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Fifty+ >"다시 태어나도 非婚".. 77년째 '명랑·당당'

김수민 기자 2018. 4. 20.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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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초로 독신 여성 모임을 만든 비혼주의자 김애순 씨가 지난 12일 경기 고양 일산의 한 공원에서 벚꽃을 바라보며 미소 짓고 있다. 김선규 기자 ufokim@

비혼주의자 김애순 씨

본래 외롭게 태어나 외롭게 죽어… 외로움은 모두의 숙명

異性 밝히는 사람들은 독신으로 살지 마… 그냥 결혼해요

친구 없으면 사막처럼 삭막… 관계는 비혼의 사회적 자산

꼭 비혼 하라는 게 아니라 자기 주관대로 살면 후회 없어요

“본래 외롭게 태어나서 외롭게 죽는 거야. 둘이 같이 죽는 건 아니잖아. 외로움은 모두의 숙명이죠.”

비혼주의자 김애순(77) 씨는 비혼에 대한 인식이 지금보다 훨씬 박하던 1990년대에 최초로 독신 여성 모임을 만들었다. 1994년에는 수필집 ‘독신! 그 무한한 자유’를, 2002년 ‘독신! 그 멋과 매력’을 썼다. 2015년엔 평소 소신을 담은 ‘싱글들의 파라다이스’를 펴냈다.

저출산 시대, 비혼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지대해지면서 김 씨는 최근 언론 인터뷰는 물론 라디오·TV 출연까지 잦아졌다. 그렇다 보니 50년 아래인 큰언니의 손녀에게조차 ‘싱글들의 왕언니’로 유명인사가 된 그다. 지난 12일 경기 고양시 한 카페에서 그의 명랑한 ‘비혼 철학’을 들었다.

77년 차 비혼주의자인 그는 “늙어서 외롭다” “아플 땐 어떡할래” “혼자 죽으면 어쩌냐”는 협박에 어떻게 대처할까. “남편과 자식이 울타리래요. 그까짓 울타리 있어도 그만이지만, 없느니만 못한 사람도 많잖아요. 나는 스스로가 내 울타리 노릇을 하기 때문에 더욱 떳떳하고 당당한 거예요. 아플 때 외롭지 않냐고요? 당연히 외롭죠. 그렇지만 어차피 누가 같이 아파 줄 순 없어요. 혼자 아픈 거죠. 또 사람은 원래 외로워요. 자식들 시집·장가로 떠나보내면 외롭고, 늙은 부부 중에 하나 죽으면 더 외롭죠.”

그렇다고 비혼 생활이 마냥 만만한 건 아니다. 김 씨는 “비혼은 결혼의 도피처가 아니다”라고 강조한다. 튼튼한 건강은 물론 일상을 꾸려나갈 경제적 자립능력도 있어야 한다. 혼자 살 수 있을 정도의 ‘정신 내공’은 필수다. “이성을 너무 밝히는 사람들은 독신으로 살지 마요. 그냥 결혼해요! 물론 비혼이라 해도 건전한 사랑은 좋죠. 사랑은 인간의 기본 감정이니까요.”

1941년생인 그는 “연애보다 사회를 위해 살고 싶다”는 꿈을 안고 건국대 정치외교학과에 진학했다. 어린 시절 끊임없이 외도를 해 어머니에게 상처를 준 아버지가 그의 결심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친척들이 결혼 관련 잔소리를 늘어놓으려 하면 어머니는 항상 “쟨 쟤 혼자 알아서 잘해요”라고 막아주셨다. 대학 재학 중 학생운동으로 옥고를 치르기도 했고, 공무원으로 시작한 사회생활은 국회의원 비서관, 월간지 기자, 시민단체 활동가 등으로 이어졌다. 남부러울 것 없는 이력의 커리어우먼이었지만, ‘미숙한 미혼 여성’ ‘인간 미성년자’로 취급받지 않기 위해 애써야 했다. “남보다 늦게 자도 오전 5시엔 일어났어요. 할 일이 많으니까요. 월간지 기자로 일할 땐 내 몫은 마감 시간 전에 일찌감치 끝내놓고 남자들 할 일을 도와줬어요. 어느 일터에서나 ‘없으면 안 되는 존재’가 되기 위해 노력했어요. 그럼 절대 감히 만만하게 못 대하죠.”

