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TPP·관세배제' 다 거부..아베, 잔인한 귀국길

서승욱 2018. 4. 19.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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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일 기자회견서 이례적 이견 부각
트럼프 "TPP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
아베 "미국은 FTA관심,최선은 TPP"
트럼프 회견서 "북한 비핵화까지 압박"
정작 회담에선 "신조,지금은 대화할 때"
日야당 "성희롱 차관 감싼 아소도 사임"
아소 사임하면 다음 타깃은 아베 불가피

아베 신조(安倍晋三)총리=“미국측은 2국간 자유무역협정에 관심을 갖고 있는 걸 알고 있다. 그래도 우리로선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가 양국에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18일(현지시간)기자회견하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UPI=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일본에 대한 미국의 무역적자 규모는 최소 690억달러로 엄청나다. 일본은 수백만대의 자동차를 미국에 수출하고 있지만 미국은 관세를 거의 매기지 않고 있다. 반면 미국 제품은 무역장벽때문에 일본에 거의 수출되지 않는다. 난 TPP에 돌아가고 싶지 않다.(일본과의) 2개국간 무역협정이 더 좋다.”

18일(현지시간)미국 플로리다주 마라라고 리조트에서 열린 미ㆍ일 정상 기자회견에서 나온 엇갈린 답변이다. 이는 “현 단계에서 일본이 철강·알루미늄 관세 대상국에서 빠질 가능성은 없느냐”,“양국의 무역관계는 TPP로 가는 거냐, FTA로 가는 거냐”는 일본 산케이 신문 기자의 질문에 대한 답변이었다.

이날 두 정상은 ‘미국 통상대표부와 일본 경제산업성이 양국간 자유롭고,공정하고,호혜적인 새 무역관계를 새롭게 논의한다'는 선에서 이견을 겨우 봉합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회견 내내 양국간 무역 불균형을 강조했다. 일본이 바라는 ‘TPP 복귀’엔 부정적인 입장을 분명히 했고, 일본이 우려하는 양국간 FTA에 대한 의욕을 드러냈다.

또 “미국의 중요한 무기가 동맹국에 하루라도 빨리 이전되도록 해야한다”,“미국만큼 (무기를)잘 만드는 나라는 없다”며 특유의 비즈니스맨 근성을 유감없이 드러냈다.

양국간 현안인 일본산 철강·알루미늄에 대한 관세 배제 문제는 진전이 없었다. 트럼프는 오히려 “그동안 수십억달러의 돈이 국고에서 유출되고 있었는데, 관세를 매기자 상황이 달라졌다. 공장이 생기는 등 엄청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고 자화자찬했다.
18일(현지시간)기자회견하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UPI=연합뉴스]

아베에게 주는 트럼프의 선물은 “일본인 납치 문제를 북ㆍ미 회담에서 거론하겠다”는 약속이 사실상 전부였다.

아베 총리를 ‘신조~’라는 이름으로 부르며 “납치문제에 정말 대단한 정열을 갖고 있다. 신조에겐 가장 중요한 문제다”,“납북자들이 일본으로 돌아오도록 최대한 노력하겠다”,“난 일본에 대해 강한 충성심을 갖고 있다”고 치켜세웠다.

아베 총리도 “트럼프 대통령의 말에 우리들은 용기를 얻었다. 납치 피해자 가족 어려분도 큰 용기를 얻었다”고 화답했다.

북한 문제에 대해 두 정상은 “과거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고, 북한이 비핵화되는 그날까지 최대한의 압력을 지속한다는 데 의견일치를 봤다”고 밝혔다.

한반도를 둘러싼 대화무드속에서 줄기차게 대북 압력 강화를 외쳐온 일본이 소외되는 ‘일본 패싱’이 부각되는 데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배려인 셈이다.

아베 총리가 트럼프 대통령에게서 ‘대북 압박 공조’를 다짐받은 모양새지만 일본 언론 보도를 보면 꼭 그렇지도 않다.

아사히 신문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17일 첫날 회담에서 아베 총리에게 “지금은 대화할 때”라고 강조했다고 한다. 아사히는 “지금까지 압력 일변도의 입장을 취해온 아베 총리도 이 말을 듣고 나서는 트럼프의 뜻을 따를 수 밖에 없었다”고 전했다.

아베 총리와 일부 언론들은 ‘대북 압력 유지’합의를 성과로 부각하고 있지만 실제 회담에선 다른 뉘앙스의 대화가 두 사람사 이에 오갔을 수 있다는 뜻이다.

아베 총리는 이날 회견에서 일본 패싱을 우려하는 일본기자의 질문에 “그런 걱정은 전혀 맞지 않는다”고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이틀째 회담과 기자회견에 앞서 아베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과 골프 라운딩을 했다. 지난해 두 차례에 이은 세번째 골프 회동이었다.

당초 아베 총리는 각종 스캔들에 휩싸인 국내 정치 상황을 고려해 한차례 거절했지만, 차마 두 번 거절할 수 없어 진행했다고 한다.

할 수 없이 친 골프만큼이나 아베 총리의 귀국길은 그야말로 최악이다.

여기자를 상대로 상습적인 성희롱 발언을 해온 것으로 보도된 일본 재무성 후쿠다 준이치(福田淳一) 사무차관이 18일 사임을 발표했지만 후폭풍은 일본 전체를 덮치고 있다.
[주간신조 페이스북 캡쳐=연합뉴스]

지난 12일자 ‘주간신조’보도와 다음날 공개된 음성파일에서 여기자에게 “가슴 만져도 되나”는 등의 발언을 한 것으로 지목된 후쿠다 차관은 18일 사퇴회견에서까지 “내 목소리인지 잘 모르겠다”,“보도는 사실이 아니다”라고 부인했다.

그 뒤 일본의 유력 방송사인 TV아사히가 18일 밤 늦게 기자회견을 열고 “성희롱 발언의 피해자는 TV아사히의 사원”이라고 밝혔지만 후쿠다 차관은 19일에도 “전체 (맥락)를 보면 성희롱이 아니다”고 반박하고 있다.

최대 초점은 "후쿠다에겐 인권이 없느냐"고 그를 감싸온 아소 다로(麻生太郞)부총리겸 재무상의 거취 문제다.

야당은 아소 부총리의 사임을 요구하고 있다. 앞서 모리토모(森友)사학재단 스캔들과 관련된 문서 조작 파문으로 사가와 노부히사(佐川宣壽) 전 재무성 이재국장이 사임한 데 이어 후쿠다 사무차관까지 불명예스럽게 사직하면서 아소에게 관리 책임을 묻는 것이다. 야당은 아소의 사임문제를 중요 법안이 산적한 국회 보이콧과 연계하고 있다.
아소 다로 일본 부총리 겸 재무상[EPA=연합뉴스]

‘맹우(盟友)’로 불리며 지난 5년간 정권을 지탱해왔고, 자민당내 두번째로 큰 파벌의 수장인 아소가 물러날 경우 다음은 아베 총리 차례다.

아소 부총리는 이날 사임 의사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아무런 답변도 하지 않고, G20(주요20개국)재무장관 회의 참석을 위해 미국으로 떠났다.

아베 총리는 플로리다에서 “더욱 긴장감을 갖고 행정의 신뢰 회복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그의 귀국길엔 골프장 벙커보다 더 험한 진흙탕이 놓여있다.

도쿄=서승욱 특파원 ss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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