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삶]파월장병 시각으로 본 '베트남 과거사' 매듭 풀기

김유진 기자 입력 2018. 4. 20. 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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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빈딘성으로 가는 길
ㆍ전진성 지음 | 책세상 | 280쪽 | 1만4800원

지난 3월 11일 베트남 꽝남성 하미학살 50주기 위령제에서 주민들이 참배하고 있다. 한베평화재단 홈페이지

지난 3월23일 베트남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은 쩐 다이 꽝 베트남 국가주석을 만나 “우리 마음에 남아 있는 양국 간의 불행한 역사에 대해 유감의 뜻을 표한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의 이 발언은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에 대한 사과로 받아들여졌다. 1964~1972년 사이 베트남에 파병된 한국군 병력은 31만명으로, 이 기간 한국군에 의한 학살은 80여건, 피해자 수는 9000여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상 대통령의 발언을 들여다보면 ‘무엇’에 대해, ‘어떻게’ 사과한다는 것인지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양국 간의 불행한 역사’라는 두루뭉술한 표현은 학살의 책임 주체나 발생 원인, 피해 규모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는다. 문 대통령은 당초 좀 더 명시적으로 사과를 표명하려고 했지만, 베트남 측이 한국 정부 차원의 공식 사과에 난색을 표하면서 외교에서 우회적 사과를 나타내는 ‘유감’이라는 단어를 썼다고 한다. 하지만 책임 소재가 빠진 ‘사과’는 베트남전 시기 민간인 학살 문제를 대하는 한국 사회의 현주소를 여실히 드러낸다.

<빈딘성으로 가는 길>의 저자인 전진성 부산교대 사회교육과 교수는 한국 사회에 “한겨울 그림자”처럼 드리운 베트남전의 기억을 ‘가해자’인 참전군인과 가족의 관점에서 되짚는다. 저자는 “고단한 삶을 마친 전사자들에 대한 애도와 아직도 반공주의 폭력을 두둔하는 재향군인들에 대한 도덕적 비판 사이에서” 그들을 이해하려고 시도한다. ‘가해자 역시 피해자’라는 단순한 논리로 이들을 두둔하기 위해서는 결코 아니다. 그보다는 당사자들이 직접 대화의 장에 나설 때야말로 진정한 사과와 화해가 가능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민간인 학살 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군과 참전 용사들은 ‘상황논리’로 대응했다. 게릴라전의 특성상 ‘베트콩’과 ‘양민’을 구분하기가 어려웠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생존자들의 증언이나 문서, 현장 발굴 자료 등을 볼 때 엄청난 살육이 ‘작전’의 이름으로 저질러졌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저자는 참전군인들이 “살인마와 용병이라는 누명이 자신의 명예를 훼손시키고 있다는 피해의식, 자신의 삶을 짓눌러온 고통이 조국을 위한 숭고한 희생의 증거라는 자기만족적인 기억”에 사로잡혀 진실을 외면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들의 ‘자기모순적’ 태도는 우리 사회가 베트남전을 기억하는 방식에서 유래한다고 볼 수 있다. 베트남전은 처음부터 끝까지 “국가를 위한, 국가에 의한, 국가만의 기억”만으로 남아 있다. 참전으로 치러야 했던 엄청난 희생은 파병의 대가로 얻은 ‘경제적 실익’으로 정당화되었다. 파월 장병들 스스로도 국가주의적 사고를 내면화했다. 그 자신이 국가에 의해 동원된 군인이었고, 고엽제 후유증으로 대표되는 전쟁의 참상이 자신의 몸에 고스란히 새겨져 있음에도 ‘파병은 옳았다’는 논리에 순응한 것이다.

월남전 참전을 기념하는 각종 기념물도 “냉전 논리에 고착된 한국적 추모문화의 한계”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강원도 화천의 ‘월남 파병용사 만남의 장’에는 기념관, 피크닉장, 현지 터널 모형, 월남전통마을, 훈련체험장 등이 들어서 있다. 저자는 “일종의 놀이공원처럼 조성된 그 넓은 대지 어디에도 피 맺힌 혼령이 머물 만한 곳은 없다”며 “철저히 자기만족의 공간일 뿐 타인의 죽음에 대한 어떠한 애도의 노력도 찾아볼 수 없다”고 지적한다. 베트남 주민들이 한국군의 학살 현장에 자발적으로 세운 ‘증오비’가 “떠도는 혼령들이 발언하는 공간”으로 기능하고 있는 것과는 상반된 모습이다.

“1948년 4월 제주와 1980년 5월 광주 사이에 빈안사와 퐁넛·퐁니·퐁룩이 자리 잡고 있다.” 베트남전 시기 민간인 학살이 일제강점기부터 이어진 폭력의 자장 아래 놓여 있다는 의미다. 빈안사(현 떠이빈사)는 책의 제목인 베트남 중남부의 빈딘성의 마을이다. 한국군은 1966년 1월23일~2월26일 마을 주민 1000여명을 학살했다. 꽝남성 퐁넛·퐁니는 국제사회의 공분을 산 미군의 밀라이 대학살보다 앞서 1968년 2월 한국군에 의해 학살이 저지러진 곳이다. 퐁넛·퐁니 마을과 하미 마을 사건의 생존자들은 21~22일 서울에서 열리는 ‘베트남 전쟁 시기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진상규명을 위한 시민평화법정’에 출석해 피해를 증언한다.

저자는 “가해자의 자리에서 속죄하겠다는 결단이야말로 가해자와 피해자의 악연을 끊는 유일한 길이며, 가해자가 자신의 기억과 인격을 되찾는 길이다”라고 거듭 강조한다. 상당수 참전군인들이 학살에 대한 정부 차원의 공식 사과 자체를 반대하는 상황에서, 저자의 주장처럼 그들이 스스로 사과의 자리에 나서기를 기대하는 것은 아직까지 요원해 보인다. 그럼에도 “사법적·도덕적 심판에 앞서 좀 더 풍부하고 섬세한 역사적 논의”가 필요하다는 저자의 주장은 반공 이데올로기와 국가주의의 희생양인 동시에 가해자인 참전군인들을 입체적으로 이해하는 길을 열어둔다.

<김유진 기자 yj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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