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굽는 오븐]충만한 삶, 아름다운 울림

백수린 소설가 입력 2018. 4. 20. 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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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가문비나무의 노래
ㆍ마틴 슐레스케 지음·유영미 옮김 |니케북스 | 232쪽 | 1만3000원

누구에게나 마음이 유난히 시끄러운 날들이 있지요? 어디서 누구와 있든지 간에 내 마음의 아우성이 모든 소리를 압도해 고통스러운 날들이오. 저는 요사이 그런 날들을 지나왔습니다. 여유는 조금도 없고 오로지 자책과 후회만 가득한 그런 날들을 말이에요. 성난 짐승이 걸어 다닌 발자국처럼 마음이 그렇게 어지러울 때 가만히 펼쳐보면 도움이 되는 책들이 있습니다. 독일의 바이올린 장인인 마틴 슐레스케가 지은 <가문비나무의 노래>가 바로 그런 종류의 책입니다.

마틴 슐레스케는 독일의 슈투트가르트에서 태어나 일곱 살 때 바이올린을 배운 이래 평생 바이올린 곁에 머물며 살아온 사람입니다. 그는 바이올린 장인이 되어 뮌헨의 작업장에서 현악기들을 만들며 살고 있지요.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오스트리아 화가 프리덴스라이히 훈데르트바서의 어떤 작품에서 다음과 같은 구절을 발견합니다.

“우리에게는 이제 생명에 관한 비유를 만들어 낼 능력이 없다. 내적 깨달음을 얻기는커녕, 더는 우리 주변이나 우리 안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해석할 능력이 없다. 이로써 우리는 하느님의 형상이기를 그만두었다. 우리는 그릇되게 살고 있다. 우리는 죽었다. 그저 오래전에 썩어 버린 인식을 갉아먹고 있을 따름이다.”(5쪽)

<가문비나무의 노래>는 이 구절에서 영향을 받은 마틴 슐레스케가 바이올린을 제작하는 동안 그에게 떠오른 생각들을 놓치지 않고 나름의 방식으로 해석해 얻게 된 내적 깨달음을 기록한 책입니다. 고지대에서 척박한 환경을 이기고 단단하게 자란 가문비나무를 찾은 후 바이올린을 만들기 위해 다듬고 칠하는 일련의 과정 속에서 슐레스케는 보물을 찾듯이 인생에 대한 비유를 발견합니다. 대립적인 특징을 함께 가져야만 좋은 울림을 낼 수 있는 바이올린의 음색을 들으며 ‘모순’이 있는 인간의 삶과 영혼이 지닌 아름다움에 대해서 사유하고, 저마다 다른 공명을 갖는 악기들을 보면서 사람들 역시 각자의 공명을 발견해내고 자기 자신을 존중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깨닫지요.

사실 저는 조언이나 잠언으로 가득한 책을 그다지 좋아하는 편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문비나무의 노래>가 제 마음을 움직인 것은 저자가 바이올린을 만드는 태도 때문입니다. 공명판이 만들어진 상태를 존중해가며 작업을 진행하고 나무와의 대화를 통해 곡면을 어떻게 만들지 결정하는 그의 매일매일은 마치 구도자의 일상처럼 경건합니다. 아마도 그 탓이겠지요? 오랜 시간 동안 숙성시켰다가 구워야 하는 ‘깡빠뉴’ 빵처럼 소박하지만 풍미 깊은 그의 문장들을 읽어 나가다 보면 그의 말마따나 인생이라는 순례는 바이올린이 탄생하는 과정과 닮은 것도 같아요. 때로는 반복되는 좌절과 두려움이 우리를 지치게 하지만, 우리는 결국 어둡고 추운 숲에서 조용히 빛을 향해 위로 뻗고 아래쪽 가지들을 스스로 떨굴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각자 저마다의 깊고 아름다운 울림을 만들어갈 소명을 지닌 채 태어난 가문비나무들이기 때문입니다.

<백수린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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