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36년 전 날 끌고 간 경찰은 왜 반성이 없나"

입력 2018.04.16. 22:16

"형제복지원 사건을 재조사하기로 한 건 잘된 일이지만, 그게 쉬울진 모르겠습니다. 불과 4년 전에 일어난 세월호 참사도 특별법까지 제정됐지만 지금껏 진상규명이 안 되고 있는데."

지난 15일 <한겨레>와 만난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생존자 최승우(49)씨는 최근 법무부 검찰과거사위원회가 이 사건의 진상규명에 나서겠다고 발표했지만 쉽사리 기대감을 드러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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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여일째 농성 중인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 최승우씨
"검찰 재조사 긍정적.. 진상규명 어려울까 걱정도"

[한겨레]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사당역 6번출구 앞에서 160여일째 노숙농성을 벌이고 있는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 모임 활동가 최승우(49)씨.

“형제복지원 사건을 재조사하기로 한 건 잘된 일이지만, 그게 쉬울진 모르겠습니다. 불과 4년 전에 일어난 세월호 참사도 특별법까지 제정됐지만 지금껏 진상규명이 안 되고 있는데….”

지난 15일 <한겨레>와 만난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생존자 최승우(49)씨는 최근 법무부 검찰과거사위원회가 이 사건의 진상규명에 나서겠다고 발표했지만 쉽사리 기대감을 드러내지 못했다. 30년이 훌쩍 넘는 시간 동안 기대가 실망으로 뒤바뀌는 일이 얼마나 잦았을까. 그는 섣부른 기대를 말하는 것조차 주저했다.

최씨는 중학교 1학년이었던 1982년부터 4년여 동안 부산 형제복지원에서 강제노역과 성폭행, 무자비한 구타를 당했다. 그는 지난해 11월7일부터 국회 정문 앞에서 ‘형제복지원 사건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160여일째 노숙 농성 중이다.

“검찰의 재조사 계획이 발표된 후 피해 생존자들은 조만간 진상규명이 될 것 같다며 기대하는 분위기지만, 경찰엔 정말 화가 납니다. 나를 형제복지원에 끌고 간 건 젊은 경찰이었습니다. 어쩌면 그는 지금 경찰 고위직이 됐을지도 모르는데 경찰은 왜 반성조차 하지 않는 거죠?” 형제복지원 사건의 재조사를 결정한 검찰과 달리, 경찰 인권침해 진상조사위는 2004년 이후 사건에 한정해 재조사를 벌이고 있다.

형제복지원은 1987년 당시 3164명을 수용한 전국 최대 규모의 ‘부랑인’ 수용시설이었다. 불법감금·강제노역 등으로 문제가 불거진 1987년까지 513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는 게 당시의 진상 조사 결과였다. 형제복지원의 박인근 원장은 불법감금과 국가보조금 횡령 등의 혐의로 구속됐지만, 법원은 박 원장의 형량을 계속 줄여줬다. 그 사이 피해자들은 ‘부랑자’라는 낙인 속에 2차 피해를 당했다.

형제복지원 출신인 최씨 역시 가족과 사회로부터 철저히 외면받았다. “죽을 만큼 힘들었던 제게 ‘머스마 새끼가 그런 데 갔다 올 수도 있지’라고 한 아버지의 말이 큰 상처가 됐어요. 집에서 나와 할머니 댁에서 살았는데 그때도 계속해서 가족들의 책망하는 듯한 눈초리를 받았어요.” 안정적인 삶을 위한 일자리도 결혼도 ‘형제복지원 출신’이라는 꼬리표 때문에 좌절됐다고 그는 덧붙였다.

“내가 태어난 국가는 왜 이렇게 나를 힘들게 할까”란 원망을 안고 살았던 최씨에게 세월호 참사는 삶의 작은 전환점이었다. “정부의 무책임한 대응을 보며 ‘이 사회는 형제복지원 때처럼 여전히 사람을 죽이는 곳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인권활동에 투신해야겠다 결심한 계기였습니다.” 최씨는 요즘 노숙농성을 하는 틈틈이 영어공부와 연극수업에 참여하고 있다. 국내외 많은 사람들에게 형제복지원 사건과 인권에 대한 이야기를 전달하고 싶다는 꿈 때문이다.

“소식이 닿는 형제복지원 피해 생존자가 약 300명가량인데, 지금도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채 사는 경우가 많아요. 재조사를 계기로 형제복지원 특별법이 마련돼 억울하게 국가폭력을 당한 피해 생존자들의 삶이 조금이나마 구제됐으면 좋겠습니다.” 그는 담담히 말했다.

선담은 기자 su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