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드루킹이 전부 아니다, '文빠'들의 댓글부대

권승준 기자 입력 2018. 4. 21.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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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y 잠금해제] '文빠'들이 여론을 움직이는 법
팔로어 1만명 넘는 '네임드'
불법 매크로 사용 안해도 정부 비판 기사 공유하면
문빠들이 몰려가서 공격
네임드 드루킹의 구속
인사청탁 거절당한 뒤 反정부 입장으로 바꿔
다른 네임드 문빠들이 드루킹 제보했단 소문도
일러스트 이철원 기자


"여기 1번, 5번 '베댓(최다 공감 댓글)' 두 개만 내리면 됩니다."

지난 18일 오후 6시 트위터에 이런 글과 함께 기사 링크 하나가 올라왔다. '키드갱'이란 이름의 트위터 이용자가 올린 기사는 문재인 대통령이 이날 반부패 정책협의회를 주재하면서 "그간 관행으로 여겼던 것도 국민 눈높이에 맞게 개선해야 한다"고 발언했다는 보도였다. 그가 지적한 '베댓'은 2000여 개의 공감을 받은 것으로, "김기식을 감쌀 때도 그놈의 관행이셨다면서요" "거의 유체 이탈 화법이시네. 김기식, 김경수 등은 대체"라는 비판 댓글이었다. 하지만 키드갱이 링크를 올린 지 2시간 뒤 이 두 댓글은 다른 것으로 대체됐다. 둘 다 "국회의원 전수조사 가자"는 내용으로, 김기식 전 금융감독원장처럼 피감 기관 돈으로 출장 간 야당 의원들까지 조사하란 취지였다. 같은 날 '우라꽝'이란 이름의 트위터 이용자는 안철수 바른미래당 서울시장 후보가 대선 당시 제보 조작 사건으로 복역 중인 이유미씨와 함께 찍은 사진과 함께 "안철수는 면회라도 가라. 진짜 사람 쓰고 이렇게 버리는 것 아니다"라고 쓴 글을 공유했다. 이른바 '드루킹'이란 이름으로 활동한 김모(49)씨 일당을 민주당과 문재인 대통령도 알고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에 대한 일종의 역공(逆攻)이었다. 안 후보가 제보 조작 사건에 대해 "알지 못했다"고 해명한 것을 빗댄 것이었다. 이 글 역시 100회 넘게 공유됐고 안 후보를 비난하는 댓글도 줄줄이 붙었다.

최근 드루킹을 중심으로 한 민주당원들의 댓글 조작 사건이 터지면서, 여당 지지자들의 댓글 여론전 행태가 다시 한 번 도마에 올랐다. 매크로 프로그램 같은 불법이 아니라 하더라도 사실상 조직이나 마찬가지인 댓글 부대들이 활동하면서 정부에 우호적 여론을 조작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의혹의 중심에 드루킹 같은 인물들이 있다.

정부 비판 댓글 내리고, 이재명 공격하고

키드갱과 우라꽝 모두 트위터에서 활동하는 이른바 '네임드 문빠(잘 알려진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라는 뜻의 은어)'다. 둘 외에도 '엄지와지원이' '리맹빵' 'Luna' 등이 네임드 문빠로 분류된다. 드루킹처럼 실명 대신 닉네임을 쓰고 소셜미디어를 거점으로 문 대통령과 민주당 지지 활동을 펼치는 이들이다. 모두 팔로어가 1만~2만5000여 명에 이를 정도로 많기 때문에 트위터에서 주로 여론전의 선봉 역할을 맡는다. 포털사이트에 올라온 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의 여권 관련 기사 중에서 우호적인 기사를 골라 링크하는 건 기본이다. '악플'이 많이 달린 기사를 골라낸 뒤 "악플밭이다" "얼른 와서 '선플(우호적 댓글)' 다는 것 도와달라"고 독려하거나, 정부 비판 기사에 '비공감'을 눌러 포털사이트 메인 화면에 노출되는 것을 저지하자고 선동하는 것도 이들의 주요 임무다. 이런 키드갱 같은 '네임드 문빠'들은 하루 평균 10~20개의 기사를 공유하고, 댓글 여론전을 독려하는 글을 수시로 올린다.

이들이 선도하면 그 뒤를 이어 '달빛기사단' '더민주' 같은 단어를 닉네임으로 쓰는 이들이 이 글을 수십~수백 회씩 공유하며 퍼 나른다. 문 대통령 지지 카페인 '문팬'에 가입해 작년부터 활동 중이라는 이모(33)씨는 "'네임드'들이 '좌표'를 찍어준 기사에 들어가서 댓글을 다는 게 중요한 일과 중 하나"라며 "지지자 대부분이 기사를 항상 모니터링할 수 없기 때문에 활발하게 활동하는 리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본지가 지난 1주일간 이렇게 여론전의 대상이 된 기사 10개를 무작위로 골라 시간대별로 분석해 봤다. 10개 모두 처음에는 정부 비판 댓글이 '베댓'이었고, 공감보다 비공감이 더 많았지만, 여론전의 대상이 된 후 그중 9개는 전세가 역전돼 공감이 많아지고 우호적인 댓글이 '베댓'에 등극했다.

이들은 특정 후보의 선거운동도 서슴지 않는다. 지금 이 '문빠'들의 과제는 민주당의 경기도지사 후보로 이재명 전 성남시장을 누르고, 문 대통령 측근 중 하나인 전해철 의원을 내세우는 것이다. 경쟁 후보인 같은 당 이재명 전 시장의 아내가 '혜경궁 김씨'라는 이름으로 트위터에서 반문(文) 활동을 했다는 의혹을 집중 제기하는 것도 이들 그룹이다.

제2의 드루킹은 누구?

드루킹 역시 이런 '네임드 문빠' 중 하나였다. 이들은 이전부터 서로 존재를 알고 인터넷상에서 의견 교환도 한 것으로 보인다. 작년 대선 이전부터 문 대통령 지지자들은 소셜미디어와 각종 커뮤니티, 카카오톡 등 메신저상에서 지금과 비슷한 형태의 댓글 여론전을 벌였다. 당시 홍준표·안철수 후보 등 다른 캠프와 지지자들이 이들의 조직적 활동을 지목하며 댓글 부대라고 비판했다. 그중 '문팬' 회원 14명은 팬카페 게시판 등에서 상대 후보에 대한 댓글 공격 등을 선동한 혐의 등으로 당시 국민의당에 고소당했고, 드루킹도 그중 한 명이었다.

드루킹은 자신의 인사 청탁이 거절당한 후 반(反)정부 입장으로 선회하면서 다른 문빠들과 갈등을 빚었다. 키드갱 등 다른 '네임드 문빠'들의 공격 대상이 된 것이다. 지난 3월 이미 댓글 조작 혐의로 경찰 수사 선상에 올랐던 드루킹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내가 왜 안희정 옹호 댓글을 달겠느냐"며 "키드갱, Luna 너희들 내가 꼭 잡아서 고소한다"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이 때문에 드루킹을 제보한 것이 이들이 아니냐는 말도 나왔다.

지난 13일 매크로 프로그램을 이용한 댓글 조작 혐의로 드루킹이 구속됐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기 1~2일 전부터 소셜미디어의 '문빠'들 사이에선 드루킹이 잡혀갔다는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당시는 사건의 전모는 물론, 범인의 신원도 밝혀지기 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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