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성희롱, 일반인 아닌 피해자 처지에서 판단해야"
대법원이 소속 학과 학생들에게 성희롱과 성추행 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해임당한 교수에게 해당 처분은 적법하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리면서 성희롱 판단 기준을 새롭게 제시했다. 우리 사회 전체의 일반적이고 평균적인 사람이 아니라 피해자들과 같은 처지에 있는 평균적인 사람의 입장에서 성적 굴욕감이나 혐오감을 느낄 수 있는 정도였는지를 기준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법원 2부(주심 권순일 대법관)는 A씨가 교원소청심사위원회를 상대로 낸 교원소청심사위원회 결정 취소소송에서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13일 밝혔다.
한 대학교는 2015년 4월 교수 A씨를 해임했다. 소속 학과 여학생들인 피해자들에게 수차례 성희롱 및 성추행 행위를 했다는 이유였다.
소속학과 학생인 피해자 B양과 관련해 A교수는 “뽀뽀해 주면 추천서를 만들어 주겠다”,“남자친구와 왜 사귀냐, 나랑 사귀자”, “나랑 손잡고 밥 먹으러 가고 데이트 가자”, “엄마를 소개시켜 달라”는 등의 말을 하고 수업 중 질문을 하면 피해자를 뒤에서 안는 듯한 포즈로 지도해 문제가 됐다.
A교수는 역시 소속학과 학생인 피해자 C양에게는 수업시간에 뒤에서 안는 식으로 지도하는 한편 한 의자에 앉아 가르쳐 주며 신체적 접촉을 하고 복도에서 얼굴에 손대기, 어깨동무, 허리에 손 두르기와 함께 손으로 엉덩이를 툭툭 치는 행위 등을 한 것으로 조사됐다. 또 학과 MT에서 아침에 자고 있던 피해자의 볼에 뽀뽀를 2차례 하기도 하고, 뽀뽀를 하면 신청서를 받아주겠다고 해 피해자가 본인에게 뽀뽀를 하게 시키기도 했다.
이런 사유로 해임당한 A교수는 징계에 불복해 2015년 5월 소청심사를 청구했고 기각당하자 해임은 부당하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1심 법원은 “해임처분이 적법하다고 판단한 결정은 적법하다”면서 원고인 A교수에게 패소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2심 법원은 1심 판결을 취소하고 해임처분이 잘못됐다며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2심 법원은 “피해 발생 사실 자체를 인정하기 어렵다”며 “불필요한 신체적 접촉을 한 사실은 인정할 수 있지만 적극적 교수 방법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평균적인 사람의 입장에서 성적 굴욕감이나 혐오감을 느낄 수 있는 정도에 이른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이어 2심 법원은 “A씨는 평소 피해자를 비롯한 소속 학과 학생들과 격의 없고 친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자주 농담을 하거나 가족 이야기, 연애상담을 나누기도 했다”며 “대화 가운데 극히 일부분을 전체적인 맥락을 고려하지 않은 채 문제 삼는 것은 부적절하다”면서 “피해자인 여학생의 입장에서 성적 굴욕감이나 혐오감을 느꼈다고 보기 어렵다”는 판결을 내렸다.
더불어 2심 법원은 “징계사유가 모두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짧게는 3개월 길게는 1년 이상의 세월이 흐른 후 신고했다는 점을 이유로 해임 처분은 A씨 행위의 비위 정도에 비춰 지나치게 무겁다”고 보고 위법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은 이를 뒤집고 사건을 다시 판단하라며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법원이 성희롱 관련 소송의 심리를 할 때 그 사건이 발생한 맥락에서 성차별 문제를 이해하고 양성평등을 실현할 수 있도록 ‘성인지 감수성’을 잃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법원은 “피해자가 2차 피해에 대한 불안감이나 두려움으로 인하여 피해를 당한 후에도 가해자와 종전의 관계를 계속 유지하는 경우도 있고, 피해사실을 즉시 신고하지 못하다가 다른 피해자 등 제3자가 문제를 제기하거나 신고를 권유한 것을 계기로 비로소 신고를 하는 경우도 있으며, 피해사실을 신고한 후에도 수사기관이나 법원에서 그에 관한 진술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경우도 적지 않다”며 이같은 이유로 C양의 진술을 배척한 원심 판결의 잘못을 지적했다.
이어 대법원은 “원고의 행위가 성희롱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가해자가 교수이고 피해자가 학생이라는 점, 성희롱 행위가 학교 수업이 이루어지는 실습실이나 교수의 연구실 등에서 발생했다는 점, 학생들의 취업 등에 중요한 교수의 추천서 작성 등을 빌미로 성적 언동이 이뤄지기도 한 점, 이러한 행위가 계속적으로 이뤄져 온 정황이 있는 점 등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면서 “우리 사회 전체의 일반적이고 평균적인 사람이 아니라 피해자들과 같은 처지에 있는 평균적인 사람의 입장에서 성적 굴욕감이나 혐오감을 느낄 수 있는 정도였는지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면서 새로운 성희롱 판단 기준을 제시했다.
송민경 (변호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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