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률 경쟁 속에서 현장실습생은 길을 잃었다

허환주 기자 2018. 4. 17.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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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된 학생의 죽음 ③] 투신한 학생의 학교 이야기

[허환주 기자]

 
특성화고 학생(출신)들의 사망 사고는 우리에게 많은 숙제를 던져주고 있다. 구의역을 시작으로 LG유플러스, 제주 음료회사까지. 

지난 3월 28일에는 이마트 다산점에서 무빙워크를 점검하던 이 모씨가 목숨을 잃었다. 일한 지 1년6개월 만의 일이다. 그는 특성화고 현장실습생으로 이곳에서 일을 시작했다. 이마트의 하청업체였다. 

그간 특성화고 학생들의 죽음을 두고 여러 지적과 대안이 제기됐다. 가장 화두가 된 것은 조기 취업으로 불리는 현장실습 제도의 존폐였다. 학생들을 착취하는 제도인 현장실습 제도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과 제도는 그대로 두고, 관리·감독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맞부딪혔다. 결국, 이 제도는 후자에 방점을 찍는 것으로 정리됐다. 그렇다면 이제 특성화고 학생들의 죽음은 사라지게 될까. 

아마 누구도 그러리라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특성화고 학생의 죽음은 간단한 도식 구조 속에서 발생하지 않기 때문이다. 죽음의 이면에는 복잡한, 그리고 이해관계가 뒤섞여 있다. 어떤 특정 제도를 없애거나 개선하는 식의 단순계산으로는 죽음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프레시안>은 특성화고 학생들 사망 사건을 추적하고자 한다. 그러면서 현재 한국의 특성화고 교육구조, 그리고 그와 연계된 산업구조의 문제점을 짚어보고자 한다. 현장실습의 사망 문제는 교육과 노동의 교집합에서 발생한다. 이를 들여다보면서 그들 죽음의 이면을 톺아보려 한다. 

첫 번째로 작년 10월, 안산 반월공단에서 현장실습 도중 투신한 박 모 군의 이야기를 다룬다. 당시 공장 옥상에서 투신한 박 군은 공단 내 중소기업에서 일했다. 박 군은 선임에게 욕설을 듣고 옥상에서 뛰어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업체 사장은 직접적인 욕설이 없었으며 가족 같은 분위기에서 일했다고 설명했다. 

누구의 말이 맞는 걸까. 박 군 사건을 둘러싼 이해당사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서 씨줄과 날줄로 얽혀 있는 특성화고 현장실습제도의 속내를 살펴보고자 한다. 박 군 어머니, 그리고 박 군이 일했던 업체의 이야기에 이어 박 군의 학교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관련기사 바로가기 ☞ : [반복된 학생의 죽음 ①] 현장실습 도중 투신한 학생의 이야기
                               [반복된 학생의 죽음 ②] 투신 학생이 일한 업체의 이야기)

▲ 채용모집 공고를 보고 있는 고등학생들. ⓒ연합뉴스

작년 10월, 안산 반월공단에서 현장실습 도중 투신한 박 모 군. 그가 다니던 학교의 취업률 순위는 경기도 내에서 10위 안팎이다. 마이스터고를 포함한 순위이기에 취업률이 상당히 높다고 봐야 한다. 반대로 말하면 그만큼 학교가 취업률에 신경을 쓴다는 이야기도 된다. 

사실 특성화고에서 학생의 취업률은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취업률이 낮을 경우, 신입생 모집이 안 되기 때문이다. 2018년도의 경우, 부산 지역 총 33개 특성화고 중 23개 학교만이 겨우 신입생 정원을 채웠다. 인천의 경우는 12개(총 26개)가 정원 미달이었다. 만성 신입생 미달 사태를 겪는 특성화고로써는 학생들에게 선택의 기준이 되는 취업률에 사활을 걸 수밖에 없다. 

