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펜' 찍힌 44명 처벌 계획도 세웠다

2018. 4. 16.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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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사이버사 ‘레드펜 식별 결과’ 보고서 입수 블랙리스트 오른 44명 아이디 확인…
경찰에 통보 형사처벌하려 한 정황 드러나

최현수 국방부 대변인이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 브리핑실에서 기자회견에 나섰다. 국방부는 2017년 8월 군 사이버사령부 댓글 사건 재조사 태스크포스(TF)를 꾸려, 2013년 당시 군 사이버사 댓글 사건 수사 과정에서 증거 인멸과 사건 은폐가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연합뉴스

군이 인터넷 공간에 정부 비판 글을 올리는 시민들을 모아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관리했다. 이른바 ‘레드펜 작전’(제1198호 사회 ‘작전명 레드펜, 온라인 블랙리스트도 있었다’ 등 참조)의 대상이 된 이들의 구체적인 아이디가 공개됐다. 군이 이렇게 수집한 아이디를 경찰 등 유관기관에 통보해 처벌받게 하려 했다는 정황도 새롭게 드러났다.

‘MB 내곡동 사저 논란’ 언급했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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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은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이철희 의원실(더불어민주당)을 통해 2012년 9월26일 군 사이버사령부(이하 군 사이버사)가 작성한 ‘사이버 위협세력(Red Pen) 식별결과(보고)’(이하 식별보고서)라는 이름의 문건을 확보했다. 군 사이버사는 문건에서 이 보고서의 작성 이유를 “사이버공간의 익명성·확산성을 악용하여 정부·군·특정 인사를 악의적으로 비방하고 여론을 왜곡·조장하는 불순세력에 대한 식별”이라고 밝혔다.

<한겨레21>은 지금까지 군 사이버사의 ‘레드펜 작전’과 관련된 연속 보도로 군이 정부를 비판하는 시민들의 아이디를 블랙리스트로 만들어 관리했고, 그 구체적인 분류 항목으로 ‘북한 지지·찬양’(R1), ‘브이아이피(VIP)·국가정책 비난’(R2), ‘국방·군 수뇌부 비방’(R3) 등이 있었다고 보도했다. 이번 보고서로 군의 타격 대상이 된 시민 44명의 아이디를 확인할 수 있었다. 군 사이버사가 벌인 레드펜 작전의 작동 실태가 좀더 명확히 드러난 것이다.

이번에 새로 나온 군 사이버사 관련 문건 2개는 2012년 8월28일과 9월26일 각각 작성됐고, ‘특별취급’ ‘결재권자 외 열람 금지’ 등의 문구를 쓰며 보안을 강조했다.

구체적으로 ‘VIP·국가정책 비난’성 글을 자주 올리는 시민들의 아이디를 모아 관리한 R2 항목을 보자. 닉네임 ‘홍익인간’은 “이○○ 아들의 내곡동 사저 수사를 희석하기 위한 공안 정국 조성이다”라는 글을 썼다. 당시 이명박 대통령은 퇴임 뒤 머물 사저 터로 내곡동을 검토하고 있었다. 이 과정에 이 전 대통령 아들 이시형씨가 관여된 배임 의혹과 부동산 실명제 위반 논란이 벌어져 난처한 상황이었다. 그 무렵인 2012년 6월 검찰은 임수경 의원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수사한다. 홍익인간은 이 대통령의 내곡동 사저 논란과 임 의원의 국보법 수사 개시를 연결해 이를 ‘공안정국’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는 이 글을 올렸다는 이유로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또 다른 닉네임 ‘대포’는 “민간인 사찰하는 사기꾼이 남의 나라 인권 타령인가”라는 글로 이명박 정부에서 이뤄진 총리실 공직기강비서관실의 민간인 사찰을 비판했다. 그 역시 이 글을 올렸다는 이유로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구시대의 악법인 국보법을 동원해 개인을 탄압하는 치졸한 정부”라는 댓글을 남긴 닉네임 ‘본인’, “엠비(MB) 정권에 한해 악의 축은 북한이 아닌 현 정권 그 자체이다”라는 댓글을 단 ‘이경선’, “인권유린과 민생파탄·민주주의를 파괴한 이○○을 탄핵해라”라고 쓴 ‘테마파크’ 모두 ‘R2’로 분류됐다. 저잣거리에서 정부를 비판하는 사람들을 가르고 나눠 블랙리스트로 관리하며 대응한 것이다. ‘막걸리 국보법 위반’을 처벌하던 독재정부 시절의 행태와 다르지 않다.

