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車 경영진 만난 엘리엇 "합병안 찬성할테니 주가 끌어올려라"

좌동욱/장창민/정영효 입력 2018. 4. 16. 23:07 수정 2018. 4. 17. 0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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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車에 '3대 조건' 제시한 엘리엇
현대차그룹 고위관계자-엘리엇, 홍콩서 면담
경영진 교체·자회사 매각 등 '단골 요구' 없어
"기아車 보유 모비스 지분 매각 주시" 분석도

[ 좌동욱/장창민/정영효 기자 ] 현대자동차그룹에 대한 공격을 예고한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가 현대차그룹 경영진을 만나 현대모비스의 모듈·애프터서비스(AS) 사업부와 현대글로비스 간 합병 등 추진 중인 지배구조 개편안을 지지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대신 엘리엇은 현대차에 배당 확대, 무수익(비핵심) 자산 활용 제고, 투명한 지배구조 개편 등 세 가지 요구안을 제시했다.


16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엘리엇 고위 운용역들은 지난주 초 홍콩에서 현대차그룹 핵심 경영진을 면담한 것으로 확인됐다. 엘리엇이 지난 4일 “현대차, 현대모비스, 기아차 주식 10억달러(약 1조500억원)어치 이상을 보유하고 있다”며 현대차 고위 경영진과의 면담을 요구하자 현대차가 수용했다.

엘리엇은 이 자리에서 “현대차그룹이 추진하는 지배구조 개편안에 찬성한다”며 긍정적인 의사를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엘리엇은 현대차에 △배당 확대, 자사주 소각 등 주주환원 규모 확대 △무수익 자산 활용도 제고 △독립적인 사외이사 선임 등 지배구조 개편안 등 세 가지 요구안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차그룹 경영진은 이에 대해 “적극 검토하겠다”고 답변한 것으로 전해졌다.

엘리엇과 만남 “예상외로 좋았다”

엘리엇과 같은 행동주의 헤지펀드가 자신들의 요구 조건을 이처럼 비공개로 포괄적으로 제시한 것은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경제계 안팎에서는 엘리엇이 3년 전 삼성을 압박할 때와 달리 현대차그룹 경영진과 공생하는 전략을 들고나온 것으로 분석했다. 장기전을 염두에 두고 단계별 공격 방안을 치밀하게 세웠다는 얘기도 흘러나온다.

엘리엇은 세계 기업들에 ‘가장 악명 높은 행동주의 헤지펀드’라는 평가를 받는다. 창업 40주년을 맞은 지난해부터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경쟁사들이 한두 곳 기업에 투자할 때 엘리엇은 세계 17개 기업에 돈을 넣었다.

국내 연기금 관계자는 “엘리엇은 투자 실패 사례가 거의 없을 정도로 승승장구하고 있다”고 전했다. 엘리엇이 4일 “회사와 주주를 포함한 이해관계자를 위해 추가 조치가 필요하다”고 발표한 게 사실상 현대차에 대한 ‘선전포고’로 간주된 이유다.

엘리엇의 발표 이후 현대차그룹은 신속하게 대응했다. 엘리엇이 면담을 요구하자 1주일이 지나지 않아 현대차그룹 핵심 관계자들이 엘리엇을 만나기 위해 홍콩을 찾았다.

엘리엇 측에선 제임스 스미스 아시아태평양 총괄투자책임자와 니컬러스 마린 아시아리서치 대표 등이 면담에 참석한 것으로 전해졌다.

현대차그룹 고위관계자는 당시 면담에 대해 “예상과 달리 나쁘지 않았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무엇보다 엘리엇 측이 현대모비스를 지배회사로 하는 지배구조 개편 방안에 긍정적 반응을 내놨다는 전언이다.

현대모비스는 다음달 29일 임시 주주총회를 열어 모듈·애프터서비스 사업 부문을 떼어낸 뒤 이를 현대글로비스와 합병하는 안건을 통과시킬 예정이다. 이를 통해 현대차그룹의 4개 순환출자 고리를 모두 끊어낸다는 계획이다.

분할과 합병작업이 끝나면 기아차(16.9%), 현대제철(5.7%), 현대글로비스(0.7%) 등 계열사가 보유한 현대모비스 지분 23.3%를 정몽구 회장과 정의선 부회장 부자(父子)가 모두 사들인다.

엘리엇, 기아차도 사들인 이유는

엘리엇이 내놓은 세 가지 요구안도 현대차 예상 범위에 있는 내용이라는 분석이다. 엘리엇 측 요구는 △주주환원 규모를 늘리고 △무수익(비핵심) 자산 활용도를 높이며 △지배구조를 투명하게 개편하라는 내용인 것으로 알려졌다.

주주환원 규모 확대는 배당액 증대 또는 자사주 소각 등으로 주주들에게 돌려줄 몫을 늘리라는 것이다. 무수익 자산은 계열사 주식이나 부동산 등 당장 수익이 나지 않는 비핵심 자산을 의미한다. 지배구조 개편은 사외이사 선임 과정에 회사 측 영향력을 최소화하고 사외이사의 독립성을 높이라는 요구라는 게 업계 해석이다. IB업계 관계자는 “엘리엇의 단골 수법인 경영진 교체나 자회사 매각과 같은 과격한 요구가 없다”며 “엘리엇이 현대차 경영진에 우호적이라고 볼 수 있는 대목”이라고 설명했다.

증권가에서는 현대차가 주주환원 규모 확대, 사외이사의 독립성 제고와 같은 엘리엇 측 요구를 어느 정도 들어줄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본다.

엘리엇이 현대차를 공격할 명분과 시기를 엿보고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현대차가 내놓는 후속 조치를 지켜본 뒤 계열사가 보유한 비핵심 자산에 대해 문제를 제기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다. 현대모비스나 현대차가 보유한 현대건설, 해비치호텔앤리조트 등 계열사 지분을 자동차와 관련 없는 비핵심 자산으로 보고 처분을 요구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외국계 IB 대표는 “엘리엇이 기아차 지분을 사들인 이유를 주목해야 한다”고 했다. 기아차가 보유한 현대모비스 지분을 정 회장 부자에게 파는 의사결정 과정을 엘리엇이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는 얘기다.

좌동욱/장창민/정영효 기자 leftki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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