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는 거품 같은 것.. 시를 너무 쉽게 쓸 순 없죠"

조용호 2018. 4. 19.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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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용주(58) 시인이 12년 만에 펴낸 네 번째 시집 '서울은 왜 이렇게 추운겨'(문학동네)에 수록된 '겨울밤'이라는 시편이다.

'찬물 먹고 숨을 쉰다' '내 아이는 어디 출신인가' '힘들 때만 쓴다' '거기까지 갔다 왔다' '세상 가장 낮은 말씀이시라' 등 5부로 나누어 58편을 수록한 이번 시집은 어린시절의 설화적인 고향과 자연, 나이 들어 돌아간 고향의 현재와 그곳 사람들, 지나온 노동의 시절에 만난 사람과 사연들, 세월호 참사를 되새기고 작금의 삶을 성찰하는 내용들로 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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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은 왜 이렇게 추운겨' 펴낸 유용주

“허리까지 쌓인 눈이/ 굽이치는 달밤이면// 나는/ 덕산 최생원 집 뒤안/ 왕대나무 가지에 반달곰 쓸개를 매달아/ 장안산 너머 사암리 냇갈까지 낚싯대를 던져놓고/ 매서운 바람의 파동을 귀기울여 듣고 있는데// 큰 산맥 너울이/ 두어 번 아부지 코골이 소리에 뒤척이자/ 아름드리 참나무 팽나무 서어나무 수초에 붙어 있던/ 산갈치들이 은빛 지느러미를 번뜩이며/ 일제히 솟구쳐오르다 미끼를 덥석 물고/ 깊이를 알 수 없는 구룡폭포 쪽으로 날아가는데// 찌르르/ 허공이 한번 달빛에 휘청/ 걸려 넘어진 것인데// 오줌똥 지리는 줄 모르고 끌어당기는 사이/ 감나무 둥치 통째로 쓰러지고/ 고라니 멧돼지 혼비백산 달아나고/ 아뿔싸!/ 측간 옆 마당에 파편처럼 떨어져 뒹구는 새벽별/ 줄 끊어먹은 산갈치는 은하수 밑으로 아스라이 숨어버리고/ 달의 구멍에서 쏟아져 나온 피리 소리// 언 들판에 낭자하다”

유용주(58) 시인이 12년 만에 펴낸 네 번째 시집 ‘서울은 왜 이렇게 추운겨’(문학동네)에 수록된 ‘겨울밤’이라는 시편이다. 왕대나무 가지에 반달곰 쓸개를 미끼로 달아 산맥 너머 냇가에 던져놓으니 산갈치들이 날아오르다 달빛에 걸려 그 미끼를 물었다는데, 그리하여 오줌똥 지리는 줄 모르고 끌어당기는 사이에 감나무는 통째로 쓰러지고 새벽별들은 파편처럼 떨어지고 그 사이에 줄을 끊어먹은 산갈치는 은하수 밑으로 숨어버렸단다. 설화적인 장쾌한 스타일이다. 유용주는 이런 장면들을 실제로 어린 시절 보았다면서 결코 ‘뻥’이 아니라고 뻥을 친다.

“단자를 가다 시퍼렇게 불 밝힌 호랭이 새끼를 본 적이 있다// 귀 달린 비얌을 본 적이 있다// 온몸이 검은, 파란, 붉은, 흰 비얌을 본 적이 있다// …// 나무를 하며 산갈치가 날아가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맑은 날 길을 걷다가 하늘에서 떨어지는 물고기를 잡은 적이 있다// …// 강이 흐느끼는 소리를 들었다// 산이 우는 소리를 들었다// …// 모든 노래가 한낮 그늘인// 지금은 사라져 다시는 볼 수도 들을 수도 없는”(‘뻥이라고 했다’)

유용주 시인은 ‘그러나 나는 살아가리라’는 산문집이 2000년 당시 인기 텔레비전 프로그램이었던 ‘느낌표’에 소개되면서 베스트셀러 작가로 대중에 알려졌다. 1991년 ‘창작과 비평’을 통해 등단한 그는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공부랍시고 책을 가까이 해본 적은 야간 검정고시 학원을 다닐 때 청계천 헌책방에서 구입했던 국정교과서를 덮은 것이 마지막이었고, 고금과 소총을 아울러 오로지 현장이 표지였고 중국집 배달통이 제목이었으며 접시닦이와 칼판이 차례였고 제빵공장 화부와 도넛부의 펄펄 끓는 기름솥이 서문”이었다고 그 산문집에 썼다. 이러한 사연이 대중의 인기를 얻은 요인의 일부였다는 사실을 그 또한 모르지 않는다. 2006년 세 번째 시집 ‘은글살짝’을 낸 이후 고향 장수로 돌아가 12년 동안 시 자체로 승부를 거는 절차탁마의 시간을 보낸 배경이다. 유용주는 “문학 하는 사람에게 인기는 비누 거품 같은 것인데 너무 쉽게 시를 쓰는 풍토에서 시간이 걸리고 남들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엄선된 작품으로 독자들을 만나고 싶었다”고 말했다.

‘찬물 먹고 숨을 쉰다’ ‘내 아이는 어디 출신인가’ ‘힘들 때만 쓴다’ ‘거기까지 갔다 왔다’ ‘세상 가장 낮은 말씀이시라’ 등 5부로 나누어 58편을 수록한 이번 시집은 어린시절의 설화적인 고향과 자연, 나이 들어 돌아간 고향의 현재와 그곳 사람들, 지나온 노동의 시절에 만난 사람과 사연들, 세월호 참사를 되새기고 작금의 삶을 성찰하는 내용들로 꾸렸다. 그는 “거기까지 갔다 왔다/ 세월호 얘기는 함부로 하지 말자// …//거기까지 갔다 왔다/ 세월호 얘기는 기억 속에서 하자/ 기억은 힘이 세다/ 기억은 죽어서도 늙지 않는다”(‘평범한 악’)고 쓰고 “나는 아직까지 저 개새끼처럼/ 처절하게 깨어 있는 시인을 본 적이 없다”(‘개보다 못한 시인’)고 기술한다. “나는 부산에서 태어나 여섯 살 때까지 살았다 여름에 아버지 본적지로 이사했다 어머니 고향은 여수 바닷가이다 …나는 아무런 잘못이 없었다 태어난 게 죄였다 우리 안의 편견과 선입견은 숨어 있다가 틈만 나면 튀어나온다 내 아이는 어디 출신인가”라고 묻는 시의 제목은 편견과 선입견이라는 ‘개 두 마리’다. 세월호 유가족과 함께 인천에서 팽목항까지 53일 동안 걷고 광화문에서 단식도 했던 그는 전북 장수군 교동리 아랫다리골에서 전화기 너머로 말했다.

“부모님 돌아가셨을 때도 잘 안 울었는데 세월호 아이들 때문에 너무 많이 울었습니다. 빚 갚는 어른들의 입장이야말로 문학을 지탱하는 힘이 아닐까요. 세월호는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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