악성 댓글자 실시간 유관기관 통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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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군 수뇌부 비방’으로 분류된 R3도 이와 다르지 않다. 2012년 4월 ‘김(관진) 국방, 북 장거리 미사일은 미 본토까지 사정권’이라는 기사에 닉네임 ‘자연보호’는 “연평도, 천안함도 못 지켜내고 미국만 걱정하는 한심한 국방장관”, ‘대박수’는 “국방비는 천문학적으로 사용하면서 미사일 기술이 북한보다 못한가”, ‘전령수’는 “북한 첩보에 능하다면 천안함 동강 나고 연평도는 왜 맞았는가” 등의 댓글을 달았다. 이들 모두 군을 비난했다는 이유로 블랙리스트로 분류됐다. 특히 ‘천안함도 못 지켜내고’나 ‘천안함 동강 나고’ 등의 표현은 북한에 의한 천안함 공격을 인정하는 태도로, 굳이 따지자면 보수 쪽의 의견이다. 국방부의 블랙리스트 선정 기준이 얼마나 자의적이었는지 알 수 있다.

2012년 6월 추진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과 관련해 “(김관진) 국방장관이 나라를 일본에 팔아먹으려고 한 것인가” “한-일 군사협정 밀실 처리 시도한 국방장관은 매국노다”라는 비난 댓글을 단 누리꾼도 어김없이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보고서는 “종북세력들은 온라인에 악성 여론을 확산시키고 장외투쟁으로 연계를 시도, 국가안보·국방정책 방해 책동을 지속”한다고 주장하지만, 그 근거는 제시되지 않았다. 다만 보고서는 레드펜 작전에 따라 블랙리스트에 올릴 아이디 선정 기준으로 “국방·안보·VIP 관련 댓글 300건 이상, 부정 여론 60% 이상에 한정”을 제시했다.

군은 이렇게 작성한 블랙리스트를 대상으로 구체적인 대응책을 짰다. 2012년 8월28일치 군 사이버사 식별보고서를 보면 “블랙펜 분석을 통한 적기·적소 대응으로 오염 확산을 최소화(할 것). 선별된 자료는 관계기관에 협조, 위협적 사이버 선전 활동을 차단”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또 한 달 뒤인 9월26일치 식별보고서에는 “8월 말 현재, 729개 계정을 식별”해 “극렬 악성 댓글자 635명을 실시간으로 유관기관에 기 통보”했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그러면서 보고서는 ‘북한 찬양·고무자는 국가보안법 제7조 1항 위반(7년 이하 징역)’ ‘R2·R3은 VIP·장관 사이버 명예훼손 정보통신법 제61조 위반(7년 이하 징역)’ 등 블랙리스트로 분류된 시민들을 형사처벌할 수 있는 조항도 적어두었다. 정부 비판 댓글을 단 누리꾼들을 추적해 처벌하는 탄압 계획이 실제 진행됐음을 시사하는 문구다.