그의 부지런함은 한결같다. 요즘도 요가를 하고 신문을 읽는다. “신문은 내 애인이에요. 재작년까지만 해도 북한산을 한 주에 한 번 정도 올랐어요. 지금 무릎을 살짝 삐끗해서 그렇지 요즘도 하루에 5000보는 걸어요.” 아이들 봉사도 꾸준히 한다. “애들을 너무 좋아해요. 은퇴하곤 기초생활수급대상자 자녀를 대상으로 한 방과 후 교육을 했어요. 지금은 어린이 박물관에서 숲 체험 봉사를 하고 있어요. 아이들 보면 예뻐서 얼굴을 비비고 껴안고 그래요.” 혹시 아이를 낳고 싶었던 적은 없을까. 그는 손사래를 치며 답한다. “어휴, 밤에 잠 못 자고 아기 재우고. 저는 못해요. 잠깐이 예쁜 거죠.”

행복한 비혼 생활을 위해 김 씨는 다양한 인간관계를 가질 것을 강조한다. “친구가 없으면 사막처럼 생활이 삭막해져요. 관계는 비혼의 사회적 자산이에요. 혼자 산다고 형제·자매·사촌 버리지 말아요. 자기의 존재를 적극적으로 알리는 게 좋죠. 가급적 남들에게 인정받고 존중받는 게 행복하잖아요. 식도락 친구, 영화 친구, 등산 친구 등 뭐든 함께할 수 있는 친구도 많아야 돼요.”

1990년 한국여성한마음회를 결성하게 된 계기도 비슷하다. 혼자 사는 여성에 대한 시선이 지금보다 훨씬 곱지 않던 시절, 결혼 압박에 시달리는 여성들에게 선배들의 경험을 나누고 자기 계발과 친목 도모를 함께 하겠다는 의도였다. 이들은 한 달에 한 번 회원 모임을 열고 명절이면 함께 여행을 떠났다. “명절날엔 온 가족이 ‘왜 결혼 안 하냐’고 난리잖아요. 우리끼리 차를 빌려서 여행을 떠났어요. 아침상 차려놓고 각자 고향 방향으로 큰절을 드려요. ‘불효의 앞잡이’였죠, 제가. 하하.”

친구와 나누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단 그는 요즘 유행하는 ‘비혼식’ ‘싱글웨딩’에는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다. 축의금이든 뭐든 주면 그만이지, 돌려받을 생각을 하는 게 너무 약삭빠르다는 게 김 씨의 생각이다. “젊은 친구들이 저한테 비혼식 축하 영상을 부탁했어요. 결혼을 안 하니 축의금을 돌려받고 그런다는 거죠. 제가 그런 소릴 하지도 말라고 했어요. ‘너 혼자 살다 언제 시집, 장가갈지도 모르는데 그 돈 돌려받을래?’라고 했더니 낄낄 웃더라고요. 줄 때는 깔끔하게 주고, 받을 생각을 말아라. 그거 없어도 못사는 거 아니잖아요.”

시종일관 유쾌하던 그에게도 ‘죽음’은 중요한 화두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뭘까. 김 씨의 고민은 깊다. “혼자 산다고 아무렇게나 하고 살면 안 되죠. 언제 갑자기 세상을 뜨더라도 가지런한 모습을 남기고 싶어요. 그래서 항상 방을 깨끗하게 치우고 외출하거나 잠들어요. 피곤해서 집을 정돈하지 못한 날엔 ‘오늘은 내가 죽을 날이 아니구나’ 한다니까요”라며 호탕하게 웃었다. 김 씨는 1994년에 이미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에 시신을 기증하기로 결정했다. 저출산 정책에 역행하는 비혼주의자가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요즘엔 늦어서 결혼 못 하고 그런 거 없으니까 초조하게 생각할 거 없어요. 백화점에서도 제일 좋은 물건은 맨 뒤에 놓고 늦게 팔리죠. 결혼을 일찍 한다고 행복하고 늦게 하거나 안 한다고 불행한 것은 아니에요. 꼭 비혼을 하라는 것도 아니에요. 하든 안 하든 자기 주관대로 살면 돼요. 전 후회 없어요. 다시 태어나도 비혼할 거예요.”

김수민 기자 human8@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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