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부르는 술자리.. "취해야만 친해지나요?"

이재은 기자 2018. 4. 16.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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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주자 중 26.1% "거절해도 강요하는 음주 문화 폐해".. 신입사원·대학 새내기 사망 사고까지
/사진=이미지투데이

신입사원 워크숍에 참가했던 대기업 신입사원이 과음으로 숨진 채 발견되면서 신입 구성원을 환영한다며 폭음하는 문화를 바꿔야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13일 한국건강증진개발원에 따르면 음주자 중 26.1%는 우리나라에 만연한 각종 음주폐해의 원인으로 '거절해도 강요하는 음주 문화'를 꼽았다. 특히 직장에 갓 들어온 신입사원이나 대학 새내기 등은 눈치를 보느라 강요하는 술을 거절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눈치 보며 마신 술,잇따르는 사망 사고

오리엔테이션, 환영회, 새내기배움터, 대면식, 신입사원 워크숍…. 으레 술이 따라오는 자리다. 하지만 신입사원은 처음 조직의 사회생활을 마주해 선배의 강요를 거절하기 어렵다. 조직에서 도태될 수 있다는 두려움에 눈치도 본다. 그래서 술을 마신다.

한 잔만 마셔도 얼굴이 빨개지는, 술이 몸에 안 받는 이들은 사망에 이르기도 한다. 2016년 3월, 대전의 한 대학 신입생 김모씨는 술을 잘 마시지 못하지만 선배들의 강요에 의해 2시간가량 이어진 술자리에서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로 취했다. 김씨는 동기생 집으로 실려갔지만 다음날 사망한 채 발견됐다. 대한보건협회 조사 결과 2006년부터 2015년까지 10년간 대학가에서 발생한 음주 사망사고는 22건에 이른다.

직장도 마찬가지다. 지난 12일 경기도 화성시의 한 호텔에서 열린 신입사원 워크숍에 참가한 대기업 신입사원 A씨(27)는 침대에 누워 자던 모습 그대로 숨진 채 발견됐다. 평소 주량이 소주 1~2잔에 불과한 A씨는 전날 밤까지 술을 마신 것으로 조사됐다.

대한경영학회지 제28권 중 '조직내 음주문화 행동에 미치는 영향요인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우리나라 직장인들은 술자리에서 동료와 함께 마셔야 한다는 심리적 압박을 느낀다. 신입사원은 거절하기 더 어렵기 때문에, 술자리를 통해서 친해지려는 자리를 만드는 시도 자체가 무리라는 지적이 나온다.

◇선·후배간 동상이몽… "술자리 즐거워하는 줄" vs "술자리 언제나 괴롭다"
이 같은 일은 선배 등 기존 조직에 이미 포함돼 있는 이들과 신입 구성원 간의 '동상이몽'에서 비롯된다. 기존 구성원들은 별 다른 생각없이 재미로 '한 잔 하라'며 '권유'하지만 신입 구성원들에겐 '강요'로 느껴지는 것.

중견기업 부장 C씨는 "사실 술을 안 마시면 딱히 할 것도 없어 의례적으로 신입 환영회에 술자리를 마련한다"고 말했다. 그는 "술을 안 마시고 빼는 이들이 있으면 '즐기지 못하나' 싶어 몇 잔 권유한다"고 덧붙였다.

은행 지점장 D씨는 "요즘은 강요하는 분위기가 많이 사라졌다"며 "음주문화를 아예 없애는 건 어렵다. 친목을 다지는 데 어느 정도는 필수적"이라고 밝혔다.

/삽화=임종철 디자인 기자

하지만 대다수 신입사원들의 생각은 달랐다. 과거에 비해 대놓고 강요하는 문화는 사라졌지만 아직도 거절하기 어렵다는 것. 대기업 신입사원 E씨는 "요즘 대놓고 '마셔라' 강요하는 사람은 많이 없어졌다"면서도 "은근히 눈치를 준다. 말로는 마시지 않아도 괜찮다고 하지만 잔을 비운 사람에게만 '맘에 든다'고 하는 등 마시지 않고는 못 배기는 분위기를 만든다"고 설명했다.

이외에도 신입사원들은 △첫 잔은 원샷이라고 외치거나 △한 번에 잔을 채우기 위해 비워서 달라고 하거나 △쏘맥(소주+맥주) 혼합주를 배합한다며 잔을 달라고하는 일 등의 상황이 술을 못하는 이들에게 폭력적으로 느껴진다고 입을 모았다.

◇"술 마시면 친해지는지 의문"… 대안은?
신입 구성원들은 술자리를 통한 유대감 형성이 가능한지 여부에 근본적 의문이 든다고 입을 모았다. 대기업 신입사원 E씨는 "술 자리를 통해 한번도 친해졌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환영회에서 함께 술을 많이 마신 사람과 다음날 대면하면 어색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술자리를 통해서만 친해질 수 있다는 생각이 구시대적 발상일 수 있다며 △공연, 영화 등을 관람하는 문화활동 △맛집 투어 △당구·볼링과 같은 레포츠 활동 등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박점규 직장갑질 119 운영위원은 "한국은 외국에 비해 술 문화에 관대하고 술을 강요하는 일이 굉장히 흔하다"며 "특히 군대식 문화에 의해 신입에게 술을 강요하는 등 복종을 강요한다"고 말했다. 그는 "조직 내 폭언, 폭행, 성폭력 등 각종 사고는 대부분 술 자리에서 발생하고, 술자리를 통해 조직 내 친밀감이나 열정 등이 강화되지도 않기 때문에 경영진 측에서 주도적으로 바꾸려는 노력을 해야한다"고 조언했다.

이재은 기자 jennylee11@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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