는 것 등을 규제하기 위한 취지로 제정된 청소년보호법이 존재하는 한 처벌 규정을 신설하는 것은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미성년자를 처벌한다고 해서 억울한 업주들이 줄어들 것인지도 의문"이라며 "형사정책적 논의가 충분히 이뤄져야 할 사안"이라고 덧붙였다.

이런 가운데 미성년자에게 속아서 술을 팔았다가 형사처벌을 면한 업주들에 대한 행정처분을 면제해주자는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한국외식업중앙회 관계자는 "현행 제도 하에서 행정처분을 감경받을 수 있지만 하루 매출이 50만원 안팎인 소상공인 입장에서 6일간의 영업정지도 매우 큰 타격"이라며 "억울하게 피해보는 업주들이 없도록 제도가 개선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서영교·김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7월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식품위생법 개정안을 각각 대표발의해 현재 소관 상임위인 보건복지위원회의 심사가 진행 중이다. 국회 관계자는 "해당 개정안이 행정처분의 감경 뿐 아니라 면제를 할 수 있도록 해 선량한 업주들을 두텁게 보호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며 긍정적인 의견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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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수 기자 jeongsuha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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