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공학계 판도 뒤집을 '꿈의 소재'를 찾아라

2018. 4. 20.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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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지금 '신소재와의 전쟁'

[동아일보]

2016년 노벨 물리학상 시상식에서 마이클 코스털리츠 미국 브라운대 물리학과 교수가 상을 받고 있다. 그는 위상수학과 재료를 접목해 나중에 ‘양자물질’이라는 새로운 소재 분야에 영감을 줬다. 노벨위원회 제공

3월 말 테슬라의 전기자동차 모델 X가 충돌사고 직후 폭발했다. 전문가들은 2차전지(배터리)가 원인이라는 우려를 제기했다. 충전 성능을 높이기 위해 배터리 밀도를 높이는 과정에서 기계적 문제가 생겨 화재가 발생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용량 확장이 한계에 이른 현재의 리튬이온 배터리에 뾰족한 해결책이 없다는 사실. 전문가들은 가장 기초인 소재부터 확 바꾸지 않으면 해결이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장보윤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분리변환소재연구실장은 “폭발의 유력한 원인으로 꼽히는 배터리 내 전해질 누수를 막도록 고체전지를 개발하거나, 아예 용량을 확 키운 새로운 전극 소재를 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발전이 한계에 이른 과학, 기술 분야에서 소재가 구원투수로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연구와 산업의 ‘판’을 흔들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소재의 혁신이 필요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특히 수십 년간 장기적으로 쓸모를 고민해야 하는 ‘미래소재’가 과학, 공학의 판세를 바꿀 새로운 비대칭 무기로 주목받고 있다. 미국과 일본, 독일 등 소재 연구 역사가 100년이 넘은 강국들 역시 새로운 미래소재 개발 계획을 세우며 국가 연구개발(R&D) 역량을 키우고 있다.

미래소재는 물리나 화학, 재료, 전자공학 등 다양한 분야의 융합 기초연구를 통해 개발한 신물질을 말한다. 당장 쓸모를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엉뚱하거나 기이한 물질이 해당된다. 2016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양자물질이 대표적이다. 수학 중에서도 유독 어렵다는 위상수학을 재료에 접목해 자연에 존재하지 않는 특이한 성질을 지니는 소재로 개발했다. 박권 고등과학원 물리학부 교수는 “양자컴퓨터나, 전자의 자성까지 고려한 차세대 전자공학인 스핀트로닉스 등에 쓰일 수 있다는 제안이 있지만, 모두 장기적인 관점에서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라고 말했다.

비록 상용화에 10∼30년 이상의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일단 개발되면 전례 없던 시장이 열리는 것도 미래소재의 특징이다. 소재를 개발한 국가나 회사는 장기간 시장을 선점할 수 있다. 발광다이오드(LED)가 대표적이다. 오늘날 LED는 조명은 물론 스마트폰 등 디스플레이 시장을 점령했다. 하지만 1990년대 중반 일본 화학기업 ㈜니치아가 파란색 고효율 LED를 개발할 때만 해도 세상에 등장한 수많은 반도체 소재 중 하나일 뿐이었다.

빛 아티스트 베오 비욘드가 2013년 만든 발광다이오드(LED) 의상을 무대 공연자가 입고 있다. 베오 비욘드 제공

LED의 전성기는 약 20년 뒤인 2000년대 이후 활짝 열렸다. 전 세계 LED 시장 규모는 2015년 기준으로 약 41조 원으로 추정되는데, 초창기 개발사인 니치아가 시장의 14%를 단독으로 차지하고 있다. 김선재 세종대 산학협력단장(나노신소재공학과 교수)은 “한국이 디스플레이 완제품에서 승승장구하면서도 좀처럼 대일 무역적자를 해소하지 못하는 것은 원천이 되는 우리만의 미래소재가 없기 때문”이라며 “빠른 추격자 (Fast follower)전략을 버리고 장기 연구를 지원하도록 체질을 바꿔 미래소재를 육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과 독일, 일본 등 소재 선진국은 벌써 여러 해 전부터 장기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미국은 ‘재료 게놈 이니셔티브(MGI)’ 전략을 2011년 수립했다. 게놈(유전체)이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듯, 소재를 과학의 핵심 DNA로 보고 기초연구부터 상용화까지 집중 지원한다. 특히 개발 기간과 비용을 줄이기 위해 컴퓨터를 이용한 계산과학 기법을 적용하고 있다. 각종 물질의 실험 과정과 결과 등을 모두 데이터베이스화해서 궁극적으로는 실험을 직접 하지 않고도 새로운 물질을 만들 수 있게 하는 게 목표다. 바스프나 바이엘 등 소재 기업이 발달한 독일도 2015년 ‘소재에서 혁신으로’ 전략을 정부 주도로 수립했다. 환경과 에너지, 교통 분야의 소재 개발을 지원한다. 일본 역시 2012년부터 10년 계획으로 ‘신원소전략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한국은 걸음마 단계다. 2015년 마련된 ‘미래소재 디스커버리’가 처음이자 유일한 소재 중심 국가 과학기술 R&D 사업이다. 논문보다 국내외 특허 출원을 우선시하는 등 기술 중심으로 사업을 끌고 나가고 있다. 미국의 MGI같이 계산과학에 기반한 연구개발 플랫폼 역시 한국화학연구원과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등에서 연구 중이다. 앞으로는 주요 미래소재를 선정해 집중 육성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고위험 고가치’ 특성을 지니는 미래소재를 보다 성공적으로 발굴하기 위해 중복 연구를 허용해 다양한 아이디어를 발굴하고, 경쟁을 통해 소수만 살리는 ‘경쟁형 R&D’로 가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이진규 과기정통부 제1차관은 이달 16일 KIST에서 열린 ‘미래소재 원천기술 확보를 위한 간담회’에서 “기술 경쟁이 성숙 단계에 들어서면 소재가 경쟁력의 판을 바꾼다”며 “4차 산업혁명의 주무 부처로서 먼 미래를 바라보며 ‘앞서가는 전략’을 고민하겠다”고 말했다.

윤신영 동아사이언스 기자 ashill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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