정부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오른 누리꾼들의 실상은 평범한 시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겨레>는 군 사이버사의 레드펜 작전 대상이던 한 누리꾼과 접촉할 수 있었다. ‘한-일 군사협정은 사대매국주의 행위’라는 내용의 댓글을 달았다가 온라인 블랙리스트에 오른 김아무개씨는 전북 군산에서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50대 남성이었다. 그는 자신이 블랙리스트에 올랐다는 사실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정부의 감시를 받고 있었다는 것은 평범한 시민에게 말할 수 없는 공포를 안겨줄 수 있다. <한겨레>가 입수한 레드펜 ‘블랙리스트’에는 누리꾼들의 닉네임과 그가 쓴 글이 표시되는 게 보통이지만, 김씨의 경우에만 포털 사이트 다음의 아이디를 표기해두고 있었다. 700여 명의 레드펜 대상 중에서도 김씨를 ‘특별 취급’한 셈이다.

블랙리스트 오른 누리꾼 “정부 한심”

김씨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6년 전 일이라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당시 한-일 군사협정을 비판하는 댓글을 많이 달았다. 그때 쓴 댓글은 죄다 지웠고, 최근엔 일상생활 관련 기사에만 댓글을 단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특별히 감시를 받는다거나 이상한 낌새는 없었다. 그렇기에 내가 관리 대상이었는지 전혀 몰랐다. 누리꾼을 감시하고 관리한 정부가 한심하다”고 말했다.

2012년 4월 포털 사이트 다음의 ‘은하3호, 사거리 1만km… 미국 본토도 사정권’이란 제목의 기사에 “미국 밑에서 기어 사는 걸 무한 영광으로 생각하는 비굴한 것들이 이리도 많구나”라는 댓글을 달아 블랙리스트에 오른 누리꾼 역시 “이명박·박근혜 정권 동안 비판적 댓글을 수시로 달았다. 국가가 나를 어떻게 감시했는지 궁금하다”고 답했다. 국가가 이들을 어떻게 감시하고 관리했는지 진상 규명이 필요해 보인다. 실제 <한겨레21>은 지난 보도(제1199호 ‘경찰, 군 댓글작전 관여했나’ 등 참조)를 통해 군 사이버사와 경찰청, 기무사령부 등 유관기관이 공조했음을 밝혔다. 군 사이버사가 넘겨준 아이디를 근거로 경찰이 시민에게 사찰과 처벌을 시도했다면 ‘레드펜 작전’의 파장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될 것이다. 이철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확인된 아이디와 댓글 내용을 통해 군 사이버사가 반정부·종북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정치적 반대파를 말살하려 했다는 의혹이 사실로 입증됐다. 남은 기간 철저한 조사로 피해의 내용과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밝혀내야 한다”고 말했다.

6년 만에 군 사이버사가 벌인 ‘레드펜 작전’의 진실이 드러나고 있다. 당시 레드펜 작전을 수행한 실무자들은 모두 군내 요직에 그대로 남아 있다. 지시에 따랐을 뿐이고, 북한과 대치하는 상황에서 온라인 안보를 지키는 필수 인력이라는 게 그들이 자리를 보전하는 이유다.

경찰 ‘셀프 수사’에 우려 목소리

경찰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현재 경찰은 군 사이버사의 ‘레드펜 작전’과 별개로 2011~2013년 경찰 조직이 본격적으로 동원돼 온라인 여론 왜곡을 위한 댓글을 작성했다는 의혹에 휩싸여 있다. 경찰은 지금도 철저한 개혁 대상으로 전락한 국가정보원보다 더 큰 정보조직을 보유하고 있다. 또 국정원이 내놓은 대공수사권까지 넘겨받을 예정이다. 현재 경찰은 임호선 경찰청 기획조정관(치안감)을 단장으로 하는 ‘특별수사단’을 꾸려 조직 내부를 수사하고 있다. 현재 경찰청 보안국 문서, 컴퓨터 저장 자료 등을 압수해 분석하며 전국 단위로 수사 규모가 커지고 있다. 하지만 경찰의 ‘셀프 수사’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여전히 높다. 이철희 의원은 “철저히 조사해, 군이 정치적 중립을 잃은 채 민간인을 대상으로 작전을 벌이는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특히 사이버사에서 경찰로 옮겨간 정치 개입 논란은 국회에서도 특별히 관심 있게 지켜볼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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