신입생이 줄어 학급 1개가 없어지면 교사 2명의 일자리가 사라진다. 더구나 미달사태가 계속될 경우, 교육부는 인근 특성화고와의 통폐합을 유도한다. 한마디로 학교가 없어지는 셈이다. 학교가 취업률에 목을 매는 이유다.

시도교육청 평가지표에도 큰 부분을 차지한다. 총 11점 만점(능력중심 사회기반 구축 부문)에서 특성화고 취업률 점수는 3점(취업률 2점, 취업률 증가도 1점)으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반면, 여기에는 취업의 질이나 노동교육 이수 여부 등은 포함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학교가 학생의 취업률에 신경 쓰는 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주목할 점은 그러한 '신경'이 도를 넘어 학생의 인권에까지 저촉하는 일도 벌어진다는 점이다. 일선학교에서는 취업여부로 학생을 분류한 현황판을 교무실에 설치하는가 하면, 교문에 취업생 얼굴사진과 이름 등을 부착한 현수막을 설치하기도 한다. 또한 학교 복도에 조기 취업생 얼굴과 반, 이름 등을 적은 배너 광고판을 게시하기도 한다. 

반면, 업체에서 되돌아온 학생, 즉 복교생들에게는 빨간색 이름표를 부착하도록 하면서 낙인찍기를 하는 학교도 존재한다.  

재취업 원하지 않았던 학교, 이를 원했던 아이의 부모

박 군이 다니던 학교도 그랬는지는 알 수 없다. 학교 측은 <프레시안>과의 인터뷰에 '친절히' 응해주지 않았다. 하지만 학교 측의 말을 종합해보면 학교는 박 군에게 상당한 신경을 썼다. 이 학교는 업체에서 돌아온, 즉 복교한 학생을 더는 재취업, 즉 현장실습에 내보내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박 군만은 예외였다. 박 군 어머니 때문이었다.  

"아이가 학교로 돌아와서, 이후 더는 안 보내려 했다. 그러나 부모는 아이가 졸업해도 취업을 해야 하니, 학교에 있을 때 취업을 알선해달라고 부탁했다. 물론, 아이 담임이 만류했다. (아이의 여러 문제로) 아이가 이 상태로는 안 된다며 졸업 후 취업하는 게 좋겠다고 설득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적극적으로 학교가 취업을 해달라고 요청했다. 결국, 담임이 (사고 난) 업체를 섭외했고, 이후 학생과 함께 면접을 본 뒤, 채용됐다."

학교 측은 아이 부모가 현장실습을 다시 원할 경우, 이를 막을 방도가 없다고 설명했다. 다시 말해 학교 측에서는 아이의 재취업을 원치 않았다는 것이다. 

사실 특성화고를 나온 뒤, 취업하지 않는다면 대학교에 가야 하는데, 이것이 여의치 않았던 박 군이었다. 졸업 후, 혼자 힘으로 취업한다는 건, 더욱 쉽지 않다. 졸업 시즌인 2월이면 특성화고 졸업생의 경쟁상대인 전문대 졸업생들이 사회로 나오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경쟁력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 

반면, 학기 중 학교를 중간매개체로 해서 취업을 하면, 졸업 후보다 취업도 잘될 뿐만 아니라 개인이 취업하는 것보다는 좀 더 양질의 일자리를 얻을 수 있다. 학교를 통해 업체의 건전성을 보장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학교 "복교생은 추가 교육 하는 게 기본, 하지만..."

그렇다면, 취업률에 신경을 쓰는 학교가 왜 아이의 재취업을 거부했을까. 학교 측은 "복교한 아이들은 인성교육, 취업적응교육 등이 부족하다고 판단해 졸업 때까지 취업 대신, 추가 교육을 하는 게 기본"이라며 "복교생들은 다 그렇게 하고 있다"고 밝혔다. 

