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재벌, 매춘부 요트, 美대선..'리브카 영상' 파문

김정훈 기자 2018. 4. 14. 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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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에 러시아의 美대선 개입 증거 있다".. 녹취록 진위따라 국제적 파장]
러시아 재벌과 부총리 요트여행.. 함께 탄 매춘부가 대화 촬영
매춘부가 인스타에 올린 영상, 푸틴 정적이 인터넷 방송에 공개
"러 권력자들이 날 죽일 것" 태국 도피..美에 망명 타진
익명의 외국인 요원 제보로 태국 경찰이 매춘부 체포
美 재무부 추가 제재 명단에 동영상 속 러시아 재벌 포함

12일(현지 시각) 런던 시장에서 알루미늄 선물(先物)은 t당 2232달러에 거래됐다. 미국 재무부가 러시아 추가 제재 명단을 발표한 후 일주일 만에 14%나 급등했다. 명단에 러시아 알루미늄 신흥 재벌 올렉 데리파스카와 그의 회사 '루살'이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전 세계 알루미늄 9%를 공급하던 루살의 파산 우려가 알루미늄 값을 끌어올렸다.

미국 정부는 데리파스카가 돈세탁에 관여했다는 이유 등을 들어 제재했지만, 그는 2016년 러시아 미 대선 개입 스캔들 핵심 고리로 지목된 바 있다. 미 대선 넉 달 전 트럼프 캠프 선대본부장이었던 이가 데리파스카에게 '미국 대선(大選) 관련 브리핑을 해 주겠다'고 제안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데리파스카가 그 제안을 받아들여 브리핑이 실제 성사됐는지 확인되지 않아 그는 태풍에서 살짝 비켜 있었다.

그가 최근 전혀 뜻밖의 사건으로 글로벌 정치판에 '화제의 인물'로 다시 급부상했다. 태국의 파타야에서 '섹스 세미나'를 진행하다 급습한 경찰에 체포된 벨라루스 출신 매춘부 나스타야 리브카(27) 때문이다. 재벌, 호화 요트, 매춘부, 정치 거물, 섹스, 그리고 미국 대선까지…. 데리파스카의 재등판에는 영화를 방불케 하는 요소가 망라해서 등장한다.

지난 2월 러시아 푸틴 대통령의 정적(政敵)인 알렉세이 나발니가 자신의 인터넷 방송에서 짧은 동영상 하나를 공개하며 데리파스카를 난타했다. 영상 속 데리파스카는 자기 소유의 호화 요트에 러시아 부총리를 태우고 노르웨이 해안을 돌고 있었다. 미 대선이 서너 달 남았을 때다. 요트에는 여성 접대부 7명이 함께 타고 있었고, 재벌과 부총리는 미국의 러시아 제재에 관한 대화를 나눴다. 나발니는 짧은 분량의 이 영상을 동원해 러시아 정경(政經) 유착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나발니 방송이 공개되자 실제 이 영상을 찍은 이가 겁에 질렸다. 영상은 요트 파티의 접대부 7명 중 한 명이었던 리브카가 찍어 자신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자랑삼아 올린 것이었다. 리브카의 지인은 CNN에 "'러시아 권력자들이 날 죽일 것'이라며 말하곤 했다"고 전했다. 급히 러시아를 빠져나온 리브카 일행은 두바이를 거쳐 태국 유명 관광지 파타야에 도착했다. 파타야는 리브카 일행이 최근 5년 동안 '섹스 세미나'를 열어 온 익숙한 장소다.

파타야에서 리브카 일행은 저렴한 호텔 세미나실을 빌려 일주일 동안 '섹스 세미나'를 열었다. 세미나의 제목은 '섹스와 유혹'. 세미나 중에도 리브카 일행은 미 대사관과 연방수사국(FBI)에 망명 가능성을 타진하는 편지를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세미나의 1주일 일정이 마무리되던 지난 2월 25일, 태국의 사복 경찰들이 들이닥쳤다. 리브카 등 섹스 세미나에 '강사'로 활동했던 10명이 줄줄이 체포됐다.

체포 직후 리브카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러시아가 2016년 미 대선에 개입한 증거를 갖고 있다. 미국에 망명하게 해 달라'는 글을 올렸다. 그간 공개된 영상 외에 러시아의 미 대선 개입 방안 논의가 포함된 데리파스카와 러시아 부총리의 대화를 16시간 동안 찍거나 녹음해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미 대사관은 망명 요구를 거부했다. 헤더 나워트 국무부 대변인은 "이상한(bizarre) 이야기"라며 "미국 국민이 아닌 사람을 보호하거나 접촉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 CNN에 따르면 FBI가 리브카와 접촉을 시도했지만 태국 경찰에 거부당했다.

미국 언론들은 리브카 체포 작전에 이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라는 의혹을 제기한다. 체포 작전은 익명의 '외국인 요원' 제보로 시작됐다. 잡범 체포 작전에 태국 경찰 경무관급 6명과 총경급 2명 등 고위 관계자들이 대거 관여했다. 태국 경찰은 리브카가 관광 목적으로 입국해 돈을 벌었기 때문에 태국 법을 위반했다고 주장한다. 섹스 세미나를 지난 5년 동안 계속 열어 왔는데, 유독 올해만 문제 삼은 것이다.

체포 후에도 인스타그램에 글을 올리던 리브카는 지난달 5일 이후 올린 게시물이 없다. 태국 출입국관리사무소는 한 달 넘게 리브카 면회를 전면 금지하고 있다. "태국과 러시아·미국의 관계에 누를 끼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리브카의 비밀 동영상이 데리파스카에 대한 미국의 제재에 영향을 미쳤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오는 17일로 예정된 재판에서 리브카가 범죄인 신분으로 러시아나 벨라루스로 추방되면 '데리파스카 16시간 녹취록' 진위도 함께 묻힐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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