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른 나가소" '공포성지' 곤지암 주민을 더 두렵게 하는 것

김화정 2018. 4. 20. 15:47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영화 '곤지암'의 촬영 장소인 구 해사고 폐교 건물의 담을 넘는 사람들. 안지혜·이대홍 인턴
“아들(아이들) 데리고 여길 와 들어오노, 얼른 나가소”

취재진을 태운 택시가 폐교 철문에 들어서자마자 관리자가 새된 소리를 지르며 달려왔다. 지난 12일 방문한 영화 '곤지암'의 촬영지인 부산 구 해사고 건물은 대낮인데도 을씨년스러웠다. 몇 년 간 제대로 보수되지 않아 쓰러져 가는 낡은 벽엔 녹슨 철조망이 둘러져 있었다.

이곳은 부산 해사고가 2007년 학교를 이전하면서 버려진 건물이 됐다. 폐교 특유의 괴기스러운 모습 덕에 10년간 영화 촬영장소로 종종 이용됐다. 3년 전 예능 ‘무한도전’이 이곳을 배경으로 만든 에피소드가 히트를 쳤고, 최근엔 관객 300만을 눈앞에 둔 영화 ‘곤지암’이 흥행하면서 공포체험의 성지로 더 유명해졌다.

취재진을 보자마자 고함을 질렀던 관리자는 취재차 왔다는 설명에 경계심을 풀었다. 관리자와 함께 음산한 폐교 건물 구석구석을 걸었다. 그 자체로 엉망인 건물은 마음대로 침입하는 사람들 탓에 더 처참하게 변해가고 있었다.

무단침입자들의 '벽돌 투척'으로 깨져 있는 폐교의 유리창. 안지혜·이대홍 인턴
“원래 폐교라서 망가진 게 아니에요. 문이란 문은 마음대로 들어온 사람들이 다 깨놨어요. 여기가 후문이거든요. 묶어놓으면 애들이 다시 파손하고, 이튿날 다시 묶어놓으면 저녁에 또 파손하고 매번 그래왔어요. 어떻게 막아보려해도 애들이 서로 받쳐주고 당겨주고 갖은 수를 써서 다 들어와요.”

마침 4명의 대학생들이 담 바깥에서 폐교 안을 기웃거리다가 사라지자 관리자는 한숨을 쉬었다. “저런 애들이 주로 어떤 타입이냐면, 낮에 와서 스케치를 해놨다가 침투 루트를 보고 밤에 다시 와요.”

촬영지를 지키는 주간 관리자가 현장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안지혜·이대홍 인턴
건물 내부를 걷던 관리자가 복도 바닥에 깨진 유리를 가리켰다. 사람들이 돌을 던져서 깨진 것이라고 한다. 깨진 유리 옆엔 침입자가 던진 것으로 추정되는 콘크리트 벽돌이 떨어져 있었다.


먼저 들어가려 몸싸움 벌이는 침입자들
오후 7시, 주간 관리자가 퇴근하고 야간 관리자 부부가 출근했다. 이들의 말에 따르면 방문객은 밤 10시부터 조금씩 나타나기 시작한다. 젊은 사람부터 나이든 사람까지 연령대는 다양하다고 한다.

이들은 “원래 밤 7시부터 12시까지만 경비를 서면 되지만 사람들이 계속 (담을) 넘어오고 떠드니 안 나와볼 수가 없어요”라며 “결국 새벽 3~4시까지 잠을 못잘 때가 많고, 심지어 5시를 넘겨서 찾아오는 경우도 있어요”라고 말했다.

경비일지에는 무단침입한 사람들에 대한 조치 내역이 적혀 있었다. 안지혜·이대홍 인턴
폐교에 도착한 사람들끼리 몸싸움이 일어나는 경우도 흔하다고 했다. 서로 건물에 먼저 들어가려고 싸운다는 것이다. 관리자는 “들어가지 말라고 얘기해도 말을 듣지 않아요”라며 “새벽 2시에 온 어떤 사람은 '같이 들어가면 100만원을 주겠다'고도 했어요”라고 전했다.

인근 주민들의 고충도 심각하다. “담을 넘다 철조망에 다리를 베여 119를 부르는 사람도 있다” “술 먹고 주민들에게 욕을 하는 등 막무가내인데 참 못됐다”는 반응은 예사다.


“저희 '곤지암2' 찍을 거예요”
허가 없는 출입이 금지된 곳이지만 무단으로 담을 넘는 광경은 흔히 볼 수 있다. 안지혜·이대홍 인턴
밤 10시 15분 경이 되자 승용차 한 대가 들어오더니 20대 초반의 남녀 5명이 내려 담장 옆을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어떻게 오게 됐냐고 물으니 “저희 곤지암2 찍을 거예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들 중 가장 덩치가 컸던 한 남성은 “내가 앞에서 어그로(주목) 끌테니까, 너희가 철창으로 들어가라”며 역할 분담을 제안했다. 이들이 도착한 지 20분도 지나지 않아 다른 무리들도 나타나 차에서 내렸다.

이후 이들은 함께 담을 넘어 관리자가 지키고 있는 폐교 내부로 들어갔다. '사전 허가 없는 출입 및 사용을 금한다'는 경고문은 무색하기만 했다.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곤지암 정신병원 터에 걸린 접근금지 경고문. 안지혜·이대홍 인턴
영화의 실제 모티브가 된 곤지암 정신병원 터의 상황은 어떨까. 경기도 광주 곤지암읍의 정신병원 터 주변에는 굳게 닫힌 철문과 폐쇄회로TV(CCTV), 접근 금지 경고문이 빼곡했다.

부산 폐교 주민들은 최근 들어 고충을 겪고 있지만 이곳 주민들은 이미 수년 전부터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아왔다. 부동산 소유자가 '지역 이미지 훼손'을 이유로 영화 제작사에 소송까지 냈던 터라 주민들은 외지인의 접근에 예민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소연이라도 늘어놓던 부산 촬영지 주민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다. 아무 말 없이 손짓으로 나가라는 제스처를 취하거나 “사유지니까 오지 말아라”는 대답만 돌아왔다.

'곤지암 정신병원'이라는 말에 얼굴이 굳어지는 건 지역 경찰도 마찬가지였다. 주민들이 예민하게 구는 것이 당연할 수밖에 없다는 반응이다. 한 경찰관은 “사유지다 보니까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순찰을 돌거나 (외부인의 접근으로 인한) 신고가 들어오면 찾아가 귀가조치를 시킬 뿐이다”라고 말했다.

이정봉·김화정·안나영 기자 mole@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