즉, 학교에서는 복교한 박 군에게 개인적인 문제가 있다고 판단한 셈이다. 하지만 학교 측은 박 군의 생활태도나 문제점 등을 두고는 구체적으로 언급을 꺼렸다. 아이의 개인정보는 함부로 발설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아이에게 뇌전증(간질)이 있다는 사실을 업체에 알리지 않은 점도 마찬가지였다. 

학교 측은 "간질 등 개인사는 학교생활기록부에도 못 쓰게 돼 있다. 다 지워야 한다. 알고 있다 해도 학교는 말하면 안 되는 것이다. 개인 정보이기 때문이다"라면서 "그런 개인적인 문제를 학교에서 먼저 업체에 알려주고 '아이를 받겠느냐'고 묻는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설명했다. 

학교 측은 사고가 난 업체에서 학생을 마뜩잖아 한 점을 두고도 "업체에서 면접을 보고 학생을 뽑아 놓고서 그렇게 말하는 건 말이 안 된다"며 "얼굴을 못 보고 결혼하는 것도 아니고 정상적으로 면접 보고 채용했는데, 어떤 업무를 시킬지는 그들이 판단할 문제"라고 주장했다. 

박 군이 일하는 동안 학교에서 제대로 학생을 관리하지 않은 게 아니냐는 지적에는 "아이가 담임선생과 문자를 주고받고 연락도 자주했다"며 "아이는 선생에게 '회사가 너무 좋다'며 '신나고 행복하다'고 했다"고 관리에 아무 문제가 없었음을 시사했다. 

실제 이 학교는 사건 이후, 교육청과 노동부 조사를 받았으나 별다른 시정조치가 내려지지 않았다. 

그러면서 학교 측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업체가 아이를 받은 뒤, 기술자로 키우려 했다는 점"이라며 "그래서 아이에게 한 업무만 하도록 한 게 아니라 수련업무로 이것저것 다양한 업무를 가르쳤다. 큰 업무를 주는 게 아니라 일을 가르치는 도중이었다"고 가혹행위나 부당한 지시는 없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학생의 투신, 누구를 탓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박 군의 담임선생은 이 사건을 어떻게 바라볼까. 박 군을 1학년에 이어 3학년 때에도 맡은 담임선생은 인터뷰 요청에 "드릴 말이 없다"며 "다만, 아이가 그렇게 투신한 것이 안타깝고 놀라울 뿐"이라고 말을 아꼈다. 
 
담임선생은 박 군이 투신한 업체를 직접 찾아가 현장실습제도를 설명하고, 학생 취업에 노력했다. 또한, 문자, 통화 등으로 일하던 박 군과 수시로 소통했다. 박 군의 이전 업체에서 박 군의 행동과 관련해 학교에 문제제기를 하자, 직접 업체를 방문해 관련 내용을 해결하려고도 했다. 

박 군이 투신한 이후에는 병원을 매일같이 방문하면서 아이의 상태를 살폈고, 사후대책 관련해서도 여러 부분에서 노력했다. 담임선생 입장에서는 나름 할 수 있는 일은 다 한 셈이다. 그런데도 업체와 박 군 어머니, 그리고 언론으로부터 사태의 책임자로 지목받고 있다. 

업체에서는 문제 있는 학생을 학교에서 추천해줬다며 담임선생과 학교가 이 사태를 책임져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박 군 어머니도 아이가 그렇게 열악한 현장에서 일하도록 했을 뿐만 아니라 그렇게 될(투신) 때까지 제대로 관리 못한 탓을 학교에 돌리고 있다. 

반면, 학교에서는 법적으로는 물론, 도의적으로도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했다는 입장이다. 

누구의 말이 맞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점은 이 얽히고설킨 시스템 안에서 특성화고 현장실습생 아이들은 갈피를 못 잡고 괴로워하고 있다는 점이다. 시스템 속은 생각했던 것보다 매우 복잡하고 균열이 큰 게 현실이다. 학교와 업체의 입장 사이에서 방황할 수밖에 없는 학생들. 이 시스템은 어떻게 바로잡아야 할까? 

허환주 기자 (kakiru@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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